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말 — ‘토큰화 시대’ 서막과 거시경제 대전환
2025년 여름, 뉴욕 월가 중심가에서는 전통 금융과 디지털 금융 사이의 경계가 사실상 붕괴됐다. 골드만삭스·BNY멜런이 7.1조 달러 규모 머니마켓펀드를 블록체인 위로 옮긴다는 소식, 미국 하원이 ‘적격투자자 시험제’와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통과시켰다는 뉴스, 그리고 각종 사모자산·부동산·채권의 토큰화 움직임이 잇달아 발표되면서 “현금·채권·주식·파생상품이 디지털 토큰으로 재정의되는 시대”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1. 왜 지금 ‘토큰화’인가? — 세 가지 구조적 추진력
- 글로벌 유동성의 재배치 : 2022~2024년 가파른 긴축 이후, 연준·ECB·BOE 등 주요 중앙은행이 2025년 하반기부터 동시 완화(일명 ‘마일드 커팅 사이클’)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억눌렸던 기관 자금이 높은 상대수익처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고, 토큰화된 단기 채권·MMF가 ‘현금 대안’으로 부상했다.
- 규제 크래프팅(RegTech) 진화 : GENIUS법·Equal Opportunity for All Investors Act처럼 “기술로 위험을 줄이면 규제장벽을 내린다”는 테크-퍼스트 입법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SEC는 스테이블코인·토큰화 펀드의 실시간 KYC/AML 감시를 허용하며 감독비용을 절감하는 대신, 시장 진입 문턱을 낮추고 있다.
- 인프라 효율성 체계적 우위 : 20세기 전자예탁결제(이중 전산계) 체계는 T+2 결제 지연·런던 클리어링하우스 등 다층 청산구조를 전제로 한다. 반면 스마트컨트랙트 기반 DLT는 실시간 결제·스왑·스테이킹·감사 로그가 단일 원장에서 이뤄져 자본비용(Basel III RWA) 최대 30% 절감 효과를 낳는다.
2. 월가가 선택한 ‘프라이빗 토큰화 모델’ — 골드만·BNY 사례 분석
2-1) 시스템 구조
BNY Global Custody → “Tokenized Share Registry”
골드만 Sachs DSX → “Permissioned Quorum Network”
두 은행은 퍼블릭 체인이 아닌 허가형(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채택했다. 고객 KYC·기관투자자 요건을 노드 합의에 집어넣어 신원 기반 BFT 합의(10노드 < 0.3초)에 성공했고, 실시간 감사가 가능하다.
2-2) 토큰화 MMF 수익모델
· 군더더기 없는 T+0 결제 → 하루치 환매지연(평균 0.8일) 해소
· 담보 재사용 (Re-hypothecation) 속도 4배 향상 → 기관 레포·파생 마진 비용 11bp 절감
· 이자 배당 스마트컨트랙트 자동화 → 운용사 오퍼레이션 비용 20%↓
이 모든 절감분이 연 0.1~0.15% 추가 수익률로 투자자에게 귀속된다. 단기물 금리가 5%대에서 4%대로 내려가면 미세한 10~15bp 차이가 승패를 가르는 시장이 형성될 전망이다.
3. 거시적 파급효과 — ‘디지털 절연변압기’가 금융시스템을 재배선하다
(1) 지급결제 지형 변화 : 예탁결제원·클리어링하우스의 3-단계 청산 구조가 “토큰 지갑 ↔ 토큰 지갑”으로 평면화된다. 달러 CBDC가 없더라도, 준 CBDC(은행 발행 토큰)가 외환·증권 결제를 실시간으로 묶어 Delivery vs Payment 리스크를 근원 차단한다.
(2) 유동성 프리미엄 재편 : 토큰화 MMF·단기 국채(T-Bill)·AAA 커머셜페이퍼가 앱 내에서 1달러 단위로 쪼개져 거래된다. 아프리카 핀테크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한 뒤 미국 MMF 토큰을 담보로 글로벌 레포시장에 진입할 수도 있다.
(3) 금리전달 메커니즘 강화 : 리테일 스테이블코인의 MMF 뱅크런 우려가 제기되지만, 반대로 연준 금리 인상 → MMF 수익률 즉시 반영 → 소매예금 이탈 가속 → 은행 ALM 전략 전면 수정이라는 시나리오가 출현한다.
(4) 자본시장 민주화 vs 규제 역설 : 하원 통과 ‘투자지식 시험제’는 토큰화 사모펀드·부동산을 5,000달러 단위로 개미에게 개방한다. 그러나 정보 비대칭·딜 가공(세컨더리 마켓 부재)이 심화될 경우 SEC는 다시 Prospectus Lite 등 의무서류를 요구하면서 규제비용이 역으로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4. 토큰화가 열어젖힌 4대 투자전략
- 초단기 달러 스프레드 플레어 : MMF 토큰과 은행예금 Token-Fiat 스왑 차익(arb) 10~20bp 노림수.
- 온체인 옵션·레포 : 미니채권·CP 토큰을 담보로 30분 만기 Flash Repo를 실행, 레버리지 2~3배 스택.
- 국경 간 FX 낄변 동시결제 : 싱가포르 달러 싱귤러티(SGD-Token) ↔ 미국 MMF 토큰 ↔ 원화 CBDC(가칭 e-KRW) 삼각스왑.
- 사모–공모 상태변환(Flip) 펀드 : 프리IPO 주식을 토큰화해 유동화, IPO 직후 공모주와 가격 괴리 축소 arb.
5. 리스크 매트릭스 — 시스템·규제·사이버·거버넌스
리스크 축 | 세부 시나리오 | 예방·대응 장치 |
---|---|---|
시스템 유동성 | MMF 토큰 환매 급증 → 단기 국채 스파이크 | 발행·상환 일일 Limit 도입, Fed SLR 완화 BTFP 연장 |
규제 중첩 | CFTC vs SEC 관할 분쟁 → 토큰 분류 지연 | ‘기능 중립성’ 원칙 명문화, 조인트 No-Action Letter 발행 |
사이버 보안 | 프라이빗 체인 키 관리 해킹, 사이드체인 오라클 조작 | 하드웨어 HSM 도입, MPC 다중서명, NIST FIPS-140-3 준수 |
거버넌스 | 스마트컨트랙트 오류 → 이자 분배 실패 | 형식적 검증(Formal Verification) + 백업 Failover 계좌 |
6. 한국 자본시장에 던지는 함의
① 금융규제 샌드박스 확대 : 금투협·KSD가 2026년 목표로 추진 중인 ‘토큰증권 원장연동망’에 MMF 등 단기시장 수신상품을 조기 편입할 필요가 있다.
②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 2024년 특금법 개정으로 발행형 VASP 허가가 가능해졌지만, 준 MMF 모델 도입을 위한 지급준비·유동성 규정이 미비하다.
③ 국민연금·보험사 참여 전략 : 국부펀드와 동일하게 지분 토큰화를 통한 장내 맞교환 시 거래세 혜택·대체자산 투자 한도 개선 필요.
7. 결론 — ‘금융 DNA 재설계’의 첫 10년
토큰화는 단순히 종이 증권을 디지털로 바꾸는 표피적 전산화가 아니다. 자산 소유권·거래·결제·감사의 모든 계층을 불변·투명·자동화라는 새로운 DNA로 재부팅하는 과정이다. 2025년 BNY–골드만 프로젝트는 재무제표상 ‘현금 등가물’을 블록체인으로 옮긴 첫 사례다. 이는 곧 재무·회계·금융공학·통화정책까지 파급되는 ‘계산단위의 혁명’을 의미한다. 향후 10년, 투자자·감독당국·시장 참여자는 토큰화가 주는 유동성과 리스크를 동시에 길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회는 준비된 자의 몫이다. 디지털 절연변압기는 이미 작동하기 시작했다.
© 2025 데이터 저널리스트 이준석 | 자료: BNYM, Goldman Sachs, SEC, 연준 FRED, IMF Fintech Note 29, Citi G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