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의 한 반려동물용품 매장을 찾은 소비자들 모습ⓒSpencer Platt | Getty Images
미국 월가 대표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가 “관세로 인한 소비자 물가 상승 압력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시장 참여자 대부분은 골드만과 같은 견해를 공유하고 있으며, 연말로 갈수록 물가가 더욱 상방 압력을 받을 것이라는 데 이견이 거의 없다.
2025년 8월 13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전날 발표된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예상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비교적 온건한” 수준으로 나오면서 투자자들은 일시적인 안도감을 보였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진짜 충격은 이제부터“라는 입장이다. 관세 부과 이전에 쌓였던 재고가 소진되고, 실효 관세율이 초기 3%에서 18% 수준까지 뛰어오른 상황에서 기업이 더 이상 비용을 흡수하지 못할 경우, 결국 소비자가 가격 인상을 직접 체감하게 된다는 논리다.
트럼프, 골드만에 “해고하라” 몰아붙여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자신의 Truth Social 계정에서 “보고서를 작성한 이코노미스트를 해고하지 않으면 CEO인 데이비드 솔로몬이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문제의 보고서에서 골드만 삭스의 데이비드 머리클(David Mericle) 이코노미스트는 “연말까지 소비자들이 관세 부담의 상당 부분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적시했다.
“관세는 GDP를 1%포인트 끌어내리고, 인플레이션을 1~1.5%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 – 마이클 페롤리(JPMorgan Chase 수석 미국 이코노미스트)
페롤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단행된 관세 인상 폭은 전후(戰後)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라며, 소비자 가격 전가 비율(pass-through)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조 인플레이션 하락세, 사실상 멈췄다”
UBS의 브라이언 로즈(Brian Rose)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핵심물가(energy·food 제외) 하락 추세가 관세 영향으로 깨졌다”면서, 기업들이 비용을 가격에 전가하는 과정에서 물가가 완만하게 상승할 것으로 봤다. 다만 주거비 상승세 둔화와 팽창한 가계부채 부담이 일부 상쇄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월가 대다수 기관은 월별 0.3%~0.5% 수준의 물가 상승을 예상한다. 이는 연준(Fed)이 선호하는 핵심 PCE 물가를 3% 중반까지 밀어올릴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일시적 인플레이션”이라는 전제 아래, 연준이 올해 안에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여지는 여전히 크다고 본다. 고용시장 냉각이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통화정책 정상화(긴축 완화) 명분이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GDP 성장률 타격… 0%대 후반 전망
JPMorgan은 소비가 미국 GDP의 3분의 2를 차지한다는 점을 들어, 관세 충격으로 올해 하반기 GDP가 약 1%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월가 컨센서스를 집계한 블루칩 이코노믹 인디케이터스(Blue Chip Economic Indicators)의 8월 보고서 역시 올해 하반기 평균 성장률을 0.85%로 제시했다. 이는 직전월 0.75%보다 다소 상향된 수치이나, “관세 충격이 일시적”이라는 전제 아래 내년 성장률이 큰 폭 개선될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8월 29일 ‘디 미니미스’(de minimis) 예외 만료 주의보
시장에서는 특히 8월 29일 부로 800달러 미만 수입품에 적용되던 관세 면제(디 미니미스) 조항이 종료되는 점을 예의 주시한다. 팻시언 매크로이코노믹스(Pantheon Macroeconomics)는 이로 인해 연말 핵심물가가 1%포인트 추가 상승해 3.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까지 소비자에게 전가된 상승분은 겨우 25%에 불과하다. 앞으로 핵심재 가격이 더 빠르게 오를 가능성이 크다.” – 팬시언 매크로이코노믹스
BNP 파리바(BNP Paribas)도 “최근 서비스업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상품뿐 아니라 서비스 가격에도 상방 압력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연준이 우려하는 것은 수치 자체보다 물가의 ‘점착성’(stickiness)”이라며, 7월 CPI에서 서비스물가가 예상보다 강세를 보인 점이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라고 평가했다.
‘점착성 물가’ 지표도 빨간불
클리블랜드 연은의 ‘점착성 소비자물가지수(Sticky CPI)’는 임대료·외식·보험료·가재도구 등 가격 변동이 느린 품목을 포함한다. 해당 지표의 3개월 연율은 3.8%로 2024년 5월 이후 최고치다. 반면 휘발유·농산물 등 변동성이 큰 ‘유연(流)을 CPI’는 훨씬 낮다.
PNC의 거스 포처(Gus Faucher)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관세는 앞으로도 물가를 밀어올릴 것”이라며, “핵심 CPI가 이미 7월 반등했고, 기업이 관세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면서 핵심 PCE 물가가 Fed 목표치를 꾸준히 웃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노동시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도 물가 오름세가 연준의 결단 시점을 늦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용어 풀이 및 배경 설명
디 미니미스(de minimis)란 “사소한 것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미국에서는 관세 면제 기준을 800달러 이하로 설정해 왔다. 해당 예외가 사라지면 의류·생활용품·전자기기 등 소액직구 상품 가격이 일제히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점착성 물가(sticky price inflation)는 경기 변동이나 원자재 가격 변화에도 가격 조정이 더딘 품목을 중심으로 산출한 지표다. 주거비·보험료처럼 계약 또는 규제 구조상 단기간에 가격을 내리기 어려운 항목이 많아, 장기 인플레이션 추세를 가늠하는 데 활용된다.
기자 해설
현재 월가는 「관세→기업 원가 상승→가격 전가→소비 위축→성장 둔화」라는 교과서적 악순환을 우려하고 있다. 다만 팬데믹 이후 재정·통화정책 경험상, 정부·연준이 경기 둔화를 확인하는 즉시 추가 부양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크다. 관세발 인플레이션이 단기간 피크를 형성한 뒤 공급망 재조정과 정책 대응으로 진정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핵심은 시간차(time lag)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인플레이션 정점과 연준의 정책 반응 사이에 발생할 시차 관리가 향후 시장 변동성을 결정할 전망이다. 투자자라면 향후 수개월간 발표될 CPI·PCE·고용보고서에서 인플레이션 ‘점착성’과 고용 둔화 속도를 동시에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