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멘타시옹 쿠슈타드(Alimentation Couche-Tard)가 4,600억 달러(약 47조 달러로 표기된 기사 원문 460억 달러) 규모로 추진하던 일본 세븐앤아이 홀딩스(Seven & i Holdings) 인수 제안을 공식 철회했다.
2025년 7월 17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캐나다 편의점 체인 서클 K(Circle-K)를 보유한 쿠슈타드는 “세븐앤아이 경영진과 이토(Ito) 창업가문의 비(非)건설적 태도“를 사유로 들며 더 이상의 협상 실익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거래가 성사됐을 경우 외국 자본에 의한 역대 최대 규모의 일본 기업 인수가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세븐앤아이가 실질적 실사(due diligence)와 추가 정보 제공에 소극적 태도를 고수하면서 협상 테이블 자체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왔다.
세븐앤아이, ‘콘비니’ 제국의 방어전
세븐앤아이 홀딩스는 일본 내 ‘콘비니(コンビニ)’로 불리는 편의점 7-일레븐(7-Eleven)을 운영한다. ‘콘비니’는 일본어 편의점(Convenience Store)의 줄임말로, 24시간 영업·소량 다품목 진열·생활밀착형 서비스로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서 독자적 문화권을 형성했다.
아래는 2024년 8월부터 2025년 7월까지 약 1년간 이어진 인수 협상 일지다.
2024년 8월 19일 – 쿠슈타드, 세븐앤아이 측에 첫 인수 의향 밝혀. 세븐앤아이 주가 22.9% 급등.
2024년 9월 6일 – 세븐앤아이, 주당 14.86달러(총 385억 달러) 제안 거절.
2024년 9월 13일 – 일본 재무성, 세븐앤아이를 국가안보 핵심(Core) 기업으로 지정.
2024년 10월 9일 – 쿠슈타드, 제안을 22% 상향해 총 470억 달러로 조정.
2024년 10월 10일 – 세븐앤아이, 부진 부문 분할·지주사 편입 계획 발표.
2024년 10월 16일 – 미 활동주의 펀드 아티잔 파트너스(Artisan Partners), 세븐앤아이 이사회에 실사 허용 촉구.
2024년 11월 13일 – 창업주 이토 가문, 580억 달러 규모 ‘백기사(white knight)’ 제안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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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1일 – 양사, 기밀유지협정(NDA) 체결.
2025년 7월 17일 – 쿠슈타드, 인수 철회 공식 발표.
쿠슈타드 “추가 정보 공유가 없었다”
쿠슈타드는 앨랭 부샤드(Alain Bouchard) 회장을 통해 “우리는 세븐앤아이 측에 재무·운영 자료에 대한 폭넓은 접근권을 요구했으나 답변이 미흡했다”고 설명했다. 부샤드 회장은 2025년 3월 13일에도 “세븐앤아이가 보다 협조적이면 제안가를 더 높일 의향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협상이 장기화되는 동안 일본 정부는 세븐앤아이를 ‘국가 안보 핵심’으로 지정했고, 창업주 일가 역시 백기사 자금을 물색하며 대응하면서, 외국계 인수 시 진입장벽이 한층 높아졌다는 분석이 금융시장 안팎에서 제기됐다.
신임 CEO 선임 및 독자 재건 계획
세븐앤아이는 2025년 3월 6일 미국인 스티븐 데이커스(Stephen Dacus)를 첫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로 임명하며 조직 재편 및 실적 회복을 주문했다. 회사 측은 “우리는 단독 가치 창출 계획(stand-alone value creation plan)을 충실히 실행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같은 날 주가는 제안가 대비 23% 하락한 채 마감됐다.
일본 재계 안팎에서는 세븐앤아이가 부진 사업부를 분할해 실적이 우수한 편의점 사업에 집중함으로써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시간이 필요하다는 시각과, 글로벌 경쟁 심화 속에서 외부 자본과 시너지를 포기한 것이라는 비판이 공존한다.
규제 리스크·자금 조달 문제도 악재
미국 시장에서 7-일레븐과 쿠슈타드의 서클 K는 점포 수 기준 1·2위를 다툰다. 두 회사의 합병은 미국 반독점 규제(FTC) 심사에서 상당한 매각 요구나 구조조정이 동반될 가능성이 컸다. 2025년 3월 10일 세븐앤아이는 “미국 점포 일부 매각” 옵션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지만, 정확한 매각 규모와 일정은 끝내 확정되지 않았다.
한편, 이토 가문이 제시한 580억 달러 규모 백기사 안은 일본 종합상사 이토추(Itochu)와의 공동 자금 조달을 전제로 했으나, 2025년 2월 26일 이토추가 철수하면서 계획이 무산됐다. 자금 조달 불확실성과 규제 리스크가 겹치면서 협상 동력 자체가 급격히 약화됐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시장 반응과 향후 전망
인수 철회 소식이 전해진 17일 세븐앤아이 주가는 9% 급락했다. 이는 쿠슈타드가 2025년 1월 제시한 주당 2,600엔(약 17.5달러) 제안가 대비 23% 낮은 수준이다. 반면 쿠슈타드 주가는 캐나다 증시에서 장 초반 소폭 상승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세븐앤아이가 향후 지배구조 개편·점포 구조조정·해외 사업 재정비를 병행하면서 독자 생존 전략을 강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또 다른 외국계 사모펀드나 전략적 투자자의 인수 시도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M&A 업계는 이번 사례를 통해 일본 정부의 안보 규제 강화와 창업주 일가의 지배력이 외국 자본의 대형 인수·합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2020년대 후반 들어 일본 기업의 ‘보호주의 바람’이 거세지면서, 기존의 ‘환대하는 M&A 시장’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기관 M&A 담당자는 “일본 기업은 해외 자본 유입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핵심 사업은 반드시 자국 내 통제하에 두려는 경향이 더욱 강화됐다”며 “현지 정부·주주·규제를 모두 만족시키는 복합 전략이 필수 과제로 떠올랐다”고 평가했다.
이번 인수전이 좌초되면서 쿠슈타드는 북미·유럽 내 편의점·주유소 M&A 재추진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서는 쿠슈타드가 향후 12개월 내 3~4조 원 규모 중형 딜을 타진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세븐앤아이는 2026 회계연도까지 영업이익률 10% 달성, 해외 편의점 2,000점 추가 출점 등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 생존’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