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여파로 스위스국립은행, 외환 매입 3년 만에 최대

취리히—스위스국립은행(SNB)이 2분기 동안 50억6,000만스위스프랑(미화 약 63억6,000만달러) 규모의 외화를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9월 30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수치는 최근 3년여 사이 분기 기준으로 가장 큰 규모의 외환시장 개입을 기록했다.

SNB는 자국 통화인 스위스프랑의 급격한 절상을 막기 위해 외화 매입을 단행해 왔다. 지난 4~6월 중 외환시장에는 특히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이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4월에 발표한 대미(對美) 수입품 관세 부과 계획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인 데 따른 결과다.


환율 급변…안전자산 유입

실제로 4월 한 달 동안 스위스프랑은 미 달러화 대비 7%, 유로화 대비 2.2% 급등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미·중 무역분쟁 재점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달러 가치를 짓눌렀고,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프랑에 매수세가 몰렸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주의 관세를 발표한 직후 변동성이 급격히 커졌다. SNB는 급등세를 완화하기 위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 카르스텐 유니우스 J.사프라 사라신 수석이코노미스트

SNB의 정책 목표 중 하나는 물가 안정인데, 연간 인플레이션을 0~2% 범위로 유지하는 것이 공식적인 지침이다. 그러나 통화 가치가 지나치게 상승하면 수입물가가 떨어져 물가 둔화 압력이 커진다. 이는 스위스가 전통적으로 수출·금융 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점과 맞물려 중앙은행에 큰 부담을 준다.


최근 5개 분기와 대조

이번 2분기 대규모 개입은 직전 5개 분기 동안의 누적 개입액(12억6,000만프랑)과 비교해도 눈에 띄는 수준이다. 반면 SNB는 개입 여부와 구체적인 가격·시점을 원칙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으며, “논평을 사양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주 마르틴 슈레겔 SNB 총재 대행은 “필요할 경우 모든 정책 수단을 활용해 인플레이션 목표를 수호하겠다”며 예외 없이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美 재무부와의 미묘한 균형

한편 9월 29일 SNB와 미 재무부는 “경쟁적 목적의 환율 조작은 하지 않는다”는 공동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는 미국이 6월 스위스를 ‘환율 및 무역 관행 모니터링 대상국’ 명단에 포함한 이후 나온 공식 코멘트다.

ING은행의 샤를로트 드 몽펠리에 이코노미스트는 “해당 성명이 SNB의 전략에 큰 변화를 주진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필요 시 개입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SNB는 지금 두 가지 어려운 선택지 앞에 서 있다. 외환시장에 계속 개입하면 미국의 비판을 불러올 것이고, 그렇다고 기준금리를 0% 이하로 낮추는 것은 은행 시스템에 과도한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다.” — 샤를로트 드 몽펠리에 ING은행 이코노미스트


용어·배경 해설

안전자산(Safe-Haven Asset)은 글로벌 시장 변동성이 커질 때 투자자들이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선호하는 자산을 뜻한다. 스위스프랑, 일본엔, 금(金) 등이 대표적이다.

외환시장 개입(Forex Intervention)은 중앙은행이 외화를 직접 사거나 팔아 자국 통화의 가치 변동 속도를 조절하는 정책 수단이다. SNB의 경우 프랑 가치가 과도하게 오르면 달러·유로 등을 사들여 시장에 프랑을 공급한다.

분기 기준 최대라는 표현은 통상 2010년대 중반 유로존 위기 이후 SNB가 실시했던 대규모 개입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큰 규모라는 의미다.


전문가 시각

시장 분석가들은 “스위스 경제의 특성상 환율 안정이 물가·성장률·수출 기업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점을 공통적으로 강조한다. 최근 스위스 실업률과 명목 임금이 안정적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강세 프랑이 장기화될 경우 관광·시계 산업 등 주요 수출 부문은 가격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향후 관전 포인트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 관세 발표 여부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방향 ▲스위스 국내 소비자물가 추이 등이 꼽힌다. 국제금융센터(IFC)에 따르면, 스위스프랑이 달러 대비 1% 상승할 때 스위스 GDP 성장률은 0.2%p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추정치

종합하면, SNB는 미국과의 외교적 마찰 가능성을 의식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물가 목표를 고수해야 하는 ‘정책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기준금리를 더 마이너스로 내리는 방안은 금융기관 수익성 악화와 국민연금 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다. 따라서 외환시장 개입은 앞으로도 SNB의 핵심 대응책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