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주 법무장관 켄 팩스턴이 글래스루이스(Glass Lewis)와 인스티튜셔널 셰어홀더 서비스(ISS) 등 미국 최대 의결권 자문사 두 곳에 대한 민사 조사를 전격 개시했다. 팩스턴 장관은 두 회사가 기관투자자와 상장기업을 ‘오도(mislead)’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소비자보호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2025년 9월 16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팩스턴 장관은 두 회사에 Civil Investigative Demand※를 발부해 중요 정보 공개 의무를 준수했는지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
의결권 자문사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업 지배구조 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며, 충분한 정보 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텍사스 소비자보호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래스루이스와 ISS는 연례주주총회 이전에 사외이사 선임, 경영진 보상, 환경·사회(E·S) 관련 주주제안 등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발간하고 투표 권고를 제공한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와 연기금 상당수가 두 회사의 권고를 실제 의결권 행사에 반영하는 만큼, 시장 파급력은 막대하다.
의결권 자문사란 무엇인가
의결권 자문사(proxy adviser)는 기관투자자의 위임을 받아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평가하고, 표결 방향을 권고하는 전문 서비스 업체다. 기관투자자는 수천 건에 달하는 안건을 일일이 검토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문사의 분석 보고서에 의존해 의결권을 행사한다. 이 때문에 자문사의 판단은 기업 지배구조·주주 가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Civil Investigative Demand는 법무장관이 민사상 위법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서류 제출·증언을 요구할 수 있는 강제 조치다.
공화당의 反 ESG 확산과 텍사스의 선봉 역할
이번 조사는 미국 공화당 진영에서 확산 중인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반대 캠페인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비판론자들은 기업이 주주 이익보다 사회·환경 목표를 우선시한다며 “탈(脫)자본주의적 경향”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올해 여러 기업이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프로그램을 축소하거나 폐지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DEI 퇴출’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텍사스는 그 최전선에 서 있다. 지난 8월 연방법원은 텍사스주가 세계 최초로 제정한 ‘ESG 의결권 자문 규제법’(시행 유예)의 집행을 예비적 가처분 명령으로 중단시켰다. 해당 법은 글래스루이스와 ISS가 ESG 의결권 자문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내용이었으나, 법원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 침해 가능성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시장·산업 영향과 전문가 시각
두 회사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될 경우, 기관투자자의 거버넌스 의사결정 구조에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첫째, 자문 과정에서의 정보 공개 기준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 둘째, ESG 안건에 대한 권고가 규제 리스크로 인해 보수적으로 전환될 공산이 있다. 셋째, 세계 최대 운용사들이 ‘자체 분석 강화’ 등 내부 거버넌스 역량을 확충할 명분이 생긴다는 점에서, 자문사 시장의 성장성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텍사스가 연방 차원의 입법 논의를 촉발할 수도 있다”면서, ESG와 관련된 ‘문화 전쟁’이 장기전으로 번질 가능성을 경계했다. 특히 미국 대선 정국과 맞물리면, ESG 찬반이 정치적 쟁점화될 소지도 크다.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상반된 시각
기업 경영진은 자문사가 행정적 오류나 일방적 기준에 따라 부정적 권고를 남발한다고 비판해 왔다. 반면 지지자들은 “
방대한 공시 서류를 요약·분석해 투자자 부담을 덜어주고, 이사회 책임성을 강화한다
”고 반박한다. 실제로 기관투자자 상당수는 여전히 두 회사의 보고서를 핵심 의사결정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이번 조사 대상인 글래스루이스와 ISS는 로이터의 문의에 즉각적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시장에선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자 해설
미국 내 자본시장 규제와 정치 이슈가 교차하는 대표 사례로, 향후 결과는 글로벌 거버넌스 자문 업계에 선례를 남길 전망이다. 만약 텍사스주가 소비자보호법 위반을 입증한다면, 다른 주(州)도 유사한 절차에 나설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는다. 반대로 자문사가 승소할 경우, 주 정부의 규제 남용 논란이 재점화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기관투자자 스스로가 ESG·거버넌스 기준을 정교화하고, 특정 자문사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투자자 보호와 표현의 자유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가 이번 사안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