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미 노동통계국 국장 전격 해임에도 시장은 ‘무반응’… 제도적 신뢰 약화 경고음

미 노동통계국(Bureau of Labor Statistics·BLS) 국장이 도널드 트럼프전 미국 대통령에 의해 해임됐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은 거의 요동치지 않았다.

2025년 8월 10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예상을 밑돈 고용지표 발표 직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BLS 국장 해임을 전격 발표했다. 통상적인 상황이라면 제도적 독립성 훼손이 시장 불안을 자극할 만하지만, 이날 S&P500 지수는 사상 최고치 부근을 유지했고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0.02%p가량만 움직이며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보였다.

Capital Economics는 같은 날 내놓은 메모에서 “시장 반응은 한마디로 ‘어깨를 으쓱’ 정도”라며 “주가지수는 고점 근처, 국채 수익률은 미동”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는 제도적 무게감이 경제·금융 변수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신호로 오해될 수 있으나, 그러한 해석은 중대한 오류”라고 경고했다.

BLS는 미국 노동시장·물가·생산성 등 핵심 거시지표를 작성·발표하는 연방 통계기관이다. 통계 신뢰성이 흔들리면 연준(Fed), 의회, 기업, 가계 등 모든 경제 주체의 의사결정이 왜곡될 수 있다. 경제 데이터를 피와 산소에 비유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달러 패권과 금융허브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투명하고 독립적인 통계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보호해 왔다.

그럼에도 시장 반응이 미미했던 배경에는 해임이 BLS 운영 방식에 실질적 변화를 초래할지 불확실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Capital Economics는 “만약 해임 목적이 ‘더 우호적인 수치’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역설적으로 연준이 더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선택해 결과적으로 시장에 부정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또한 설문 응답률 하락이라는 통계 품질 저하 문제를 지적했다.

“팬데믹 이후 기업·가계의 통계조사 참여율이 급격히 떨어졌고, 이는 노동시장 데이터의 표본오차를 키우고 있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선진국 전반에서 관측되는 현상으로, 국내총생산(GDP)·물가·고용 등 핵심 지표의 판독 난이도를 높이고 있다.


영국 사례와의 비교

보고서는 2022년 영국 ‘미니 예산’ 사태와도 대비했다. 당시 리즈 트러스 총리와 콰지 콰텡 재무장관이 재정준칙을 무력화하자 파운드화·국채가 폭락했다.

“영국의 경우 거시 정책기둥 자체가 흔들리면서 시장이 즉각 반응했지만, 통계 품질 저하는 채권·주식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더디고 모호하다.”

장기적 위험 신호

Capital Economics는 “제도 붕괴는 대부분 서서히 진행되며 초기에는 가격 신호가 희미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투자자들은 위기가 만개하기 전까지 ‘삶은 개구리’처럼 위험을 체감하지 못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미국 제도적 기반이 아직 붕괴 국면은 아니지만, 법치·사법 독립·언론 자유·공공기관 신뢰에 대한 연쇄 공격이 이어질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전문가 해설: 왜 시장은 조용했나

정보 비대칭 – 투자자들은 해임이 실제 데이터 생산 과정에 영향을 미칠지 판단할 단서를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통화정책 프레임 – 연준의 향후 행보가 더 중요한 변수로 인식되는 가운데, 단일 인사 변동은 의사결정 모델 가중치에서 밀려났다는 분석이다.
선행 경험 부재 – BLS 수장 교체가 금융시장을 뒤흔든 전례가 적어 ‘리스크 프리미엄’에 반영할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

용어 풀이

BLS : 미국 노동부 산하 전문 통계기관으로, 매월 첫째 금요일 발표되는 고용보고서(Nonfarm Payrolls)를 비롯해 소비자물가지수(CPI), 생산성·임금 통계 등을 작성한다. Capital Economics : 런던에 본사를 둔 거시경제 리서치 회사로, 중립적 분석과 장기 전망 보고서로 유명하다.

기자의 시각

이번 사태는 ‘숫자 그 자체’보다 숫자를 만드는 제도 인프라가 금융시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킨다. 역사적으로 통계 왜곡은 투자자 신뢰 하락→자본유출→통화·재정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놀랍도록 차분한 시장은 아직 본질적 위험을 가격에 반영하지 않았지만, 투명성 약화가 누적될 경우 달러·미 국채 무위험 지위에도 금이 갈 수 있다.


결론

정치적 소용돌이와 달리 시장은 당장 수급·실적·금리 같은 펀더멘털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견고한 제도적 토대가 붕괴할 경우, 금융시장은 언제든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이번 ‘무반응’은 침묵이 아니라, 시험대에 오른 미국 제도의 경고음으로 읽힐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