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요충지로 꼽히는 상무부 수출관리 차관보(Assistant Secretary for Export Administration) 지명을 전격 철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중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 온 랜드on 하이드(Landon Heid)를 올해 2월 해당 직위에 지명했으나, 미 의회 기록 사이트 Congress.gov 기준 9월 11일(현지시간) 지명을 공식 철회했다.
2025년 9월 11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미국 내 대(對)중 기술 수출통제 기조가 다소 유화적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수출관리 차관보는 미국의 전략적 고성능 반도체·인공지능(AI) 칩·생명공학 장비 등을 해외로 이전할 때 국가안보 차원의 허가 여부를 최종 조율하는 핵심 관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하이드를 차관보로 지명하면서 “미국의 최첨단 기술이 잠재적 위협국으로 흘러들어가는 일을 반드시 차단하겠다”고 강조했지만, 7개월 만에 지명을 철회하면서 정책 방향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Chris McGuire 前 국무부 기술·국가안보 수석 고문은 12일 X(구 트위터)에 “이번 철회는 매우 우려스럽다”면서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 수출 제한을 더 약화하려는 신호인지 두렵다”고 밝혔다.
하이드는 현재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아시아·기술 이슈를 담당하고 있다. 백악관 대변인 애나 켈리(Anna Kelly)는 성명을 통해 “하이드는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의 ‘America First Asia’ 정책을 NSC에서 이행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지명 철회 이유에 대해서는 “외부 인사의 추측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이드의 경력도 주목할 대목이다. 그는 하원 중국특별위원회(Select Committee on China) 정책보좌관 시절,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전 세계 AI 칩 수출 제한(Global AI Chip Curb)과 중국 바이오테크 기업 제재 등을 일관되게 지지한 대표적 ‘차이나 호크(China Hawk)’로 꼽힌다.
■ 용어 해설: ‘차이나 호크(China Hawk)’는?
미국 외교·안보 분야에서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 혹은 잠재적 위협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제재·견제 정책을 주장하는 인물을 지칭한다. 하이드와 같은 인물들은 수출통제, 투·융자 제한, 공급망 탈중국(De-risking) 등을 선호하며, 미국 산업·학계 일각에서는 이들을 ‘매파’로 분류한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올 7월 AI 서버용 GPU 신제품 ‘엔비디아 H20’의 대(對)중 수출을 제한한다는 4월 조치를 일부 철회했다. 그 과정에서 ‘글로벌 AI 칩 수출 제한 규정 자체도 철회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던진 바 있다. 이번 하이드 지명 철회는 그러한 정책 완화 흐름이 현 정부의 공식 행보로 자리잡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 법적·제도적 의미
수출관리 차관보는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ureau of Industry and Security, BIS)을 총괄하며, ‘수출관리규정(EAR)’ 개정, 거래 제재 리스트(Entity List) 업데이트 등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기술 이전 정책을 최종 서명하는 자리다. 따라서 해당 보직 공석이 장기화될 경우, 미 기업들의 수출허가 프로세스가 늦어지거나 정책 일관성이 흔들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두 가지 시나리오를 거론한다. 첫째, 백악관이 더 유연한 규제 전문가를 새로 지명해 해외 동맹국과 공조 체계를 강화할 가능성이다. 둘째, 의회 승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 NSC 내부 인사에게 실무 권한을 집중시켜 ‘사실상 무(無)차관보 체제’로 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선거 당시 “중국이 미국 첨단 산업을 ‘탈취’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대선 이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거시경제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일부 규제를 수정해 왔다.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했던 광범위한 반도체·AI 장비 수출 제한 조치를 잇달아 재검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시장·산업 영향
엔비디아, AMD, 인텔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수출통제가 완화될 경우 연간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 매출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안보 리스크를 우려하는 의회, 싱크탱크, 방산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정책 물밑 조율이 가열될 전망이다.
전직 NSC 보좌관 A 씨는 “하이드 지명 철회는 단순 인사 문제를 넘어, 기술패권 전략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향후 대만해협·남중국해 긴장, 5G·양자컴퓨팅 등 신흥기술 분야까지 규제 수위를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미·중 경쟁의 향방을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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