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유세 기간 내내 “취임 첫날 인플레이션을 종식시키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는 2024년 10월 미시간주 새기노(Saginaw) 유세에서 “새 행정부 1일 차부터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끝내고 미국을 다시 살 만한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2025년 9월 19일, 나스닥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여전히 연 2%대 중반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BLS) 집계에 의하면 1월부터 8월까지 CPI 평균 상승률은 2.65%였다. 참고로, 연 2%는 연방준비제도(Fed)가 물가안정 목표로 제시한 수치다.
표면적으로 2.65%는 ‘고물가 공포’라 부르기엔 낮아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추세 방향이다. 1월 3.0%였던 CPI 상승률은 4월 2.3%까지 떨어지며 ‘디스인플레이션’ 흐름을 보였지만, 8월에는 2.9%로 반등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는 더 이상 인플레이션이 없으며 거의 모든 품목 가격이 내려갔다”고 2025년 9월 8일 WABC 라디오에서 주장한 것과 배치된다.
인플레이션 반등의 배경: 관세 정책
월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6월까지 미국 기업들이 수입 원가 상승분의 22%만 소비자에게 전가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현행 관세 정책이 유지되면 전가율이 67%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른바 ‘관세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실제 8월 CPI 세부 항목을 보면 식료품 가격이 전월 대비 0.6% 급등해 3년 만의 최대 폭을 기록했다. 의류·시청각(AV) 기기 가격은 0.5%, 자동차 부품은 0.6% 뛰었다. 커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0%나 비싸졌다. 전체 물가는 8월 한 달 동안 0.4% 올라 지난해 12월 이후 가장 큰 월간 상승률을 나타냈다.
CPI·관세 용어 간단 정리
CPI(Consumer Price Index)는 소비자가 구입하는 재화·서비스 가격 변동을 측정한 지표로, 미국 통계청 격인 BLS가 매달 발표한다. 연 2%대는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으로 평가되지만, 가계 체감물가는 평균값보다 높을 수 있다.
관세(Tariff)는 수입품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보호무역 목적이지만, 수입 원가→생산 원가→소비자 가격 순으로 이전(pass-through)되면서 ‘숨은 세금’ 역할을 한다. 전가율이 높아질수록 물가 상승 압력도 커진다.
전문가 시각과 전망
경제학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무역 정책이 초기에는 국내 물가에 제한적 영향을 미쳤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비용 전가가 불가피해질 것이라 분석한다. 한국은행이 2019년 발표한 연구 결과도 ‘관세 상승 → 소비자물가 상승’의 시차 효과를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1일 차에 인플레이션을 끝냈다”는 주장과 달리, 정책 자체가 인플레이션 재가속의 주범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이 제기된다. 관세를 철회하거나, 공급망 병목을 해소하지 않는 한 2%대 초반의 물가 목표 달성은 쉽지 않아 보인다.
향후 변수로는 11월 공개될 3분기 GDP 및 개인소비지출(PCE) 물가가 꼽힌다. PCE는 연준이 선호하는 물가지표로 CPI보다 변동폭이 작지만, 동일한 방향성을 보인다. 만약 PCE가 3%에 근접한다면, 연준의 12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낮아질 전망이다.
기자 분석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 ‘Day-1 인플레이션 종식’은 정치적 슬로건이라는 점에서 이미 현실성을 의심받았다. 인플레이션은 통화·재정·외부 충격 등 복합 요인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편, 달러 강세가 수입물가를 일시적으로 낮춰 인플레이션을 완화할 가능성도 있지만, 관세·임금 상승·서비스 수요 확대라는 구조적 요인이 상쇄할 공산이 크다.
결국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은 단기간에 종식될 수 있는 전쟁이 아니다. 소비자·기업·정부가 상호보완적 정책 조합을 마련해야 ‘고물가→고임금→다시 고물가’의 악순환을 차단할 수 있다. 미 연준이 2% 목표를 고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플레이션은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정치 구호 한마디로 뽑아낼 수 있는 잡초가 아니다.” — 미국 MIT 슬론경영대학원 로버트 헤이즈 교수
현 시점에서 가계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전략은 지출 구조조정과 고금리 예금 활용이다. 전문가들은 ‘필수 소비’와 ‘선택 소비’를 구분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연 5% 내외 고정금리 예·적금을 통해 실질 구매력을 방어하라고 조언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정책을 완화하거나, 공급망 정상화를 가속한다면 2026년 상반기 이후 물가 안정이 가시화될 수 있다. 반면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될 경우, 생활필수품부터 내구재까지 전방위적인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즉, ‘취임 첫날 인플레이션 종식’이라는 선언적 목표는 현실에서 정책·시장·소비 심리의 다층적 변수에 의해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