미국의 새로운 세제 개편이 자선 기부 지형을 바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7월에 서명한 이른바 “빅 뷰티풀(Big Beautiful) 법안”으로 인해 고소득층의 기부 유인이 약화되고, 그 공백을 중산층·저소득층 기부가 메워야 할지에 대한 논쟁이 커지고 있다.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서 촬영된 구세군(살베이션 아미) 모금함 앞 기부 장면은 연말 성수기를 앞둔 미국 자선 생태계의 변곡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25년 11월 27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법안은 고액 기부자에게 적용되던 세제 혜택 일부를 축소한다. 특히 최고 소득 구간 납세자의 실효 세제 혜택이 37%에서 35%로 2%p 낮아진다. 인디애나대학교 릴리 패밀리 필란트로피 스쿨은 이 상한 조정만으로도 연간 41억~61억 달러의 기부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또한 항목별 공제(itemizing)를 선택하는 납세자는 조정총소득(AGI)의 0.5%를 초과하는 기부금만 공제할 수 있도록 제한이 강화된다.
동시에 법안은 비항목공제 납세자에게 새로운 유인을 도입했다. 내년부터 약 1억4천만 명의 비항목공제 납세자가 현금 기부에 대해 납세자 1인당 최대 1,000달러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2017년 1차 트럼프 행정부 때 기준공제가 대폭 상향된 이후 약 90%의 납세자가 표준공제를 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부 저변 확대를 노린 설계다. 다만 전문가들은 “저변 확대”가 “총액 보전”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전문가들의 경고: “저소득·중산층의 선의만으로는 규모를 메우기 어렵다”
어번-브루킹스 조세정책센터 공동소장 엘레나 파텔(Elena Patel)은 중·저소득층 유인이 강화되더라도 상위 소득층 축소분을 상쇄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비영리 부문은 ‘한 푼이 아쉽다’고 말한다. 모든 가정의 소액 기부를 장려하는 것은 일부 조직에 의미 있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그러한 기여는 자선 부문 전체 기부의 주류가 아니다. 최고 부유층 사이에서 오가는 기부의 규모를 감안하면, 2%p의 세제 혜택 축소가 작아 보일지 몰라도 파급효과는 결코 작지 않다.”
‘K자형 경제’와 자선: 총액은 늘지만, 기부자는 줄었다
미국 가계의 자선 기부 총액은 $392.45억(3924억5천만 달러)로 작년에도 증가세를 이어갔다. 릴리 스쿨의 Giving USA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2014년 대비 52%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기부금 총액이 늘어도 기부자 수는 줄고, 자선의 비중이 부유층 쏠림으로 심화되는 현상이 관측된다.
릴리 스쿨 학장 아미르 파식(Amir Pasic)은 소득 구간을 가리지 않는 기부 장려 자체가 가치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는 기부 금액은 오르는데 기부자 수는 줄어드는 일반적인 문제에 직면해 왔다. 이번 변화는 기부자 저변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파식은 생활비 압박이 일상적 기부자의 여력을 제약하는 반면, 부유층의 기부 여력은 커졌다고 지적했다. 대학 연구에 따르면 기부 가구 비율은 2000년 66.2%에서 2020년 45.8%로 하락했다. 그는 “경제 불확실성은 늘 기부 계획에 악영향”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관세 인상과 인플레이션 속에서 소비 양극화가 심화되는 ‘K자형 경제’ 조짐도 뚜렷하다. 중·저소득층은 맥도날드 햄버거부터 항공권까지 소비를 줄이는 반면, 부유층은 지출 여력을 유지하거나 확대하고 있다.
새 공제가 ‘기부 총량’을 끌어올릴까
경제학자 대니얼 헝거맨(Daniel Hungerman)은 새로운 비항목공제 기부 공제가 추가 기부를 촉진하기보다, 어차피 기부할 납세자에게 상을 주는 효과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공제는 1인당 1,000달러(부부 공동 신고 시 2,000달러)로 규모가 크지만, 1980년대 유사 입법은 기부 총량에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 대응으로 도입된 $300 한시 공제도 자선 기부를 약 5% 늘리는 데 그쳤다는 택스 파운데이션의 분석이 있다.
헝거맨은 표준공제의 상향 자체가 자선 기부에 부정적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연구는 2017년 개정 이후 연간 160억 달러 규모의 영구적 기부 감소가 발생했다고 추산했다. 그럼에도 주·지방세 공제(SALT) 상한 인상은 일부 구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생활비가 높은 주에서 더 많은 납세자가 항목공제를 선택하게 되어 기부 공제 유인이 살아날 수 있어서다.
“더 설득력 있는 지점은 장기 전략이다. ‘누구나 이렇게 기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 일부 사람들의 기부 습관을 바꿀 수 있다면, 내일의 ‘빌 게이츠’가 그들 중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지금 기부자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시점·수단·한도
현재 표준공제를 택할 예정인 납세자는 기부를 2026년까지 미루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 반면 항목공제 선택자와 고소득 기부자는 연말 이전에 기부할수록 세제 효율이 높아질 전망이다.
노던트러스트의 로버트 웨슬리(Robert Westley) 수석부사장 겸 지역 웰스 어드바이저는, 향후 4년간 기부 계획이 있다면 올해로 앞당겨 실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는 연간 공제 한도로 현금 기부는 AGI의 60%, 장기 보유 주식·부동산 등 평가차익 자산은 30%까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이 한도를 초과한 공제는 일반적으로 5년까지 이월이 가능하다. 다만 국세청(IRS)이 발표할 세부 시행 지침이 남아 있어, 초과 공제가 새로운 기부 공제의 바닥·천장 규정 적용을 받는지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웨슬리는 말했다.
수단의 선택도 중요하다. 도너어드바이즈드펀드(DAF)를 활용하면 선(先)공제를 받은 뒤 시간이 지나 특정 단체에 배분할 수 있어, 의사결정 유연성이 커진다. 평가차익 자산을 직접 비영리단체에 넘기는 것보다 DAF로 기부하는 편이 절차가 단순한 장점도 있다.
올해 주식시장 강세를 감안하면, 특히 기술주를 중심으로 평가차익을 실현하지 않고 주식 기부로 이익을 상쇄하면서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도모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식 비중이 상승해 목표 자산배분을 넘어선 경우가 많다. 위험자산을 기부하면 세제 혜택을 얻는 동시에 양도차익 인식을 피하고, 결과적으로 위험자산 비중을 낮출 수 있다.”
법률가와 조세전문가들은 이번 개편과 관련한 다수의 쟁점에 대해 IRS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 예컨대 비그란터 신탁(non-grantor trust)의 자선 기부가 새로운 공제 상한의 적용을 받는지 여부도 아직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고소득 기부자에게는 여전히 여러 수단이 남아 있다. 만 73세 이상의 최고 소득자는 개인퇴직계좌(IRA)에서 발생하는 의무최저인출액(RMD)을 자선단체로 직접 이체함으로써 사실상 소득을 달러 대 달러로 줄일 수 있다.
웨슬리는 이 전략이 은퇴 연령대 고객 사이에서 이미 인기가 있으며, SALT 상한 상향과 맞물려 활용도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신고 소득을 일정 임계치 이하로 낮추면, 향상된 SALT 공제(소득 50만 달러 이하 납세자 기준 최대 4만 달러)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항목공제 규칙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 세제 혜택 상한도, 공제에 필요한 최소 요건(바닥)도 없다.”
인사이드 웰스(Inside Wealth) 안내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가 진행하는 CNBC의 인사이드 웰스는 고액자산가 투자·소비와 이를 둘러싼 산업을 다루는 주간 뉴스레터다. 본 기사는 해당 뉴스레터에 먼저 실린 버전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핵심 용어 설명
표준공제(Standard Deduction): 모든 납세자에게 일괄 제공되는 공제액으로, 항목별 공제 대신 선택하면 신고 절차가 단순해진다. 표준공제가 커질수록 항목공제를 통해 기부금 공제를 받는 유인은 약해진다.
항목공제(Itemized Deduction): 의료비·주택담보이자·기부금 등 실제 지출을 항목별로 신고해 공제받는 방식이다. 이번 법안은 항목공제 선택자의 기부금 공제를 AGI의 0.5% 초과분으로 제한했다.
SALT 공제: 주(State)·지방(Local)세 납부액을 연방 소득세에서 공제하는 제도다. 상한 인상 시 고비용 주의 납세자가 항목공제를 택할 유인이 커져 기부 공제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
DAF(도너어드바이즈드펀드): 기부자가 기부금 출연 시점에 공제 혜택을 받고, 이후 수혜 단체 지정을 단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펀드형 계좌다. 평가차익 자산을 옮기기 쉽고, 세무·행정 처리가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RMD(의무최저인출액): 만 73세 이상의 IRA 보유자가 매년 최소한 인출해야 하는 금액이다. 이를 자선단체로 직접 기부하면 과세 소득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분석과 시사점
요약하면, 상위 소득층의 세제 혜택 축소와 비항목공제자의 기부 공제 신설은 기부 생태계의 균형축을 재조정한다. 총액 관점에서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하방 압력이 예고되지만, 참여 관점에서는 기부자 저변 확대라는 순기능이 기대된다. 관세·물가 변수로 가계 체감 여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저·중산층의 소액 기부 활성화만으로 상위층의 대형 기부 공백을 메우기는 쉽지 않다. 반면 장기적 습관 형성과 세제 중립적 수단(DAF·RMD 등)의 적극적 활용은, 분산·지속 가능한 기부 기반을 조성하는 데 실질적 기여를 할 수 있다. 정책 당국의 명확한 시행 지침과 데이터 기반 모니터링이 뒷받침될 때, 기부 생태계는 총량 감소 리스크를 줄이며 참여 확대의 이점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