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도 맞닥뜨린 ‘물가의 현실’: 상승한 가격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

미국 소비자 물가가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재임기에 급등한 뒤 충분히 내려오지 않으면서, 재집권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같은 난제를 마주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은 둔화했지만, 가격 수준은 여전히 높아 소비자 불만이 누적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가격이 한 번 오르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 ‘하방 경직성’ 속성 때문에 정치적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2025년 11월 22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가계 체감물가의 고통을 축소해 보이거나, 고용과 임금을 끌어올릴 기업 투자에 정책 초점을 맞추는 등 바이든 전 대통령과 유사한 실책을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규모 투자 유치 전략은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특성이 있어 단기 민심을 달래기 어렵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최근 며칠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국빈 방문 시작 자리 등에서 수조 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를 자랑하며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동시에 그는 인플레이션이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했고, 그 근거로 상대적으로 낮은 휘발유 가격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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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끼치도록 비슷하다”라고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연구소(AEI)의 마이클 스트레인 경제정책국장은 평가했다. 그는 “두 사람 모두 정치의 상식, 즉 미국인들은 가격이 빠르게 오르는 것을 정말로 싫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실수”라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은 연율 약 3% 수준으로 둔화해 바이든 전 대통령 재임 중 정점이었던 9%대보다는 낮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적용 품목을 포함해 재화 가격 수준은 팬데믹 이전 대비 여전히 높다. 임금 상승분도 상당 부분이 높은 물가에 상쇄됐다. 최신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따르면, 미국인이 선호하는 품목을 중심으로 식품 가격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구체적으로 소고기 약 15%, 바나나 7%, 커피 20% 이상이 올랐다. 주로 수입하는 공구·하드웨어는 전년 대비 6.2% 상승해 2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고, 휴지·키친타월 등 청소용품5.5% 올라 2023년 12월 이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경제 운영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 수행 지지율은 하락세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사실을 이번 주 인정했다. 로이터/입소스(Reuters/Ipsos)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율은 38%로 집권 복귀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가격 부담 때문에 소비자 심리도 위축됐다.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11월 기준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당파를 가리지 않고 낙폭이 확인됐으며, 무당파 유권자의 심리는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공화당 지지층조차도 1년 반 만에 가장 큰 폭의 하락을 보이며 불만을 드러냈다.

추수감사절 식탁 물가도 민심을 보여준다. 미국농업국연맹(AFBF)은 올해 추수감사절 저녁 비용이 칠면조의 큰 폭 할인 덕분에 2024년 대비 5% 낮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 13% 높은 수준이다. 고구마, 냉동 완두콩, 신선 채소 트레이 등을 포함한 절반의 다른 메뉴2024년 대비 오히려 더 비싸졌다고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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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대한 불만은 지난해 트럼프의 승리를 견인했지만, 그 지지 기반이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이는 이달 치러진 주·지방 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한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6년 중간선거 추가 손실을 막기 위해 앞으로 수개월간 경합주 방문을 늘릴 계획이다. 초과근로수당, , 사회보장에 대한 세금 감면, 규제 완화, 의약품 가격 인하에 정책 초점을 맞춰 가계의 구매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행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라스베이거스에서 팁 과세 인하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대통령은 실효성이 입증된 경제 처방을 갖고 있다. 1기 때도 그랬다”며 “다만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 관세, 일부 식품에 대해 철회 —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커피바나나수백 개의 식품 품목에 대한 관세를 일부 철회했다. 동시에 2,000달러 규모의 ‘관세 재원’ 수표를 저소득·중간소득 가구에 지급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주택 구입 부담을 낮추겠다며 만기 50년짜리 주택담보대출 아이디어도 꺼냈지만,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더 비싼 선택이라며 혹평했다.

스트레인 국장은 억만장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까지도 미국인의 생활비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4월에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상기시키며,

“관세 탓에 미국 부모들이 딸에게 사줄 인형을 30개가 아니라 몇 개만 살 수 있을 수 있다”

고 인정했던 사례를 들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높은 비용을 더 빨리 완화할 새 정책을 모색하는 한편, 연방준비제도(Fed)금리 인하 압박을 가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 내용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 정부 재정을 동원해 제조업 확장을 추진했으나, 이런 투자는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유명무실해지기도 한다. 바이든은 2024년에 위스콘신주마이크로소프트 33억 달러 규모 데이터센터를 치적으로 내세웠다. 같은 장소에서 트럼프는 과거 대만 폭스콘100억 달러 투자를 환영했지만, 약속했던 1만3,000개 일자리는 끝내 현실이 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공지능(AI) 분야의 대규모 기업 투자도 밀고 있다. 이는 성장률을 높일 잠재력이 있지만, 인간 노동의 대체를 촉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AI 버블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도 감지된다.

트럼프와 바이든은 모두 육가공업체고기 가격 급등의 책임을 돌렸고, 의료비 절감 대책을 모색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분야에서 추가 발표를 예고했다.

— 중간선거를 향한 시선 —

디트로이트 인근에 사는 25세 티샤 블랙웰은 트럼프 집권 이후 일부 식료품과 휘발유 가격이 내려간 것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전보다 전반적으로 더 비싸다며, 내년 어머니의 보험에서 나이가 차 탈락하게 되면 건강보험료가 급등할까 걱정이라고 했다.

“내년 건강보험료가 어떻게 될지 무섭다”

고 그는 말했다.

케이토 연구소의 스콧 린시컴은 가격은 일단 오르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선은 가격이 고원(plateau)을 형성하고, 임금이 따라잡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다시 부유해진 듯 느낀다”

고 그는 설명했다. 이어

“정치인은 쉬운 해법, 사진 촬영, 테이프 커팅을 원한다”

며, 대부분의 미국인은 드라마 없는 안정 성장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린시컴은 관세에 대해 미국인 다수가 부정적으로 돌아섰다고 평가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이를 철회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성장률 6%를 내세우는 등 비현실적 전망을 홍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케빈 해셋 백악관 최고 경제자문이 제시한 4% 성장 목표조차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반면 국제통화기금(IMF)2025년 2.0%, 2026년 2.1%의 미국 성장률을 전망한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벤 해리스(전 바이든 행정부 재무부 고위직)는 바이든 팀이 인플레이션을 “일시적(transitory)”이라고 설명했던 점은 불운한 선택이었다고 인정했다. 다만 그는 트럼프 집권 거의 1년이 지난 시점에 여전히 물가 압박의 책임을 바이든에게 돌리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트럼프의 관세, 이민 단속, 연준 압박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조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해리스는 “이건 예상했어야 했다”며, “만약 목표가 리쇼어링(제조업의 국내 복귀)이라면, 애초에 해외 이전의 이유가 가격 인하였던 만큼 비용 상승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2019년 트럼프 1기 초기에 냉장고 등 품목 관세가 즉시 소비자 가격에 전가됐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가격이 더 오래 버텼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은행들은 내년에 전가가 사실상 완료될 것으로 내다본다. 이는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소비자 불안을 키울 수 있다.

해리스는 더 큰 피해가 장기적일 수 있다고 봤다. 다수의 국제 투자자들이 리스크 헤지를 강화하고 있어서다. 그는

“‘해방의 날(Liberation Day)’에 사실상 모든 이가 관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경영자와 투자자들로 하여금 ‘미국 의존을 다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책임’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고 말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1월 재집권 이후 관세 수입으로만 약 1,500억 달러연방 재정을 추가 확보했다고 말했다. 또한 여러 국가와 기업이 관세 정책에 힘입어 미국 제조업 투자를 약속했다고 강조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왕세자와의 백악관 행사에서 “우리 나라는 이런 위치에 서 본 적이 없다”며, “관세를 통해 돈이 들어오고 있고, 내년에는 공장이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어 설명 및 맥락해설

소비자물가지수(CPI): 도시에 거주하는 소비자가 구매하는 상품·서비스 묶음의 가격 변동을 추적하는 지표다. 통상 물가상승률의 핵심 기준으로 쓰인다.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 가계의 현재·향후 재정 상황과 경제 전망에 대한 심리를 조사해 산출하는 지수다. 심리 악화는 소비 둔화로 연결될 수 있다.

관세 전가(pass-through): 수입품에 부과된 관세가 도매·소매 과정을 거치며 최종 판매가격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를 뜻한다. 전가율이 높을수록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중간선거: 미국 연방의회 하원 전원과 상원의 일부, 주·지방 정부 지도부를 선출하는 선거다. 정책 성과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띤다.

팁 과세: 서비스업 노동자가 받는 팁에 대한 과세 여부·방식을 뜻한다. 세부 설계에 따라 가처분소득이 달라진다.

50년 만기 모기지: 장기 상환을 통해 월 상환액을 낮추는 대신, 전체 이자비용은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 비용 논쟁이 존재한다.


분석: 정치가 만나는 ‘가격의 끈적임’

인플레이션율이 3%대로 내려와도, 팬데믹·공급망 충격과 관세 등으로 높아진 가격 수준은 그대로 남아 유권자 체감은 개선되기 어렵다. 단기적 ‘체감물가 완화’ 신호로 휘발유 가격을 내세우는 전략은 부분적 위안에 그치기 쉽다. 반면 제조업 리쇼어링, AI 투자 유치 등은 장기 성장에는 기여할 수 있으나, 단기 고통을 줄이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책 선택에는 물가 안정 vs. 산업정책, 성장 촉진 vs. 재정·금융 안정 간의 트레이드오프가 불가피하다. 결국 관건은 가계의 실질 소득을 얼마나 빠르게 개선하느냐다. 임금이 가격을 따라잡는 속도를 높이고, 생활필수품 가격의 변동성을 완화하는 세밀한 정책 믹스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