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노동통계 불신 발언, 경제·시장 전반에 미칠 파장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노동통계국(Bureau of Labor Statistics, BLS)이 발표하는 공식 지표의 신뢰성을 공개적으로 의심한 사실이 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2025년 8월 16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BoA 증권 애널리스트 클라우디오 이리고옌(Claudio Irigoyen) 팀은 고객메모에서 “공적 통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연방정부 정책의 질·기업의 고용·투자 의사결정까지 연쇄적으로 악화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통계가 정치적 압력으로 ‘좋은 소식만’ 제공하도록 왜곡되면 자산가치가 흔들리고, 경제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민간 통계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애널리스트들은 “경제가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에 대한 신뢰 고리(trust chain)가 끊기면 금융시장 변동성은 필연적으로 확대된다”고 덧붙였다.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라면 설문조사 응답률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응답이 줄면 통계 품질은 더욱 떨어지고, 최종적으로 정책결정과 경제운용이 모두 손상되는 악순환에 빠질 것” — BoA 증권 보고서


무엇이 문제인가: BLS와 ‘공공재로서의 통계’

BLS는 노동시장·임금·가격지수 등을 집계·발표하는 미 연방 통계기관이다. 기업·투자자·정책당국이 의존하는 ‘공공 데이터 인프라’의 핵심 축으로, 그 신뢰도는 시장 참가자들이 공유하는 1차 정보이다. 통계가 공정성을 잃으면 ‘정보 비대칭’이 확대돼 금융시장이 제 기능을 못 하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번 논란은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8월 초, 에리카 맥엔타퍼(Erika McEntarfer) BLS 국장을 전격 해임하면서 촉발됐다. 그는 최근 비농업부문 고용(Non-Farm Payrolls) 수치가 대폭 하향 수정된 것을 두고 “정치적 의도로 조작됐다”는 주장을 폈으나, 이를 뒷받침할 명확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해임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E. J. 안토니(E.J. Antoni)를 차기 BLS 국장으로 지명했다. 시장은 “정치적 충성도에 따른 인선”이라는 평가와 함께 통계 독립성 훼손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물가연동국채(TIPS) 시장의 민감도

BoA는 특히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신뢰성을 강조했다. 물가연동국채(TIPS)(Treasury Inflation-Protected Securities)발행 잔액 약 2조 달러 규모로, 원금이 CPI 상승률에 맞춰 조정된다. BoA는 “CPI 자체가 의심받으면 인플레이션 헤지수단으로서 TIPS의 효용이 훼손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번 주 발표된 7월 CPI 헤드라인 상승률은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다. 그러나 데이터 신뢰성 논란이 지속될 경우, 숫자 자체가 시장안도감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전문가 시각: ‘데이터 거버넌스’ 리스크 확대

필자는 ‘데이터 거버넌스’의 균열이 단순히 통계기관 문제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처럼 금융시장이 경제지표에 즉각 반응하는 구조에서는 ▲가격발견 기능 약화금리·통화정책 오판 위험 ▲해외 투자자 신뢰 하락 등 복합적인 후폭풍이 불가피하다.

특히 설문응답 기반 지표(고용상황, 소비자심리지수 등)는 응답률 하락이 변동성 확대와 직결된다. 응답률이 1%포인트만 하락해도 샘플오차는 통상 10% 이상 늘어난다. 이는 연준(Fed)의 정책시그널 해석을 더 어렵게 만들어, 중·장기적으로 시장이 ‘지표 공백’을 프라이싱해야 하는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

statistics

정책·시장 대응 시나리오

민간 통계 플랫폼 부상: 기업·투자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수집·가공한 ‘고빈도 데이터’를 의사결정에 더 많이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산가격 할인율 확대: 데이터 불확실성 프리미엄이 채권·주식·파생상품에 모두 반영돼, 실질 밸류에이션 재조정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입법·감독 강화 가능성: 의회와 정부가 통계기관 독립성 강화 법안을 추진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결국 핵심은 “숫자를 둘러싼 신뢰”다. 숫자가 불신받으면 중앙은행, 의회, 시장 어떤 주체도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도 불확실성의 파도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다.


※용어 풀이
비농업부문 고용(Non-Farm Payrolls): 농업·가사도우미·비영리단체 종사자를 제외한 미국 내 총 임금근로자 수를 월별로 집계한 지표. 노동시장 전반을 가늠하는 ‘골드 스탠더드’로 평가된다.
TIPS: 원금이 CPI에 연동돼 실질가치를 보존할 수 있도록 설계된 미 재무부 발행 국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