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토큰화(tokenization)’가 금융 인프라를 바꿀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아 왔다. 크립토(가상자산) 지지자들은 주식·채권·현금성 예금·부동산까지 모든 자산을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토큰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2025년 7월 23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미국 의회가 3건의 암호자산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규제 완화를 주도하면서 토큰화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규제 완화는 암호화폐 업계 기업 가치 급등과 암호화폐 연계 증권 시장 성장의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토큰화 시장의 성장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더디다. 다수 프로젝트가 아직 ‘파일럿’ 단계에 머물러 있거나 상용화되지 못한 사례가 많다. 금융기관의 사설(프라이빗) 블록체인 난립과 규제 불확실성이 주요 걸림돌로 꼽힌다.
토큰화의 기본 구조
토큰화란 물리적·전통적 자산(예: 주식·채권·예금·펀드·부동산)을 블록체인상의 디지털 토큰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분산원장에 해당 자산을 대표하는 고유의 디지털 기록을 생성하고, 이를 지갑에 보관하거나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실시간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다.
예컨대 부동산 1채를 100개의 토큰으로 쪼개면, 투자자는 소액으로도 부동산 일부 지분에 투자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토큰은 자산의 ‘디지털 쪼개기’ (fractionalisation) 기능을 수행하며, 전통적 거래 구조보다 효율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스테이블코인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은 토큰화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스테이블코인은 1개의 디지털 토큰마다 1달러를 준비금으로 예치해 가치 변동성을 억제한다. 토큰 자체는 블록체인 위에서 이동하지만, 그 가치는 실물 달러에 연동된다.
이 구조 덕분에 스테이블코인은 국경을 초월해 신속한 결제가 가능하다. 지지자들은 결제 인프라가 미비한 개발도상국에 ‘생명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비평가들은 은행의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을 우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범죄 리스크를 경고한다.
시장 현황과 걸림돌
코인마켓캡(CoinMarketCap)에 따르면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약 2,560억 달러(2025년 7월 기준)이며, 스탠다드차터드는 2028년 2조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주식·채권·펀드 등 전통 자산의 토큰화는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왜 진전이 더딜까? 첫째, 글로벌 은행들이 각자 만든 사설 블록체인 간 상호운용성이 확보되지 않았다. 둘째, 규제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셋째, 유동성 부족으로 인해 2차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한다.
토큰화의 잠재적 장점
“토큰화는 유동성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투자 접근성을 혁신할 것”이라는 주장이 크립토 업계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부동산처럼 비유동성(illiquid) 자산도 디지털 토큰으로 세분화하면, 기존보다 쉽게 매각·거래가 가능하다. 또한 최소 투자금이 대폭 낮아지므로 개인투자자도 대체투자에 진입할 수 있다.
누가 토큰화에 뛰어드나?
뱅크오브아메리카·씨티그룹 등 대형 은행이 토큰화된 자산과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저울질하고 있다.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2030년까지 세계 최대 암호화폐 운용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토큰화 사업에 박차를 가한다.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Coinbase)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토큰화 주식(tokenized equities)’ 취급 허가를 요청했다.
새 규제안과 기대 효과
최근 통과된 스테이블코인 법안 및 ‘클래러티 액트(Clarity Act)’로 불리는 시장구조법은 토큰 및 스테이블코인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법제화가 토큰화 확산에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위험 요소와 논란
유럽중앙은행(ECB)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스테이블코인이 통화정책과 금융안정에 체계적 위험(systemic risk)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달러 스테이블코인 중 절반 이상을 발행하는 테더(Tether)는 1,600억 달러의 준비금을 운용한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완전한 외부 회계감사를 받지 않았다.
SEC 헤스터 피어스 위원은 7월 초 “토큰화된 증권도 기존 증권법을 우회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거래소 크라켄(Kraken)처럼 제3자 발행 토큰을 취급하는 플랫폼은 카운터파티 리스크 노출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규제 당국의 경계 대상이 되고 있다.
기자의 전문적 시각
토큰화가 약속하는 ‘무결성·투명성·저비용’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현재 전통 금융권이 운영하는 전자원장 시스템도 고도화되어 있어, 블록체인이 반드시 더 효율적이라는 실증 연구는 부족하다.
또한 거버넌스·규제·표준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사일로(silo)’로 남을 위험이 커진다. 필자는 토큰화가 실효성을 입증하려면 (1) 네트워크 간 상호운용성 확보, (2) 실시간 감사 및 투명성 강화, (3) 이용자 보호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본다.
따라서 토큰화는 분명 ‘다음 큰 물결’로 불릴 잠재력이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과도한 기대보다 실증적 검증이 선행돼야 할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