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빠른 평화 합의’를 압박하는 가운데, 유럽 주요 정상들이 워싱턴을 찾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이들은 트럼프·젤렌스키 회담이 예정된 18일(현지시간) 전후에 일정을 잡아 젤렌스키의 협상력이 약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향후 안보 보장 장치를 확실히 하기 위한 공동 전선을 구축한다.
2025년 8월 17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 알래스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휴전이 아닌 즉각적인 평화 합의를 지향한다는 입장을 굳혔으며, 이에 따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도 동조를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는 소셜미디어에서 “BIG PROGRESS ON RUSSIA”라며 진전을 자축했으나 세부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이번 워싱턴 행렬에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17일 사전 회의를 열어 “우크라이나의 국경은 무력으로 변경될 수 없다”는 공동 메시지를 채택하고, 전투 종식 이후 ‘재보증(Reassurance) 폭력 억제군’을 배치해 우크라이나 영공·해상을 보호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트럼프–푸틴 회담 이후 부상한 ‘영토 교환안’
로이터 통신이 모스크바 측 관계자를 인용해 전한 바에 따르면, 미·러 두 정상은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일부 소규모 지역을 반환하는 대신, 우크라이나가 동부 도네츠크·루한스크(일명 도네츠크·루한스크 주, ‘돈바스’ 지역) 광대한 지역을 양도하고 다른 전선은 동결하는 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돈바스는 석탄 매장량이 풍부해 전략적 가치가 높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는 CNN 인터뷰에서 “미국이 나토(NATO) 제5조(Article 5)와 유사한 수준의 방위 공약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NATO 제5조는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전체에 대한 공격
으로 간주하는 집단 방위 원칙이다. 그는 “러시아가 그 조건을 처음으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했지만, 키이우에서는 “실제 효력과 구속력을 담보할 추가 조치 없이는 설득력이 없다”는 회의론이 짙다.
키이우의 딜레마와 과거 경험
우크라이나는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체결 때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국경이 보장받을 것이라 믿었으나,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했고 2022년 2월 전면 침공을 단행했다. 이번 전쟁은 3년 6개월째 지속되며 사망·부상자가 100만 명 이상에 달한다. 돈바스 상실이 우려되는 젤렌스키 정부로서는 안보 공약만으로 영토 양보를 정당화하기 어렵다.
이에 유럽연합(EU) 행정부 수반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동행한다. 스투브 대통령은 올해 초 플로리다에서 트럼프와 골프 회동을 가지며 관계를 다졌고, 멜로니 총리는 다수 정책에서 트럼프식 노선을 공감한다고 평가된다.
‘폭격 속 협상은 불가’…유럽 내 상반된 목소리
폴란드 외교부는 “폭탄이 떨어지는 가운데서는 평화를 협상할 수 없다”
고 직격했다. 트럼프가 처음에는 휴전 후 협상을 주장했다가, 푸틴 회담 이후 ‘휴전 없는 평화 협상’으로 방점을 옮긴 데 따른 비판이다. 영국·프랑스 등은 전투 중단 이후 재보증군 투입 구상을 오래전부터 추진했지만, 다른 유럽 국가는 군사 개입에 소극적이다.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CBS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가 양보해야 한다”
며 “협상이 결렬될 경우 러시아에 추가 제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당장 평화합의 직전은 아니지만, 추가 협상을 위한 충분한 진전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푸틴·루카셴코·토카예프 간 연쇄 교신
푸틴 대통령은 알래스카 회담 직후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에게 상세 내용을 보고했고,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도 통화했다. 이는 전후 질서 논의가 이미 러시아 주도의 ‘포스트-우크라이나 시나리오’에 따라 굴러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알래스카 정상회담 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크렘린은 돈바스 전역을 양도받는 대가로 나머지 전선을 동결할 용의가 있다”
고 전했다는 후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즉각 거부 입장을 밝혔다.
미국 내 정치적 맥락
트럼프 행정부는 2024년 재집권 이후 ‘미국 우선·신속 협상’ 프레임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2월 백악관 면담에서는 트럼프와 JD 밴스 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감사할 줄 아는 태도를 보여라”
며 공개 면박을 준 바 있다. 이번에 유럽 정상들이 동행하는 배경에 ‘또 다른 공개 망신’을 막아 우크라이나의 협상력을 고양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전문가 시각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영토 양보 대가로 얻을 ‘사실상 NATO 제5조급’ 방위 공약의 실효성“이라고 국제안보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구속력·발동 조건·미 의회의 승인 절차 등이 불투명하다면, 1994년과 같은 공허한 약속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유럽 내 ‘우크라이나 재보증군’이 실제로 언제, 어떤 형태로, 얼마 규모로 배치될지는 아직 미정이다. 미국이 직접 병력을 투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EU·NATO의 군사적 책임 분담이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른다.
결국, 젤렌스키 대통령은 도네츠크·루한스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현실적 안보 보장을 끌어내야 하는 복합 과제에 직면했다. 유럽 정상들의 ‘워싱턴 집단 행보’는 이러한 딜레마를 완화하려는 외교 총력전으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