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수입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재차 경고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25년 8월 7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미국에서 공장을 짓는 기업은 예외로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수입 반도체 전량에 1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는 연간 6,000억 달러(약 795조 원) 규모의 거대 산업으로, 스마트폰·PC·자동차·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의 핵심 부품이다. 따라서 관세 정책의 향방은 세계 공급망과 금융시장 전반에 즉각적인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다.
관세 세부안, 아직 안갯속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구체적인 제도 설계와 적용 범위를 공개하지 않았다. 시장조사업체 더퓨처럼그룹의 반도체·공급망 담당 리서치 디렉터 레이 왕(Ray Wang)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최종 규정이 아직 초안 수준이며 기술적인 상세 내용도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관세 예외를 받기 위해 기업이 ‘얼마나, 어떤 공정’을 미국에 투자해야 하는지도 불투명하다. 2020년 이후 TSMC(대만), 삼성전자·SK하이닉스(한국) 등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들은 이미 수백억 달러를 들여 애리조나·텍사스 등에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JP모건 아태지역 주식리서치 총괄 제임스 설리번은 “대형 업체 대부분이 이미 미국 내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시장 점유율이 더 ‘빅 플레이어’에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발표 직후, 미국 애리조나 공장을 확대하기로 한 TSMC의 타이완 증시 주가는 장 초반 상승했다. 올해 초 TSMC는 미국 투자 규모를 총 1,650억 달러로 늘리겠다고 공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도 한국 증시에서 동반 강세를 보였다.
‘예외’ 대상 품목은?
관세 대상이 ‘원칩(미가공) 반도체’에 한정될지, 아니면 스마트폰·노트북·자동차 등 완성품에 내장된 칩까지 포함할지도 논란이다. 버ern스타인 수석 애널리스트 스테이시 래스곤(Stacy Rasgon)은 “미국으로 들어오는 반도체 대부분은 완제품 내부에 실장된 형태”라면서 “부품별·제품별로 관세를 매긴다면 업계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에 따르면, 2024년 미국이 수입한 반도체 규모는 463억 달러로 전체 수입의 1%에 불과했다. 반면 칩이 탑재된 소비재·산업재를 모두 포함하면 사실상 ‘전자 공급망 전체’가 관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반도체 재료·장비까지 포함될 경우, 글로벌 장비 업체 램리서치·ASML·도쿄일렉트론 등과 실리콘 웨이퍼·화학 소재 업체들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힌다.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의 딜레마
세계 반도체 산업은 설계(팹리스)·제조(파운드리)·패키징·테스트가 국가별로 분업된 구조다. 예컨대 미국 퀄컴은 설계를 완료한 뒤 TSMC의 대만 공장에서 칩을 생산하고, 다시 미국으로 들여와 스마트폰에 장착한다. 관세 부과 기준이 생산지인지 최종 조립지인지에 따라 퀄컴 같은 모델은 직격탄을 맞을 수도, 피해갈 수도 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와 구글 클라우드 등 미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도 AI 서버 구동을 위해 막대한 칩을 구매한다. ITIF는 반도체가 전 세계 7조 달러 경제 활동을 뒷받침한다고 추산한다.
애플의 팀 쿡 CEO는 이날 백악관 행사에서 “텍사스 삼성 공장에서 공급받은 칩을 아이폰·맥 제품군에 적용할 것”이라며 향후 4년간 미국 투자 계획을 총 6,000억 달러로 증액한다고 발표했다.
전문가 시각: ‘관세보다 인센티브’
시장 전망은 엇갈린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100% 관세’라는 초강수보다, 세액공제·보조금 같은 인센티브 정책이 미국 내 생산 확대에 더 효과적이라고 본다. 실제로 2022년 제정된 CHIPS & Science Act는 기업 친화적 보조금으로 파운드리 유치를 시도했으나, 아직 충분한 생산 능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만일 관세가 현실화되면, 단기적으로는 공급망 재편 비용이 소비자 가격에 전가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반도체 생태계가 설계부터 제조·패키징까지 ‘풀스택’ 역량을 회복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명확한 로드맵 없이 제재만 남발할 경우, 오히려 동맹국과의 협력 체계가 흔들리고 R&D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용어 풀이
1파운드리(Foundry):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팹리스)이 설계한 회로를 대신 제조해 주는 공장 또는 기업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TSMC·삼성전자 파운드리 부문이 있다.
2CHIPS & Science Act: 2022년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반도체산업 지원법으로, 국내 생산 시설 구축에 527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제공한다.
3ITIF(Information Technology & Innovation Foundation): 미국 워싱턴 D.C.에 본사를 둔 IT 정책 연구기관으로, 디지털 경제와 혁신 정책을 연구한다.
※본 기사는 CNBC 등 외신 보도를 번역·정리한 것으로, 정책의 최종 세부안은 향후 발표되는 행정명령 및 세부 규정을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