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관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압박, 글로벌 무역전쟁, 지정학 역학 구도 속에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가자지구 분쟁, 미·유럽 경기 둔화 우려, 그리고 중국·인도 등 ‘신(新) 축(軸)’의 부상까지 맞물리면서, 3년 반이 넘게 이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사회의 관심사(關心事)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난 형국이다.
2025년 7월 27일,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주요국 정책 결정자들은 각종 현안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선을 뒷순위에 놓고 있다. 이로 인해 모스크바와 키이우 양측 모두 ‘냉각된 외교 공간(cold diplomatic space)’ 속에 고립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이스탄불에서 열린 7월 하순 협상 테이블조차 주요 매체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전선에서 매일 수 미터 단위 영토를 두고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현실과 대중의 관심 사이에는 뚜렷한 괴리가 존재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7월 14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비용을 대는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에 미제 무기를 추가 공급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했다. 동시에 그는 “러시아가 50일 안에 평화협정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최대 100%의 2차 관세(secondary tariffs)와 ‘매우 가혹한 제재’를 부과하겠다”며 시한을 제시했다.
“러시아가 기한 내에 협상 테이블로 나오지 않으면, 석유·가스 등 원자재를 구매하는 국가들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2차 제재를 가할 것” — 트럼프, 2025년 7월 14일
이 같은 경고는 인도와 중국을 정조준한다. 두 국가는 러시아산 에너지 구매 비중이 높아 신규 제재가 현실화될 경우 거래 비용 급등 및 공급망 교란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국제 유가·가스 가격에도 연쇄 충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1. 러시아의 ‘와일드카드’와 계산
현재 러시아는 9월 2일까지 휴전 의지를 행동으로 입증해야 한다. 양측이 전쟁포로 교환 문제에서 일부 진전을 보였으나, 실질적 평화 청신호로 보기에는 역부족이다.
우크라이나 국립전략연구소(NISS)의 미콜라 비엘례스코프 연구원은 NBC뉴스 인터뷰에서 “크렘린은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러시아를 압박하기엔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2차 제재가 현실화되려면 중국, 인도와 마찰을 감수해야 하는데, 미국이 과연 그 위험을 감수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용어 설명: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란 제재 대상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까지 금융·무역 제재 범위에 포함하는 규제다. 1차 제재보다 광범위한 파장이 특징이며, 달러 결제망 접근 제한 등으로 실질적 경제 타격이 크다.
2.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곤경
무기 공급을 미국·유럽의 ‘시혜’에 의존하는 우크라이나는 최근 타협 신호를 보이고 있다. 키이우는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 일부를 양보하는 대신 ‘성배’로 불리는 NATO 가입 보장을 요구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NATO 안보 보증을 일축하며 소모전을 장기화하고 있다.
현장에서 러시아군은 대규모 징집 병력과 드론 공세를 활용해 소폭이지만 지속적인 진격을 이어가는 중이다.
3. 키이우 내부의 불만과 정치적 리스크
우크라이나 내부 상황도 녹록지 않다. 계엄령 장기화, 선거 연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리더십을 둘러싼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7월 23일 키이우 도심에서는 독립 반부패기관(NABU, SAPO 등) 권한 축소 법안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EU 고위 인사들은 “우크라이나가 유럽적 가치를 훼손한다”고 Politico에 우려를 표했다. EU 가입 선결 조건 중 하나가 ‘구조적 부패 척결’이기 때문이다.
7월 중순 단행된 내각 개편 역시 젤렌스키 측근 중심으로 이루어져 “권력 집중” 논란을 키웠다.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선임연구원은 이메일 논평에서 “키이우는 외부 불확실성이 커지는 틈을 타 내부 결속을 다지고 있다”며, “국제 사회의 지원이 점차 ‘전선 유지’라는 실리로 기울고 있다”고 분석했다.
4. 시장·에너지 파급 효과와 전망
트럼프의 2차 관세 경고가 현실화되면, 러시아 에너지·원자재에 가격 상한제(price cap)보다 강력한 충격이 가해질 수 있다. 이 경우 브렌트유·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단기 급등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러시아 공급 비중이 높은 유럽·아시아 신흥국은 인플레이션 재점화 가능성에 직면한다.
시장조사업체 R.Politik은 “트럼프의 ‘전술적 지연(tactical delay)’ 전략이 유럽에 재정·군사적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독일, 프랑스, 폴란드 등이 우크라이나 지원 비율을 높이고 있으나, 국내 재정 적자 압박과 국방 예산 확대 사이에서 균형 잡기가 쉽지 않다.
◆ 전문가 통찰 — 필자는 ‘50일 시한’이 실질 협상판을 열기보다는 시장·동맹 압박용 카드에 가깝다고 본다. 러시아가 대대적 양보 없이 버티기를 선택할 경우, 미국이 대중·대인도 2차 제재를 어디까지 밀어붙일지는 불투명하다. 반면, 우크라이나 내부 균열이 심화될 경우 서방의 ‘지속 가능성’도 시험대에 오른다. 결국 열쇠는 “제재와 지원의 실질적 이행력”과 “우크라이나 국민이 체감하는 전쟁 피로도”에 있다.
5. 결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무기, 제재, 정치 리스크라는 삼중(三重) 난제를 안은 채 ‘긴 겨울(cold)’로 들어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50일 시한이 협상 촉매제가 될지, 갈등 장기화의 분수령이 될지는 9월 초가 돼야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국제 사회가 직면한 시험대는 ‘압박 카드’의 실효성과 ‘우크라이나 개혁 동력’이라는 두 축으로 수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