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푸틴 알래스카 회담 앞두고 유럽 정상들 “우크라이나 없는 평화 논의는 무의미”

EU & Ukraine flags

【키이우·브뤼셀 공동】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4년 차에 접어든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오는 15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에서 단독 정상회담을 갖기로 하면서, 유럽 각국 지도자들은 일제히 “우크라이나 정부가 배제된 평화 합의는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5년 8월 10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의 목표를 “전쟁 종식”으로 규정하며 “영토 교환을 포함한 다양한 대안을 열어두겠다”고 시사했다. 그러나 ‘영토 교환’이라는 표현은 곧바로 키이우와 유럽 주요국의 우려를 증폭시켰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본부 앞에는 EU 깃발과 우크라이나 국기가 함께 게양돼 전쟁 피로감을 넘어선 연대를 상징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과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폴란드, 핀란드 등 7개국 정상이 9일(토) 공동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국제적으로 인정된 국경은 무력으로 변경될 수 없다”며 “지속 가능하고 정의로운 평화를 위해서는 러시아군의 철수와 ‘신뢰할 만한 안보 보장’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 트럼프–푸틴 단독 회담, ‘영토 교환’ 발언으로 긴장 고조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AP통신에 “러시아가 오래전부터 요구해온 푸틴 단독 회담을 미국이 수용했다”면서도 “향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포함한 3자(트라이래털) 정상회담 제안도 여전히 열려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이 젤렌스키와 만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회담을 강행하겠다”고 못 박았다.

※ ‘트라이래털’은 3자 간 외교회담을 뜻하는 용어다. 양자(바이래털) 회담보다 이해관계가 복잡해 합의 도출이 까다롭다는 특징이 있다.

한편 미국 부통령 J.D. 밴스는 9일 영국 외무장관 별장(체커스)에서 유럽·우크라이나 고위 관리들과 비공개 회동을 갖고 “휴전 달성을 위한 실무 방안”을 논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협상에 진전이 없을 경우 새로운 2차 제재와 러시아산 원유 구매국에 대한 세컨더리 관세 도입을 예고하며 금요일까지 시한을 못 박았다.


2. 유럽 정상들의 ‘안보 보장’ 요구와 워싱턴 정치권 반응

“우크라이나는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실질적 협상은 적어도 휴전 또는 전투 감소가 이뤄진 뒤에야 가능하다.” — EU·G7 지도자 공동 성명

공화당 내 대표적 대러 강경파로 꼽히는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역시 10일 NBC방송 인터뷰에서 “전쟁 종식 협상에는 결국 대화가 필수”라면서도 “러시아가 또다시 국경을 무력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좌절시킬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유럽 지상군’을 우크라이나에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모든 러시아군을 군사력으로 몰아낼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며 서방군 일부 주둔 및 확장억제(Trip Wire) 개념을 제안했다.

Trump and Putin


3. 러시아 요구 조건과 젤렌스키의 ‘영토 불가양’ 원칙

크렘린은 전주에 “우크라이나가 동·남부 점령지(러시아가 2022년 ‘합병’ 선언) 일부를 영구 포기하고, NATO 가입 추진을 철회하며, 군사력 규모를 제한하면 잔여 지역에서 러시아군을 철수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9일 성명에서 “우리는 침략자에게 어떠한 상도(賞)를 주지 않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영토는 교환·양도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영국 국방·안보 싱크탱크 ‘마약(Mayak) 인텔리전스’의 마크 갈레오티 소장은 “러시아군이 동부 요충지를 포위·차단하는 ‘소모전’ 전술로 점진적 이득을 거두고 있어 푸틴은 시급히 협상에 나설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갈레오티는 “푸틴에게 미국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 자체가 이미 외교적 승리일 수 있다”고도 했다.


4. 제재 카드와 국제 사회의 추가 압박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10일 ARD와의 인터뷰에서 “유럽 지도자들은 알래스카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방위 준비에 돌입했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이 반드시 초청받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푸틴은 압박을 느껴야만 움직인다”며 워싱턴에 러시아 추가 제재를 거듭 촉구했다.

푸틴의 초대 총리였으나 이후 야권 인사로 변신한 미하일 카시야노프 역시 BBC 인터뷰에서 “제재가 러시아 경제를 한층 더 옥죄야 크렘린이 진지하게 양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크 뤼테 나토 사무총장은 ABC뉴스에 “미국이 인도에 대한 세컨더리 제재 등 추가 조치를 취한 것은 푸틴을 시험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평가하며 “15일 회담은 푸틴이 진정 전쟁 종식 의지가 있는지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5. 전문가 해설: ‘영토 교환’ 시나리오의 정치·법적 함의

국제법상 강제 점령지의 영토 교환 합의는 ‘무효’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1945년 유엔 헌장 2조 4항은 무력에 의한 영토 획득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요구를 수락할 경우, 국내 정치적으로는 ‘항복’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국제적 법적 구속력도 불투명하다. 반대로 러시아가 아무런 대가 없이 철수할 가능성도 현실성이 낮아, 양측 간 ‘절충점’ 찾기가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난제다.

정치학자들은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가장 살상력 높은 유럽 지상군’ 구상에 대해 “사실상 나토군의 부분 재배치 혹은 다국적 연합사 창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이는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 당시 IFOR(Implementation Force) 모델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6. 용어 설명 · 참고

세컨더리 관세(Secondary Tariff)는 제재 대상국 제품을 수입하는 제3국에도 추가적으로 부과되는 관세를 뜻한다.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는 인도, 중국 등이 직접 압박 대상이 된다.

트립 와이어(Trip Wire)는 억제 전략 용어로, 소규모 병력을 전략적 거점에 미리 배치함으로써 상대가 공격 시 자동으로 동맹 전체 전면전을 야기하도록 만드는 ‘경보 장치’ 역할을 한다.

마약(Mayak) 인텔리전스는 런던 기반 러시아·동유럽 안보 전문 연구소로, 우크라이나 전황에 대한 정밀 분석 리포트로 유명하다.


전망 — 15일 알래스카 회담 결과가 전쟁 향배를 바꿀 분수령이 될지는 미지수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번 회담이 ‘모스크바와 워싱턴의 쇼’로 귀결될 경우, 유럽과 우크라이나는 독자적 안보 구상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는 “가시적 진전이 없더라도 군사적 긴장 완화는 충분히 성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국제 사회의 촉각은 트럼프·푸틴 두 정상이 ‘영토 교환’ 카드와 ‘안보 보장’ 간 교환비를 어떻게 설정할지, 그리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뒤늦게라도 협상 테이블에 합류할 수 있을지에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