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기자들과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엔비디아(티커: NVDA)의 최첨단 인공지능 반도체 ‘블랙웰(Blackwell)’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혀 반도체·외교·안보가 복합적으로 얽힌 미‧중 기술 경쟁이 또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2025년 10월 29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날로 예정된 한·미·중 정상회담과 별개로 시 주석과의 양자 회담에서 블랙웰 칩 판매 제한 문제를 거론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블랙웰을 가리켜 “슈퍼두퍼(super-duper) 칩”이라고 치켜세우며, “우리는 아마도 그 문제를 시 주석과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칩 대(對)중국 판매는 올해 내내 이어진 미‧중 무역 협상의 최대 난제로 꼽혀 왔다. 미국이 안보를 이유로 수출 통제(export controls)를 통해 가장 진보한 AI 가속기의 중국 반출을 막자 베이징은 자국 기업에 ‘국산 칩 우선 구매’ 지침을 내리며 맞섰다. 그럼에도 화웨이 등 중국 업체의 공급 역량이 제한적이어서, 중국 개발자들은 여전히 엔비디아 칩을 선호한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미국의 수출 통제와 중국의 반발
워싱턴은 중국 인민해방군(PLA)이 AI 칩을 통해 전력(戰力)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이유로 블랙웰 시리즈를 포함한 엔비디아의 최상위 제품군을 직접 판매 금지 품목으로 분류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기술 봉쇄”라며 강력 반발했고, 자국 내 칩 설계·제조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규모 국책 투자를 단행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단에게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보면 시 주석과의 만남이 매우 낙관적”이라며, 지난 1월 백악관 복귀 이후 두 정상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이번 회담에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우리는 블랙웰 칩에 관해 이야기하게 될 수도 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랙웰은 엔비디아가 올해 공개한 차세대 AI 반도체 아키텍처다. 초당 수백억 개의 연산을 처리하고, 복잡한 생성형 인공지능 모델 학습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GPU의 신기원’이라는 평가를 내놓지만, 수출 제한 탓에 실제 칩 공급은 지연되고 있다.
엔비디아의 대응 전략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개발자 행사 기자회견에서 “미 상무부로부터 중국 수출 허가를 신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정부는 지금 당장 엔비디아의 최신 칩이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면서도 “미국 내 연구개발(R&D) 자금을 마련하려면 중국 시장 접근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로이터는 지난 5월, 엔비디아가 블랙웰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을 개발해 중국에 저가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모델은 연산 능력을 축소해 군사 전용 우려를 줄이는 대신 가격을 크게 낮추는 전략이 핵심이다.
미국 내부의 엇갈린 시각
지난 수년간 미국 행정부는 엔비디아 칩 수출 허용 여부를 두고 오락가락했다. 한쪽에서는 “첨단 칩을 계속 공급해 중국이 미국 기술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편이 전략적으로 유리”라는 의견이 나왔고, 다른 쪽에서는 “최신 기술이 넘어가면 중국 군사·빅테크 기업이 경쟁 우위를 확보한다”며 강경한 금수 조치를 주장했다.
이처럼 정책 방향이 ‘추진과 제동’ 사이를 반복하는 사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불확실성이 심화했고, 엔비디아 주가에도 큰 변동성이 나타났다.
베이징의 ‘자립 가속’ 압박
중국 정부는 미국의 수출 통제에 맞서 “구매도 국산, 연구도 국산”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클라우드 서비스·대형 언어 모델(LLM)을 운영하는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등 빅테크 기업은 자국 반도체 스타트업과 협력해 자체 AI 칩을 상용화하려 한다. 그러나 로이터 취재에 응한 중국 개발자들은 “화웨이의 ‘궁펑’ GPU가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가운데, 엔비디아 H 시리즈·블랙웰이 여전히 최우선 옵션”이라고 토로했다.
시장조사업체들은 “미‧중 기술 갈등이 장기화될수록 글로벌 공급망이 ‘이원화’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실제로 일부 미국 기업은 생산라인을 대만·베트남·인도 등으로 옮기고, 중국 기업은 중동·남미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용어 설명: 수출 통제와 블랙웰
수출 통제(export controls)는 국가안보·대외정책 목적으로 정부가 첨단 기술·장비의 해외 수출을 제한하는 제도다. 미국은 상무부 산업보안국(BIS)이 중심이 되어 반도체·AI·양자컴퓨팅 등 전략 물자를 관리한다.
블랙웰(Blackwell) 아키텍처는 엔비디아가 2024~2025년 개발한 차세대 GPU 플랫폼의 코드명이다. 전 세대인 호퍼(Hopper)보다 에너지 효율과 연산 밀도가 대폭 개선돼, 초거대 AI 모델 학습·추론을 위한 핵심 인프라로 평가받는다.
전문가 시각과 전망
반도체 산업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시작된 이후, 정치·안보 논리가 공급망 전반을 지배하는 양상이 더욱 뚜렷하다”고 진단한다. 특히 미국 대선을 앞두고 기술 패권 이슈가 외교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 엔비디아·AMD·인텔 등 미국 반도체 기업의 중국 비즈니스 전략은 한층 더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 관계자들은 “블랙웰 칩이 중국에서 빠르게 상용화될 경우 글로벌 AI 생태계 판도가 바뀔 수 있다”면서도, “수출 통제 완화 여부가 불투명한 만큼 기업들은 다양한 플랜 B를 모색 중”이라고 전했다.
최종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실제로 블랙웰 문제를 테이블에 올릴 경우, 미‧중 간 ‘칩 휴전’이 이뤄질지, 혹은 규제와 규제가 맞부딪히는 ‘제로섬’으로 귀결될지 전 세계 IT·금융 시장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