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칠레 좌파 진영이 2025년 11월 대선에서 부진한 현직 대통령의 공백을 메우고 우파의 재부상을 저지하기 위해 공산당(PC) 소속의 자넷 자라(51) 노동장관을 대선 후보로 전격 추대했다.
2025년 7월 22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자라는 지난달 실시된 ‘통합 칠레(Unidad para Chile)’ 연립 여권 경선에서 3명의 경쟁자를 누르고 깜짝 승리를 거둔 뒤 본선 무대에 공식 등판했다. 그는 연금 개혁과 주 40시간제 도입이라는 굵직한 성과를 앞세워 회의적인 유권자들을 설득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자라 앞에는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그리고 1973년 쿠데타 이후 이어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 독재의 기억이란 부담이 겹겹이 놓여 있다. 칠레 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공산당’ 명칭에 대한 역사적 거부감이 존재한다.
“공산당에 대한 많은 이야기는 냉전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재 칠레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는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제도적 규범을 깊이 존중한다.” ― 자넷 자라
정치 이력과 실무 경험1학생 운동가·공공·민간 부문 두루 경험을 겸비한 자라는 1990년대 학생 리더 시절 당에 입당한 뒤, 미첼 바첼레트 전 대통령 정부에서 다수의 부처를 거쳤다. 2022년 보리치 행정부 출범과 함께 노동장관에 기용되면서 존재감을 키웠다.
그는 “우리는 노동자·기업인과 손잡고 합의에 이르는 능력을 갖췄다. 아무도 무오류가 아니지만, 국가가 필요로 하는 개혁을 집행할 역량이 있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라는 결선 진출 가능성이 높은 반면, 2라운드에서 우파 후보에게 열세를 보인다. 칠레 대선은 11월 16일 1차 투표 후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월 결선으로 이어진다.
※ run-off(결선투표):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때 1·2위가 재대결하는 방식.
캠페인 3대 축
자라는 경제 성장·사회 의제·공공 안전을 3대 기둥으로 제시한다. 2019년 대규모 시위를 촉발한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며 “잘사는 국민과 대다수 서민이 공존하는 두 개의 칠레” 현실을 끝내겠다고 공언했다.
치안 부문에서는 살인·납치 등 강력범죄 증가세에 대응해 경찰 예산 증액과 국경 생체인식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지만, 장벽·지뢰 설치와 같은 강경책은 “현실성 없는 구호”라며 일축했다.
※ Biometric screening: 지문·홍채 등 생체정보로 출입국자를 확인하는 첨단 보안 기법.
핵심 자원 ‘리튬’을 둘러싼 시각차
칠레는 세계 1위 구리 생산국이자 리튬 주요 공급국이다. 보리치 정부는 국영 구리기업 코델코(Codelco)와 민간 리튬 기업 SQM이 합작해 생산량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자라는 “2015년 정치자금 스캔들로 얼룩진 SQM과 30년 추가 계약 연장은 동의할 수 없다”며 공개 반기를 들었다. 그는 만약 현 정부 임기 내 합의가 무산될 경우, 리튬 공기업 설립을 제안해 민관 합작 모델을 구상하겠다고 밝혔다.
※ Codelco: 1976년 구리 국유화 이후 설립된 국영광산기업, 칠레 외화 수입의 핵심.
대외 통상 전략과 미국 변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구리 관세 인상을 경고한 데 대해, 자라는 라틴아메리카·중국·인도 등과의 무역 다변화로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인도와 체결한 무역협정은 확장 잠재력이 크다. 미국과도 외교적·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되 국익 수호를 위해 신중히 행동하겠다.”
전문가 시각
현지 정치 분석가들은 자라의 최대 과제로 중도층의 불안 해소를 꼽는다. 공산당 간판 후보임에도 노선이 실용주의적이라는 점은 장점이지만, 동시에 ‘정체성 희석’이란 비판도 함께 받는다.
특히 202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우파가 의회 지형을 확장한 상황에서, 자라가 집권하더라도 개혁 입법을 통과시키려면 초당적 연대가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리튬 국유화 카드는 녹색전환 시대에 자원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할 수 있어, ‘제2의 코델코 모델’을 꿈꾸는 좌파 지지층 결집 효과가 기대된다는 평가도 있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정책 불확실성이 단기 리스크이지만, 자라가 “민관 협력”을 지속적으로 언급한 만큼, 극단적 국유화보다는 단계적 제도 개선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결론적으로 자넷 자라는 ‘공산당 간판’이란 상징성과 ‘실용주의 개혁가’란 이미지를 절묘하게 결합해 우파 공세를 정면 돌파하려 한다. 11월 본선까지 남은 4개월 동안 중도·청년·노동계를 얼마나 폭넓게 결집시키느냐가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