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트 하인즈(Kraft Heinz)가 최근 발표한 기업 분할 계획은 수년간 이어진 가공식품 기피 흐름에 뒤늦게 대응한 조치로 평가된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이 결정이 회사의 핵심 브랜드를 되살리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25년 9월 11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Velveeta 치즈와 Heinz 케첩으로 유명한 크래프트 하인즈는 회사를 두 개로 나누는 방안을 발표했다. 하나는 성장 속도가 빠른 소스·콘디먼트 사업에 집중하고, 다른 하나는 전통적인 그로서리(대량포장 식료품) 부문을 담당하는 구조다.
그러나 전‧현직 직원, 컨설턴트,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은 “분할만으로는 소비자에게 에너지·혁신·명확성을 제공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시장에서는 이미 ‘Make America Healthy Again’(MAHA) 운동이 확산하며 가공식품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MAHA와 캘리포니아 규제, 식품 대기업에 직격탄
MAHA 위원회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부 장관 주도로 구성된 연방 패널이다. 위원회는
“화학첨가물과 초(超) 가공식품 정의를 정부 차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는 보고서를 9월 10일 발표했다. 인구 최대 주(州)인 캘리포니아 의회도 이달 중 초가공식품 규제 법안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어서, 크래프트 하인즈 같은 대기업은 이중 압박을 받고 있다.
독립 애널리스트 니컬러스 페러데이(Nicholas Fereday)는 “기업 분할이 근본적인 소비자 인식 변화를 해결하지 못한다”며 “전략적 큰 그림이 없다”고 말했다.
새 경쟁자들과 뒤처진 혁신
라오스 홈메이드(Rao’s Homemade) 등 신흥 브랜드들은 ‘천연 원료’를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 대표 제품인 크래프트 맥 앤 치즈마저 오랜 상징색인 파란 박스와 주황색 치즈소스를 유지하고 있으나, 점유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 시장조사업체 누머레이터(Numerator)의 분석이다.
소비자들은 고물가에 부담을 느끼는 동시에 GLP-1 계열 식욕억제제 복용으로 식품 구매량을 줄이고 있다. GLP-1은 혈당 조절 호르몬을 모방해 포만감을 높여주는 약물로, 체중 감소를 목적으로 처방된다. 이 약물의 확산 역시 식품업체 매출 감소 요인으로 꼽힌다.
크래프트 하인즈 주가는 올 들어 14% 가까이 하락했다. 같은 기간 다우존스 미국 식품기업지수는 6.5% 하락했으나, 크래프트 하인즈의 낙폭이 두 배 이상 크다. 회사의 유기적 순매출(Organic Net Sales) 역시 7개 분기 연속 감소했다.
“HFCS 대신 사탕수수당?” 경영진의 늑장 대응
익명을 요구한 전직 마케팅 임원은 “고과당 옥수수시럽(HFCS) 대신 사탕수수당(cane sugar)을 쓰자는 내부 제안이 있었지만, ‘비용 부담’을 이유로 무산됐다”고 밝혔다. 그는 “경영진은 ‘원재료를 바꿔도 매출이 늘어난다는 증거를 보여 달라’며 시장 추세보다 뒤늦게 반응했다”고 덧붙였다.
하인즈 케첩은 미국 시장에서 여전히 3분의 2 이상의 점유율을 갖고 있으나, 최근 4년간 하락세다(유로모니터 자료). 회사는 2019년 인수한 프라이멀 키친(Primal Kitchen)과 고가 라인 ‘심플리 하인즈’로 ‘무인공첨가’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올 2분기 심플리 하인즈 매출은 17% 증가, 프라이멀 키친은 24% 증가했지만, 기존 케첩·머스터드·마요네즈 핵심 브랜드는 정체 상태다.
MAHA 위원회 5월 보고서는 HFCS 과다 섭취가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NAFLD) 위험을 높인다는 2021년 상하이중의대 연구를 인용했다. 다만 의료계는 “어떤 설탕이든 과다 섭취는 모두 위험하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점증하는 주(州)별 규제 리스크
미주리·노스캐롤라이나·펜실베이니아 등 다른 주도 유사 법안을 검토 중이다. 보건복지부(HHS) 대변인은 “케네디 장관은 주(州)의 투명 라벨링 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주별 규제가 현실화될 경우, 오스카마이어 핫도그·크래프트 싱글즈·젤로 등 다수 브랜드가 성분 공시 및 원재료 변경 압박을 받을 전망이다.
전직 브랜드 매니저는 “2016년 크래프트 마카로니앤치즈의 합성 착색료를 제거했지만, 소비자 인식 개선 효과는 제한적이었다”며 “‘가공식품=건강에 해롭다’는 이미지를 바꾸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혁신 부재가 근본 문제”
2013년까지 H.J. 하인즈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빌 존슨(Bill Johnson)은 “대형 식품기업들은 제품이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근거를 소비자에게 제시하지 못했다”며
“혁신(Innovation)이 부족하다”
고 지적했다.
전문가 시각※ 대규모 브랜드 리뉴얼에는 설비 교체·마케팅·공급망 재정비 등 막대한 비용이 따른다. 그러나 규제 강화와 소비자 인식 변화 속도를 고려할 때, 성분 개선과 제품 혁신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결국 기업 분할은 재무적 구조조정 이상의 의미를 가지려면, 원재료 개선·신제품 개발·가격 전략을 포함한 전방위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이 업계의 공통된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