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티맷(캐나다)】 오래전부터 북서부 해안에 터전을 잡아 온 하이슬라(Haisla) 퍼스트 네이션이 이제는 산업용 안전모와 형광 안전조끼를 걸치고 자국 LNG 현장을 점검하는 ‘주체적 투자자’로 변신했다. 새로 취임한 족장 모린 나이스(Maureen Nyce)는 지난 8월 Cedar LNG 파이프라인 건설 현장을 방문하며 “방문 귀빈”이 아닌 “절반 이상의 지분을 가진 공동 소유주”로서 현장을 둘러봤다.
2025년 9월 19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하이슬라는 총 40억 달러(캐나다 달러 기준 약 54억 CAD)에 달하는 이 Cedar LNG 수출 프로젝트의 50.1% 지분을 보유한다. 나머지 49.9%는 캘거리에 본사를 둔 에너지 기업 Pembina Pipeline Corp.이 소유한다.
■ 세계 최초 ‘원주민 과반 지분 LNG’의 함의
하이슬라족의 참여로 세계 최초로 원주민이 과반 지분을 가진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가 2028년 가동을 목표로 순항 중이다. 이는 캐나다가 미국 의존도를 줄이며 아시아 시장으로 직접 LNG를 공급하려는 전략 속에서 정치·경제·사회적 시험대가 되고 있다.
아이디어 단계에서 현실화까지, Cedar LNG는 기존 인프라의 전략적 활용, 지역 사회의 압도적 지지, 그리고 초대형 대출이라는 세 가지 축이 맞물려 가능했다. 로이터는 현장 취재와 함께 7월 족장에 오른 나이스의 첫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내막을 확인했다.
■ ‘원주민 주도형’ 사업 모델 — 전례 없는 구조
캐나다에서 원주민-기업 파트너십은 통상 민간 기업이 제안하고 원주민이 뒤늦게 참여하는 방식이지만, Cedar LNG는 처음부터 하이슬라가 기획·주도했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핵심은 2018년 체결된 계약이다. 하이슬라는 Shell이 주도하는 대형 설비 LNG Canada로 가스를 공급하는 총연장 670km의 Coastal GasLink 파이프라인 용량 중 하루 4억 큐빅피트(ft³)을 확보했다. 이 우선 수송권이 원동력이 돼, 하이슬라는 독자적 LNG 플랜트를 세울 민간 파트너를 물색할 수 있었다.
“우리가 뛰어들어 기회를 잡느냐, 방관하다 뒤처지느냐의 문제였다.”
— 모린 나이스 하이슬라 족장
■ ‘소외’를 넘어 ‘투자’로 — 빈곤 탈피 모멘텀
하이슬라 공동체는 인구 상당수가 빈곤선 아래에 머무는 현실 속에서 산업 성장을 ‘불가피한 흐름’으로 인식했다. 초기엔 환경·생태계 우려도 있었으나, 지도부는 “장기적 생존전략”으로 접근했다. 사업개발 책임자였던 데이브 라밸리(Dave LaVallie)는 직접 보조금보다 ‘파이프라인 운송용량’ 확보가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자체 LNG 플랜트를 건설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 ‘조던코브 실패’ 뒤 Pembina의 기회 포착
한편 Pembina Pipeline은 미국 오리건주에서 추진하던 Jordan Cove LNG 프로젝트가 토지 소유주·환경단체·미 원주민 반발로 무산된 뒤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었다. 하이슬라는 수송권·사회적 승인이라는 ‘확실성’을 내세워 Pembina와 손잡았고, 2021년 지분 합작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는 Pembina가 원주민과 처음 체결한 지분 파트너십이다.
Pembina 수석부사장 스튜 테일러(Stu Taylor)는 “이사회와 경영진이 원하는 것은 결국 규제·사회적 확실성”이라며, “하이슬라는 초기부터 ‘과반 지분’이라는 선명한 비전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Cedar LNG 이사회는 하이슬라 4명, Pembina 4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완전 동등 지위의 거버넌스를 유지한다.
■ ‘분열의 이슈’ — 캐나다 전역으로 번지는 논쟁
저스틴 트뤼도 정부는 원주민 참여를 규제 승인 지름길로 장려하지만, 원주민 지분 참여가 만능 열쇠는 아니다. 504개의 대형 자원·에너지 프로젝트 중 73%가 원주민 영토 20km 이내에 위치하지만, 갈등과 반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올해 2월 TC Energy는 C$10억 규모 파이프라인 지분 매각 계약을 돌연 철회했다. 세부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고, 참여 부족 또는 내부 갈등이 원인으로 거론될 뿐이다.
Cedar LNG에서 북쪽으로 230km 떨어진 곳에서는 미국 텍사스 기업 Western LNG가 추진 중인 Ksi Lisims LNG가 격렬한 지역 반발에 직면했다. 니스가아(Nisga’a) 네이션이 파이프라인 지분을 보유하며 지지하는 반면, Gitanyow 세습 추장단은 연어 서식 환경 훼손을 우려하며 지난해 도로를 봉쇄했다.
연방 정부는 9월 15일 Ksi Lisims를 조건부 승인했으나, Gitanyow 측은 법정 투쟁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지속가능성 책임자 타라 마스던(Tara Marsden)은 “‘원주민 동의’라는 외피로 사회적 수용성을 과장하는 산업계의 전략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캐나다 원주민 에너지 지분 참여 현황
로펌 Fasken에 따르면 전국에 원주민이 전부 또는 일부 지분을 가진 에너지·인프라 프로젝트는 165건이며, 그중 29%가 최근 2년 사이 발표됐다.
■ ‘사상 최대’ FNFA 대출로 자금 조달
하이슬라는 Pembina 재무팀과 협력해 총 사업비의 60%를 은행단 공사금융, 나머지 40%를 양측 지분 투자로 조달했다. 특히 하이슬라는 퍼스트 네이션 금융청(FNFA)에서 C$14억을 빌려 FNFA 역사상 최대 대출, 그리고 캐나다 원주민 대상으론 손꼽히는 규모의 차입을 성사시켰다.
지난해 실시된 주민 총투표에서 92.9%가 차입에 찬성했다. 나이스 족장은 수익 전망을 구체적 액수로 밝히길 거부했지만, “부채 상환에 최소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 교육·주거·보건 ‘세대 계획’ 착수
수익 본격 유입 전에도 하이슬라 평의회는 이미 주택 공급, 직업훈련, 보건·사회 복지 등 장기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나이스는 “이곳은 우리의 영토이며, 프로젝트가 사라져도 우리는 남아 있을 것
”이라며 원주민 주권과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강조했다.
■ 용어 풀이
LNG(Liquefied Natural Gas)는 액화천연가스로, 천연가스를 –162°C에서 냉각해 부피를 약 1/600으로 줄인 상태다. 덕분에 파이프라인이 없는 지역에서도 선박으로 대량 운송이 가능하나, 액화·재기화 과정에서 높은 비용과 탄소 배출이 수반된다.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은 캐나다 연방정부가 인정한 북미 원주민 공동체를 지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