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뉴욕 발】 요코하마(일본) 공업항에 정열된 테슬라 전기차 행렬이 2025년 7월 23일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산 자동차에 적용되는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합의한 당일의 풍경이다. 로이터 통신의 김경훈 기자가 촬영한 해당 사진은 한때 세계 자동차 패권을 장악했던 일본 완성차 업계가 직면한 ‘예상 밖의 온도 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25년 7월 28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관세 인하가 즉각적인 숨통을 틔워준 것은 사실이지만, 산업 전문가들은 “터널 끝의 빛은 아직 멀다”고 입을 모은다. ①관세율 15%라는 숫자는 일본 업체들이 당초 기대했던 ‘한 자릿수 관세’와는 거리가 멀며, ②중국 완성차의 가파른 부상이 일본 브랜드의 경쟁력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1. 관세 인하의 절반의 안도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스테판 앙그릭 일본‧프런티어 경제총괄은 “이번 합의가 처벌적 수준의 관세 상향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이어 “15%라는 세율 자체가 여전히 일본이 관세 협상 이전에 누리던 0~2.5%대 환경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라며 완전한 호재로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관세율이 25%에서 15%로 낮아졌다고 해도, ‘경쟁 당사국 대비 우위’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황은 아직 녹록지 않다.” — 스테판 앙그릭, 무디스 애널리틱스
아이씨카스(iSeeCars)의 칼 브라우어 수석 애널리스트도 비슷한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중국 브랜드의 가격 경쟁력과 빠른 제품 전환 속도가 일본 업체에 가장 큰 단일 위협“이라며, 관세 인하로 인한 단기적 안도감이 장기적인 구조적 문제를 가리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2. 중국의 질주와 일본의 시장 상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전기차(EV) 분야에서는 배터리, 드라이브트레인, 소프트웨어 등 핵심 부품 전주기에 걸쳐 수직계열화에 성공해, 외국 완성차의 마진을 더욱 얇게 만들고 있다.
〈PwC〉가 2025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베트남‧싱가포르 등 ‘ASEAN-6’ 지역에서 일본 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은 2023년 68.2%에서 2024년 63.9%로 하락했다. 반면 중국산 차량은 공격적인 가격 정책과 현지 맞춤형 사양으로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ASEAN-6: 동남아 6개 주요국을 뜻하는 업계 약어
호주 역시 일본산 자동차의 제2의 수출 시장이지만, 호주자동차딜러협회(AADA) 의뢰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35년 호주 수입차의 43%가 중국산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2025년 예상치 17%에서 2.5배 이상 뛰는 수치다. 같은 기간 일본산 점유율은 32%에서 22%로 떨어질 전망이다.
무디스의 앙그릭은 “태국만 해도 한때 도요타‧혼다의 텃밭이었지만, 이제는 BYD·SAIC 같은 중국 제조사가 현지 공장을 세우며 지형이 바뀌고 있다”고 언급했다.
3. 국내 변수: 인플레이션과 소비위축
외부 경쟁 외에도 일본 완성차업계는 고착화된 인플레이션과 정체된 내수 소비라는 이중 고비를 맞이하고 있다. 도요타는 여전히 탄탄한 기초체력을 유지하지만, 닛산은 관리 부실‧공장 폐쇄에 따른 손익 훼손이 가시화되고 있다.
닛산은 2027 회계연도까지 전 세계 17개 공장 중 7개를 폐쇄하고, 인력의 약 15%를 감축한다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브라우어 애널리스트는 “중국 업체의 위협이 본격화된 시기와 맞물리며 닛산에 치명적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4. 규모의 경제 vs. 제휴 전략
규모 면에서 우위를 가진 도요타는 다각화된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토대로 관세 변동과 통화 위험을 일부 흡수할 수 있다. 그러나 스바루‧마쓰다처럼 생산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업체들은 고정비 부담이 더 크다.
라이트스트림리서치의 카토 미오 창립자는 “스바루와 마쓰다는 고사양 차종에서 강점을 지니지만, 독자 생존 전략만으로는 글로벌 전환기에 버티기 어렵다”며 “두 회사 모두 도요타와의 전략 제휴를 심화·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현재 마쓰다는 미국 앨라배마에 도요타와 합작 공장을 운영 중이며, 스바루도 2026년 출시 예정인 공동 개발 EV를 도요타와 함께 생산하기로 했다. 카토는 “가시적 인수·합병(M&A)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10년 안팎의 구도 재편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라고 덧붙였다.
5. ‘예측 가능성’이라는 한 줄기 빛
분석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최종 확정한 15% 관세가 최소한 가격‧원가 구조를 예상할 수 있는 ‘가이드레일’을 제공한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 멕시코, 캐나다 등 경쟁 생산 거점에서 수출되는 차량의 관세 수준이 어떻게 변동될지는 아직 안갯속이다.
“일본의 절대적 조건은 이제 대략 윤곽이 잡혔다. 하지만 한국, 멕시코, 캐나다산 차량과의 상대 경쟁력이 어떻게 바뀔지는 수익 전망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 카토 미오, 라이트스트림리서치
결국 일본 완성차업계는 해외 생산 현지화 가속, 전기차·차세대 배터리 기술 투자, 동맹·제휴 강화라는 세 갈래 전략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다. 관세 인하가 가져다준 시간적 여유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2020년대 후반을 넘어 2030년대 자동차 판도까지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6. 용어와 배경 설명
· ASEAN-6: 동남아 6개국(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 싱가포르)을 묶어 자동차 시장에서 지칭하는 약어다. 역사적으로 일본 자동차가 강세를 보였으나, 최근 중국과 한국 브랜드가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 중이다.
· 전기차(Electric Vehicle, EV): 내연기관 대신 배터리와 전기 모터로 구동되는 차량을 의미한다. 배터리 가격 하락·탄소중립 정책 강화로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핵심 경쟁축이 되고 있다.
· 관세(Tariff): 국가가 수입품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자국 산업 보호와 재정 수입 확보가 주된 목적이다. 관세율이 높을수록 수입품 가격이 올라가 국내 소비자에게 ‘가격 장벽’이 형성된다.
◎ 결론
관세 인하라는 긍정적 신호에도 불구하고, 일본 완성차업계가 처한 근본 과제는 중국 브랜드의 급부상, 내수 소비 부진, 규모의 경제 불균형 등 복합적 구조 문제다. 산업 구조조정과 전략적 제휴, 그리고 해외 생산 네트워크 재편이 보다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해법으로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