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인텔 최고경영자(CEO) 립부 탄(Lip-Bu Tan)과 고위급 회동을 갖고 “매우 흥미로운 만남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만남은 그가 불과 며칠 전 탄 CEO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한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회동 소식이 전해지자 인텔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3% 상승했다.
2025년 8월 12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에 “탄 CEO의 성공과 성장 스토리는 놀랍다”며 “다음 주 그와 각료들이 제안을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동에는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과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도 동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탄 CEO에게 찬사를 보내면서도, “매우 중요한 논의”였다고 강조했다.
불과 일주일 전 트럼프 전 대통령은 탄 CEO가 중국 기업들과 얽힌 이해상충 문제를 이유로 “즉각적인 사임”을 요구한 바 있다. 해당 발언은 인텔이 수년간 추진해 온 턴어라운드 전략에 불확실성을 불러오며 투자자들을 긴장시켰다.
로이터는 지난 4월 단독 보도를 통해 탄 CEO가 수백 개에 달하는 중국 기업에 투자했으며, 그중 일부는 중국군과 연계돼 있다고 전했다.* 미국 시민이 중국 기업 지분을 보유하는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미 재무부의 ‘중국 군산복합체 기업 리스트’에 올라 있는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된다.
탄 CEO는 부임 직후 ‘실리콘 밸리의 상징’으로 불렸던 인텔을 되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특히 엔비디아가 지배하는 인공지능(AI) 칩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고,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위탁 생산(파운드리)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적자 폭이 커졌다.
취임 6개월 만에 그는 자산 매각, 인력 감축, 연구개발 재배치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경영 정상화에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사퇴 요구는 집중력을 흐릴 수 있다
는 우려가 투자자와 전직 임원들로부터 제기됐다.
이에 따라 탄 CEO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인텔이 “미국 기술·제조 리더십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전달하며 신뢰 회복에 나섰다. 인텔은 공식 성명을 통해
“우리는 행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위대한 미국 기업을 재건하겠다”
고 밝혔다.
대통령이 특정 기업 CEO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번 개입은 정부가 기업 의사결정에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을 촉발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엔비디아(Nvidia)와 AMD가 중국 매출의 15%를 미 정부에 납부하기로 한 합의도 거론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백악관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 용어 설명
AI 칩은 대용량 데이터 연산과 머신러닝 등 인공지능 작업에 최적화된 반도체다. 파운드리는 설계와 제조를 분리해 다른 회사의 칩을 대신 생산해 주는 사업 모델을 뜻한다. 턴어라운드는 손실을 지속하던 기업이 구조조정이나 신제품 개발을 통해 실적을 반전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기자 해설
탄 CEO가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회동을 통해 경영권을 지키는 데 일단 숨통을 틔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중국과의 ‘기술 분해’(decoupling)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인텔이 AI 칩과 파운드리 양대 축을 모두 살리려면 단순한 정치적 지원을 넘어 대규모 투자와 기술 로드맵의 구체화가 필수적이다. 향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추가 압박에 나설 경우, 타사와의 파트너십이나 구조조정 폭이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사안은 국가 안보와 글로벌 공급망이라는 두 축이 얽힌 ‘빅 테크–정치’ 갈등의 단면을 보여준다. 시장 참가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시할 후속 조치와 탄 CEO의 대응 전략을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