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헬스케어(의료·제약·바이오·의료기기) 섹터 주가가 수십 년 만의 저가 구간에 머물러 있다. 최근 펀드 자금이 다시 유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미국 약가 정책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음을 방증한다.
2025년 7월 23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설과 함께 재점화된 ‘가장 우대국(most-favored-nation·MFN) 약가 규제’ 및 의약품 수입 관세 최대 200% 부과 가능성이 제약사 실적 전망을 짙은 안개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현금이 제약·바이오 종목으로 대거 유입됐으나, 최근 투자자들은 빅테크로 이동하며 헬스케어 비중을 축소했다. 그 결과 헬스케어 섹터 주가는 12개월 선행 PER 15.9배로 장기 평균 대비 11%, 세계 주식시장 평균 대비 20% 할인된 수준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2009년 기록적 저점 이후 16년 만에 가장 큰 할인폭이다.
미국 JP모건 에셋매니지먼트의 스테파니 알리아가 글로벌 마켓 스트래티지스트는 “조심스러운 낙관에서 조심스러운 비관으로 기류가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밸류에이션은 더 싸졌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존재한다”며 워싱턴발 약가 리스크를 지목했다.
그럼에도 일부 투자자는 고령화, RNA 기반 치료제, 비만·당뇨 신약 등 장기 성장 동력에 주목하며 헬스케어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아마겟돈 시나리오’는 과장인가
스위스 자산운용사 LFG+ZEST의 알베르토 콘카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 몇 주간 제약·바이오·의료기기 비중을 늘렸다고 밝혔다. 그는 “
이들 기업은 현금흐름이 견조하고 방어적 특성을 갖추고 있음에도, 시장은 마치 ‘아마겟돈’을 가정한 가격에 거래 중이다
”라며 과도한 비관론을 경계했다.
또한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는 연구·개발 자금 조달비용을 낮추고 미래 현금흐름 현재가치를 높이기 때문에 금리 민감도가 높은 헬스케어 섹터에 우호적이다. 영국 M&G 인베스트먼츠 역시 최근 배포한 포트폴리오 리포트에서 헬스케어 비중 확대를 언급했다.
펀드추적업체 EPFR에 따르면 헬스케어 펀드는 2024년부터 순유입세로 돌아섰으며, 2025년 연초 이후 유입 규모는 72억 달러로 집계됐다. 다만 이는 전년 대비 41% 감소한 수치다.
촉매가 필요한 시점
헬스케어는 전통적으로 안정적 이익을 기반으로 세계 지수 대비 프리미엄에 거래돼 왔으나, 정치적 압력과 빅테크에 대한 투자 쏠림으로 이러한 내러티브가 무너졌다. 최근 3년간 미국 헬스케어 섹터는 S&P500 대비 60%포인트 이상 언더퍼폼하며 월가 최악의 섹터 성적을 기록했다.
피델리티 인베스트먼츠의 에디 윤 헬스케어 부문 책임자는 “시장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면서 “저평가만으로는 매수 근거가 부족하며, 분명한 촉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말까지 정책 가이드라인이 가시화될 경우 M&A 재개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5월 개최된 업계 콘퍼런스에서 일라이릴리와 머크 경영진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논의가 아직 약가 인하 시점·범위를 명확히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윤 매니저는 대형 제약사의 특허만료 리스크를 이유로 비중을 낮게 가져왔으나, 알나일람·페넘브라처럼 적자 기업에서 흑자 전환 중인 중소형 혁신사에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콘카 CIO는 미국 애보트·에드워즈라이프사이언시스·애브비와 유럽 사노피·레코르다티 등을 선호 종목으로 꼽으며 “금리 인하가 핵심 촉매”라고 평가했다.
유럽은 더 싸다
유럽 헬스케어의 선행 PER은 14.3배로 미국보다 더 낮다. 특히 노보 노디스크 주가는 1년 새 55% 급락했는데, 비만치료제 경쟁 심화와 관세 회피를 위한 미국 생산 전환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CIC 마켓솔루션즈의 아르노 카다르 애널리스트는 “섹터는 적응할 것”이라면서도 “
매출 구조 재조정과 조직 변화라는 대가
가 뒤따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미국에 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이런 흐름을 방증했다.
JP모건의 알리아가는 “헬스케어는 이미 상당한 고통을 겪었다”며 “대규모 자금 이탈이 극단적 수준에 이른 만큼 최악의 국면은 지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섹터 전반의 리레이팅(재평가)이 쉽지 않다는 데 투자자들의 견해가 모인다.
용어·배경 설명
1가장 우대국(MFN) 약가 규제란, 미국 정부가 특정 의약품 가격을 주요 선진국 평균 또는 최저 수준으로 묶어두는 제도를 말한다. 도입 시 제약사는 미국 판매가를 인하해야 하므로 매출·이익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2RNA 기반 치료제는 유전자 수준에서 질병을 조절하는 차세대 약물 플랫폼이다. 메신저RNA(mRNA) 백신 성공 이후 관련 기업·파이프라인 가치가 급등했으나, 상용화·규제 리스크도 공존한다.
3헬스케어 섹터의 PER(주가수익비율)은 이익 대비 주가 수준을 뜻하며, 낮을수록 저평가로 간주된다. 단, 정책·특허·임상 실패 등 ‘섹터 고유 리스크’가 함께 반영되므로 단순 비교는 유의해야 한다.
분석 및 전망
기자 관점으로 볼 때, 현재 헬스케어 주가는 정책 리스크 프리미엄이 과도하게 반영된 측면이 있다. 금리 인하와 고령화라는 구조적 수요가 유지되는 한, 리스크 대비 기대수익률(Risk-Reward)은 점차 개선될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MFN 약가 규제 추진 속도, 200% 관세 실제 적용 여부, 2025년 미국 대선 결과가 향후 12개월 밸류에이션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