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시진핑, 올가을 아시아 순방 중 정상회담 논의…APEC 계기 한·중·미 3자 구도에도 관심

워싱턴·베이징발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가을 정상회담이 물밑에서 논의되고 있다. 양국 참모진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협정을 둘러싼 일정을 조율하며, 정상 간 직접 만남을 포함한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2025년 7월 21일, 로이터통신(Reuters)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하반기 아시아 순방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후로 중국 측과 별도 회담을 갖는 방안을 양측이 타진했다.

로이터가 인용한 두 명의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 직전 한국을 경유하거나, 정상회의 기간 중 시진핑 주석과 양자 회담을 추진하는 안이 테이블 위에 올라 있다”고 전했다. 다만 세부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상 간 외교는 미·중 관계에서 대체 불가능한 전략적 리더십 역할을 한다.” — 궈자쿤(郭家坤) 중국 외교부 대변인

궈 대변인은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트럼프·시진핑 회담 추진 여부를 묻는 질문에 구체적 언급을 피했지만, 국가 정상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APEC이란? APEC은 1989년 창설된 21개국의 경제협력체다. 회원국이 교역·투자 자유화, 경제·기술 협력 등을 논의하며 글로벌 무역·공급망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올해 개최지는 한국이며, 미국·중국·일본·캐나다 등이 모두 참석 대상이다.

현재 미·중 통상 갈등은 일시적 휴전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관세는 경제 성장의 지렛대’라고 주장하며 “전 세계 모든 수입품에 기본 1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중국산 수입품에는 이미 55%의 최고 관세율이 적용되고 있으며, 8월 12일까지 ‘지속 가능한 관세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추가 압박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긴장을 완화하려는 조짐을 보인다. 미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는 CNBC 인터뷰에서 “양국이 ‘매우 가까운 시일 내’ 대화를 재개할 것”이라며, “관세 전쟁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고 이제 이란·러시아산 석유 거래와 같은 난제를 논의할 차례”라고 말했다.

중국도 적극적이다. 베이징 당국은 9월 3일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 기념식’에 미 측 인사 초청을 타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미 참석을 확정했으며, 크렘린궁은 “트럼프 대통령이 베이징 행사에 오면 푸틴·트럼프 회담도 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미·중·러 3국 정상 외교의 새로운 장이 열릴 가능성을 시사한다.

갈등 요인은 여전하다. 미 측은 ① 중국의 러시아 지원, ② 펜타닐(fentanyl) 원료 수출, ③ 남중국해·타이완 해협 군사 활동, ④ 일부 미국 시민에 대한 출국 금지(exit ban) 등을 비판한다. 이에 대해 중국은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7월 11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미·중 외교장관 회담이 ‘생산적이고 긍정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양국 정부는 실무 차원에서 통상 합의를 마련해 정상회담 성과로 연결하려는 모양새다.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미 국무장관은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을 중국으로 초청했으며 두 정상 모두 회담을 ‘원한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왕원타오(王文濤) 중국 상무부장도 18일 유럽 순방 중 “미·중 무역 관계를 조속히 안정 궤도로 돌리기를 원한다”며 “최근 접촉으로 보아 전면적 관세전은 불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강조했다.


전문가 시각

국제통상 전문가들은 이번 트럼프·시진핑 회동이 성사될 경우,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에너지 수급 전망에 결정적 변곡점을 만들 수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보편 관세 10%’ 구상이 완화될 가능성은 미국 내 소비자물가 안정과 중국 제조업 회복에 모두 긍정적이다. 반대로 협상이 결렬될 경우, 8월 12일을 기점으로 양국이 다시 ‘관세 전면전’으로 복귀해 금융시장 변동성이 증폭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또한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장소가 대한민국이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는 미·중 패권 경쟁 속 ‘중개자’ 역할과 함께 공급망 다변화·반도체 동맹·친환경 에너지 협력 등 실질적 득실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펜타닐이란? 펜타닐은 의료용으로 사용되는 합성 마약성 진통제다. 소량으로도 강력한 효과를 내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오남용에 따른 중독·사망 사례가 사회 문제로 부상했다. 워싱턴은 펜타닐 전구체(원료) 화학물질의 중국발 수출을 불법행위로 규정해 단속을 요구하고 있다.

정상회담 성사 여부는 앞으로 수 주 내 미·중 실무 라운드 진행 상황,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 일정(예: 대선 준비), 그리고 중국의 정책적 우선순위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