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신임 중앙은행 총재, “정부와 협력하되 독립성은 지킬 것”

방콕발 중앙은행 수장 교체이라는 헤드라인이 태국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새로 취임한 비타이 라타나콘 태국은행(BoT) 총재는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정치적 압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수호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2025년 10월 1일부로 임기를 시작해 세타풋 수티와트나루푸트 전 총재의 바통을 넘겨받았다.

2025년 10월 1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비타이 총재는 취임 일성에서 “태국은행의 최우선 사명은 거시경제 안정성 확보”라고 강조했다. 그는 총재로서 독립성을 견지하면서도, 총리가 이끄는 새 내각과 긴밀한 정책 조율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는 통화당국과 재정당국 사이의 협력 — 이른바 ‘Policy Mix’ —을 강화해 경기 회복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미다.

“정치권과 협력은 필수지만, 정책 금리 결정 등 핵심 통화정책 수단은 외부 압력으로부터 철저히 분리돼야 합니다.” — 비타이 라타나콘 총재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미국발 관세 압력 ▲가계부채 급증 ▲내수 부진 ▲가파른 바트화 절상 등 네 가지 난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바트화는 태국 통화로, 최근 달러 대비 강세가 이어지며 수출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비타이 총재는 “단기 충격과 구조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재무부·국책은행·금융감독기관과의 ‘원보이스 전략’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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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설명*
* 거시경제 안정성은 물가·고용·환율·금융 시스템이 균형을 이루는 상태를 뜻한다. 중앙은행이 정책 금리·지급준비율·외환시장 개입 등을 통해 유지한다.
* 바트화 강세는 달러 대비 환율 하락(바트 가치 상승)을 의미하며, 수출기업 매출·관광수입 감소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와의 역할 분담

새 정부를 이끄는 아누틴 찬위라꿀 총리는 취임 직후 “경기 부양”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그러나 대규모 재정지출만으로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비타이 총재는 “재정정책은 수요 진작,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이라는 전통적 역할 분담을 유지해야 한다”며, 중앙은행이 ‘마지막 보루’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했다.

정책 독립성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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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독립성(Central Bank Independence, CBI)은 정치주기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 가격 안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뜻한다. 태국은행은 1942년 설립 이후 여러 차례 헌법·법률 개정을 거치며 독립성을 강화해 왔다. 비타이 총재는 “정책 신뢰도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와 직결된다”면서, 『독립성 → 신뢰 → 저물가』라는 선순환 구조를 재차 강조했다.


시장 반응

취임 기자회견 직후 태국 국채 금리는 소폭 하락했고, 바트화·SET 지수는 변동성이 크지 않았다. 애널리스트들은 “예상된 메시지”라는 평을 내놨다. 한편 일부 투자은행은 “정부가 경기 부양에 속도를 내면, 통화·재정 간 엇박자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기자 시각 — 전문적 통찰

현 시점에서 태국은행이 직면한 최대 딜레마는 『성장 둔화 ↔ 인플레이션 압력』의 균형이다. 정부는 재정 확장으로 소비·투자를 자극해야 하지만, 이는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통화당국 입장에서는 기준금리 인하 카드가 매력적이지만, 바트화 추가 강세 및 외자 유출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 즉, 금리·환율·부채·무역이 얽힌 복합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가계부채/가처분소득 비율이 이미 90%를 웃돌고 있어, 기준금리 25bp만 인상돼도 원리금 상환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반대로 금리를 내리면 부채 레버리지 확대와 자산가격 거품이 재발할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리스크 사이에서 중앙은행의 ‘핀셋형 선별 완화’ 전략이 요구된다.


장·단기 과제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수출 둔화·관광 회복 지연이 가장 큰 위험 요인이다. 장기적으로는 생산성 정체·고령화·교육 수준 불균형이 태국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 비타이 총재는 “금융시스템 건전성 확보와 구조개혁 촉진을 병행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 로드맵은 추후 발표될 전망이다.

독립성 법적 기반 강화 움직임

국내 정치권에서는 ‘태국은행법’ 개정을 통해 중앙은행장 임기·재임 제한, 정부 간 파워 밸런스를 재정립하자는 논의도 나온다. 이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안전판으로, 법적 독립성을 제도화하려는 국제적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결론 및 전망

비타이 라타나콘 총재의 메시지는 요약하면 ‘협력적 독립성’이다.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으면서도, 대내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정당국과 획일적 대응을 지양하고 상황 맞춤형 정책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시장이 주목할 포인트는 향후 6개월간 통화정책 회의에서 확인될 금리 스탠스와 바트화 관리 전략이다. 만약 미국 정책금리가 예상보다 오래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태국은행은 자본 유출 방지와 성장 방어 사이에서 더욱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을 가능성이 높다.

궁극적으로, 중앙은행 독립성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국민·시장·정치권 모두가 ‘긴 안목’을 공유해야 한다. 외형적 협력과 실질적 자율성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가 비타이 총재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