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이틀간의 인도 방문 일정을 20일(현지시간) 마무리했다. 이번 방문은 베이징과 뉴델리 간 관계가 완만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최신 신호로 평가된다. 왕 부장은 “양국은 서로를 위협이나 적(敵)이 아닌 파트너와 기회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구글 번역본을 통해 전했다.
2025년 8월 20일,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왕 부장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24년 10월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만난 것을 두고 양국 관계의 “재시작”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급격히 악화된 미·인도 관계와 대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2월만 해도 모디 총리를 포옹하며 우호를 과시했으나, 불과 6개월 뒤에는 인도를 ‘관세 왕국(tariff king)’이라 부르며 최고 수준의 관세를 부과했다. 그는 또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인도가 미국과의 냉각 속에서 중국 쪽으로 기우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됐다. 싱가포르국립대(NUS) 남아시아연구소 방문선임연구원 이반 리다레브(Ivan Lidarev)는 CNBC에 “미·인도 관계 악화가 원인 중 하나이지만, 그 자체가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리다레브는 “
트럼프 대통령의 인도 및 중국 정책이 일정 부분 이 과정을 가속화했다
”고 평가한다. 그는 특히 러시아산 원유를 이유로 인도에 고율 관세를 매긴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사안을 두고 중국에는 즉각적인 보복관세가 필요 없다고 언급한 점을 지적했다.
워싱턴 싱크탱크 윌슨센터 산하 남아시아연구소 소장 마이클 쿠글먼(Michael Kugelman)도 CNBC ‘Squawk Box Asia’에서 “미·인도 간 마찰로 뉴델리는 대(對)미 불확실성을 헤지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열어 두려 한다”고 분석했다.
인도 내 여론 변화도 뚜렷하다. 리다레브는 “미국 내 인도를 보는 시각은 바뀌지 않았지만, 인도 내 미국에 대한 시각은 크게 변했다”면서 “많은 인도인들이 관세와 ‘팔 비틀기’ 시도에 분노한다”고 전했다.
관계 회복의 구체적 징후
왕 부장은 모디 총리를 예방해 오는 8월 말 톈진(天津)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시 주석의 공식 초청을 전달했고, 모디 총리는 이를 수락했다. 성사된다면 모디 총리의 7년 만의 중국 방문이 된다.
또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단됐던 인도-중국 직항편이 재개될 예정이며, 양국은 3개 지정 교역 지점을 통한 국경 무역 재개에도 합의했다. 인도 언론은 중국이 비료·희토류·터널 굴착기 수출 제한을 해제하기로 했다고 21일 보도했다.
기업 차원의 접점도 늘고 있다. 올해 초 인도 기업들이 중국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다수 추진한 데 이어, 인도 대기업 릴라이언스와 아다니그룹도 유사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특히 아다니그룹 회장 가우탐 아다니는 6월 중국 배터리 제조사 CATL 등을 방문했다.
전략적 재편은 ‘아직’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접근을 전술적(tactical) 완화로 규정한다. 영국 채텀하우스 남아시아 선임연구원 치에티그 바즈파이(Chietigj Bajpaee)는 “양국 간 근본적 불만은 해결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국경 분쟁·수자원 갈등·중국-파키스탄 ‘전천후 동맹’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실제 2025년 5월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 충돌 당시, 파키스탄은 중국제 J-10C 전투기로 인도의 프랑스제 라팔(Rafale) 전투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파키스탄은 2021년 J-10C를 도입했으며, 인도는 2015년 라팔 36대를 구매한 바 있다.
싱가포르 라자라트남 국제관계대학원의 리밍지앙(Li Mingjiang) 부교수 역시 “이번 데탕트는 전술적 휴지기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그는 “양측 모두 긴장 관리 동기가 강하지만, 미해결 갈등 탓에 완화 국면은 단기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편 인도-미국 관계는 여전히 깊다. 두 나라는 국방·기술·청정에너지 협력을 포함한 ‘포괄적 글로벌 전략적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미국은 2016년 인도를 ‘주요 방위 파트너(major defense partner)’로 지정했다.
리 부교수는 “인도가 미국의 중국 견제 축 역할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그는 “양국이 베이징의 지역 패권 억제라는 지속적 전략 이익을 공유한다”면서, 현 관세 압박은 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연계된 문제라고 설명했다. “
분쟁이 완화된다면, 워싱턴과 뉴델리는 무역 마찰을 봉합하기 쉬워질 것
”이라는 평가도 덧붙였다.
알아두면 좋은 용어*
BRICS(브릭스)는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5개국으로 구성된 신흥경제 협의체다. SCO(상하이협력기구)는 중국·러시아·인도·파키스탄 등 8개국이 참여하는 안보·경제 협력체로, 2001년 창설됐다.
전문가 시각 및 전망
이번 사례는 트럼프 행정부의 단기적 관세 정책이 인도-중국 간 전술적 접근을 유발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국경 문제와 인도-미국 간 장기적 전략 연대를 감안할 때, 인도 외교 노선의 근본적 방향 전환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투자·무역 관점에서 보면, 양국 간 경제 협력 확대가 단기적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를 면밀히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