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증시에서 일라이 릴리(Eli Lilly & Co.) 주가가 장전 거래(Premarket)에서 12% 이상 하락하며 충격을 안겼다. 이번 급락은 회사가 개발 중인 체중 감량 경구제 ‘오포글리프론(orforglipron)’의 최종 단계(3상) 임상 결과가 시장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발생했다.
2025년 8월 7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릴리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임상 참가자들은 72주 투약 후 평균 12.4%의 체중 감량 효과를 경험했으며, *플라시보(가짜 약) 그룹은 0.9% 감소에 그쳤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경쟁사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의 주사제 ‘위고비(Wegovy)’가 2021년 68주 시험에서 보여준 14.9% 감량 기록을 밑도는 수치다.
경쟁 격화 및 시장 기대치
릴리 경영진은 하루 한 번 복용하는 경구용 GLP-1(장(腸)호르몬 계열) 제제 오포글리프론을 자사 주사제 ‘제프바운드(Zepbound)’나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보다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 있는 대체제로 홍보해 왔다. 시장조사 기관들은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가 2030년 초 1,500억 달러(약 201조 원)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로이터가 인용한 애널리스트들은 오포글리프론이 위고비 최종 시험과 동등한 14.9% 이상 감량 효과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했으며, 일부는 이를 상회할 것이라고 봤다. 이러한 높은 기대치가 주가의 급락 폭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각 팔(Arm)에서 이렇게 많은 환자가 중도 이탈한 것은 이례적이며, 약물 내약성에 대한 추가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 미즈호(Mizuho) 증권 보고서 중
실제로 미즈호 애널리스트 노트에 따르면, 최고 투약군에서 이탈률이 24.9%에 달했고, 플라시보군도 29.9%로 높게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연구 설계 자체가 독특했을 가능성”을 지적하며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노보 노디스크의 추격
이번 결과는 노보 노디스크가 2024년 6월 발표한 차세대 콤보 치료제 ‘카그리세마(CagriSema)’ 데이터와도 대비된다. 해당 연구에서 비만 성인을 대상으로 평균 23% 체중 감소가 확인됐고, 제2형 당뇨를 동반한 과체중 환자들도 16% 가까이 감량했다.
용어 해설
GLP-1은 소장에서 분비되는 인크레틴 계열 호르몬으로 식욕 억제와 인슐린 분비 촉진 기능이 있다. 플라시보란 유효 성분이 없는 가짜 약을 뜻하며, 임상시험에서 약물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사용된다. Premarket은 정규 거래 시작 전 시간외 거래를 의미한다.
실적 발표와 주가 변동 상쇄
오포글리프론 뉴스로 가려졌지만, 릴리는 이날 2025년 2분기 실적도 공개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8% 증가한 155억6,000만 달러로 블룸버그 컨센서스(147억 달러)를 웃돌았다. 주력 품목 제프바운드 매출은 33억8,000만 달러를 기록해 예상치를 크게 상회했다.
조정 주당순이익(EPS)은 6.31달러로, 전년 동기 3.92달러에서 61% 급증했다. 릴리는 이에 따라 2025 회계연도 매출 가이던스 중간값을 1.5억 달러 상향한 600~620억 달러로 조정했으며, 조정 EPS 전망도 21.75~23달러로 올렸다.
데이비드 릭스(David Ricks) 최고경영자(CEO)는 “주요 치료제의 지속적 모멘텀이 실적을 뒷받침했다”며 “온콜로지(암 치료)·심장대사 분야 연구 개발에서도 긍정적인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시각
바이오·제약 애널리스트들은 오포글리프론이 복용 편의성과 비용 측면에서 여전히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다만 체중 감량 효능이 기대치를 하회한 만큼, 릴리가 투약 용량·투약 기간 최적화 및 장기 안전성 데이터 확보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비만 치료제 시장이 급팽창함에 따라, 경구제·주사제·콤보제 간 효능·가격 경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