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인베스팅닷컴 코리아] 도널드 트럼프 전(前) 미국 대통령이 일부 브릭스(BRICS) 국가들을 대상으로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해당 국가들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2025년 8월 16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계 시장조사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브릭스 내부 결속 강화 논의가 활발해 보이지만, 구성국 간 이해관계가 여전히 엇갈려 정치‧경제적 통합 수준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산 원유를 대규모 구매했다는 이유로 인도산 수입품 전체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계획을 밝히면서 인도의 실효 관세율은 36%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이는 주요 20개국(G20) 가운데에서도 손꼽히는 고율 관세 수준이다.
브라질 역시 정치적 요인으로 징벌적 관세 대상이 됐다.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전(前)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재판 문제와 미(美) 기술기업에 대한 ‘공격’이 관세 강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또한 토지 개혁 관련 갈등으로 미국과 긴장이 높아지며 고관세 압박을 받고 있다.
관세 충격이 현실화되자, 브릭스 국가들은 상호 협력 강화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특히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관세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필요성”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현재까지는 구두(口頭) 차원의 공감대만 있을 뿐, 실질적 협력의 진전은 미미하다”고 평가했다. 각국은 무엇보다도 자국과 미국 간 관계 악화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 통합을 가로막는 구조적 난제
브릭스는 브라질(Brazil)‧러시아(Russia)‧인도(India)‧중국(China)‧남아공(South Africa)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신흥국 협의체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가 전략적 경쟁 구도에 놓여 있고, 경제 구조도 상당히 상이하다. 이러한 요소가 공동 통화·무역 블록으로 발전하는 과정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무역 구조 역시 중국 편중이 두드러진다. 보고서는 “브라질‧인도‧남아공 등은 제조업을 육성하려 하지만, 중국에서 값싼 공산품이 대량 수입되면서 자국 산업이 압박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도는 2020년 이후 중국을 상대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반덤핑 조치’를 부과했다. 반덤핑은 특정 국가가 자국 시장에 상품을 덤핑(헐값) 판매할 때 관세를 매겨 불공정 거래를 제재하는 수단이다.
또한 중국을 제외한 브릭스 회원국 간 교역 비중은 크지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브라질·남아공의 대(對) 브릭스 수출 비중은 2~5%에 불과한 반면, 대미 수출 비중은 8~18%에 달한다. 이러한 비대칭성 탓에 ‘브릭스 공동 통화’ 구상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관세가 유지되는 한, 브릭스가 ‘단결된 목소리’를 내는 듯 보이겠지만 실질적 영향력, 특히 달러 의존도 축소나 교역 확대와 같은 구체적 성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 캐피털 이코노믹스 보고서
■ 용어와 배경 설명
*브릭스(BRICS) : 2006년 결성된 신흥 경제권 협의체로, 글로벌 경제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아 왔다. *반덤핑 조치 : 특정 수입품 가격이 생산 원가보다 지나치게 낮을 때 부과하는 관세로, 자국 산업 보호가 목적이다. *실효 관세율 : 법정 관세와 각종 할증을 합산한 실제 적용 관세 비율이다.
■ 기자 시각
이번 사안은 미국·중국·인도라는 3대 축이 엮이면서 신흥국 외교‧경제 전략에 중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전문 분석가들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산업 정책이 맞물린 현 상황에서, 국가 간 관세 분쟁은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조업·원자재·에너지 가격 전반에 파급 효과를 미친다”고 지적한다.
특히 인도의 관세율이 36%로 치솟으면, 현지 소비재·부품·설비 가격이 상승해 인도 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브라질과 남아공도 농업·광물 수출이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을 수 있어, 대체 시장 확보를 위한 정책적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반면 미국은 관세 부과를 통해 △자국 제조업 보호 △전략적 자원 공급망 다변화 △정치적 레버리지 확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 그러나 과도한 관세 경쟁이 이어질 경우 글로벌 교역 위축과 물가 상승이라는 역풍을 맞을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트럼프발(發) 관세 압박이 브릭스의 ‘결속 접착제’가 될지, 혹은 일시적 구호(口號)에 그칠지는 중국과 인도 관계 개선, 그리고 미국 무역정책 방향에 달려 있다. 당분간은 ‘전략적 수사(修辭)’가 난무하겠지만, 실질 협력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