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로이터—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저널리스트 밥 우드워드와 출판사 사이먼앤슈스터(Simon & Schuster), 그리고 과거 모회사였던 파라마운트 글로벌을 상대로 제기한 약 4,998만 달러(한화 약 68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기각됐다.
2025년 7월 18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뉴욕 남부지법의 폴 가더페( Paul Gardephe) 연방판사는 “연방 저작권법상 대통령이 공식 직무 수행 중 이뤄진 인터뷰에 대해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우드워드와 그의 출판사는 저작권 침해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3년 1월, 우드워드가 2020년 베스트셀러 『Rage』 집필 과정에서 진행된 19차례 인터뷰 녹음을 별도의 오디오북 『The Trump Tapes』로 2022년 10월 출간한 행위가 본인 음성에 대한 무단 활용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해당 녹음이 “책 집필 외 다른 용도로 쓰이지 않겠다”는 전제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우드워드는 그러한 구두 합의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주요 쟁점 ① – 대통령 인터뷰의 저작권 귀속
재판부는 트럼프 측이 “대통령 개인 발언”이라 주장한 인터뷰 내용이 사실상 공적 직무 수행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판사는 판결문에서 “그 어떤 전·현직 대통령도 자신과 언론 간 인터뷰를 저작권으로 보호해 달라고 요구한 선례가 없다”고 명시했다. 즉, 정부 고위공직자의 발언은 공적 기록(public domain)의 성격이 강하며, 이를 보도한 언론사·기자는 ‘공정 이용(fair use)’ 원칙에 따라 보호받는다는 의미다.
주요 쟁점 ② – “진정한 저자” 논란
우드워드 측 변호인은 법정에서 “우드워드는 인터뷰 설계부터 질문 구성, 후반부 해설까지 전체 제작 과정을 책임진 ‘단독 저자’”라고 강조했다. 이는 과거 CBS의 월터 크롱카이트, ABC의 바버라 월터스 등 유명 앵커가 대통령 인터뷰를 제작·보도해 온 관행과 동일하다는 논리다.
주요 쟁점 ③ – 손해배상 산정 근거
트럼프 측은 “오디오북 200만 부 × 권당 24.99달러”라는 가상 판매량을 근거로 4,998만 달러 손해를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예상 판매량만으로 산정한 추정치”라며 손해발생 사실 자체가 불명확하다고 판단했다.
법적·정치적 파장
이번 판결은 대통령이나 고위 공직자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발언한 내용이 사적 자산이 아닌 공적 자산임을 재확인한 사례로 평가된다. 법조계에서는 “만약 트럼프가 승소했다면, 향후 행정부 고위 인사가 언론에 발언하기 전에 ‘저작권 계약’을 요구하는 상황까지 초래될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판결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는 미국 헌법 수정헌법 제1조(First Amendment)의 정신을 재확인한 것” — 미디어법 전문가 제니퍼 뉴먼(콜롬비아 로스쿨)
반면, 트럼프 측 대변인은 “상급 법원에 즉각 항소하겠다”며 불복 의사를 밝혔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거에도 언론 관련 소송을 다수 제기했지만, 대부분 명예훼손 입증 책임이나 공익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패소한 바 있다.
배경: 『Rage』와 『The Trump Tapes』
『Rage』는 우드워드가 2019년 12월부터 2020년 8월까지 트럼프를 19차례 인터뷰한 내용을 기반으로 한 책으로, 인터뷰 분량이 전체의 약 20%를 차지한다. 이어 출간된 오디오북 『The Trump Tapes』는 책에 담기지 않은 미공개 녹취와 우드워드 본인의 해설을 포함해 2022년 10월 공개됐다.
출판사 사이먼앤슈스터는 2023년 10월 사모펀드 KKR에 16억 2,000만 달러에 매각됐다. 이번 소송은 매각 완료 이후에도 이어졌으나, 새 소유주 KKR 역시 기존 법적 입장을 유지했다.
전문가 시각
1) 언론계 영향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로 대통령 인터뷰 콘텐츠를 멀티미디어 형태(오디오·영상)로 확장할 때 법적 위험이 감소했다고 평가한다. 특히 뉴스 팟캐스트 시장에서 대통령 발언을 활용한 2차 콘텐츠 제작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
2) 정치권 파장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대선을 앞두고 언론과의 갈등을 ‘정치적 무기화’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는 2020년 이후 언론 및 전직 참모를 상대로 수십 건의 소송을 제기했지만, 상당수가 기각되거나 조기 합의로 종료됐다.
3) 저작권 법제 개선 논의
학계에서는 공직자 발언의 저작권 귀속 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한 연방 저작권법 개정 논의가 재점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도 ‘미 연방정부 저작물은 퍼블릭 도메인’이라는 규정이 존재하지만, 인터뷰 녹취와 같은 혼합 저작물의 경우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용어 설명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은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됐거나 저작권법상 보호 대상이 되지 않아,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창작물을 뜻한다. 미국에서는 연방정부가 공식적으로 작성한 문서나 ‘공적 발언’이 이에 포함될 수 있다.
공정 이용(fair use)은 비평·보도·교육·연구 목적 등 공익적 목적을 위해 저작물의 일부를 인용하는 경우,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다. 미국 저작권법 107조가 근거 규정이다.
한편, 이번 사건의 공식 사건명은 Trump v. Simon & Schuster Inc et al이며, 사건번호는 23-06883이다. 판결은 뉴욕 남부지방법원에서 선고됐으며, 원고 측이 항소할 경우 제2순회 항소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갈 예정이다.
향후 항소 결과에 따라 판례가 수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현재까지는 언론 자유를 지지하는 연방 법원의 판단이 재확인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