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익거래(아비트리지)와 시장 조작의 경계는 오래전부터 글로벌 금융시장의 가장 회색지대로 꼽혀 왔다. 인도 증권거래위원회(SEBI)가 7월 3일(현지시간) 미국 고빈도 매매업체 제인 스트리트(Jane Street Group)에 대해 임시 거래정지 조치를 내리면서, 이 모호한 경계선이 다시 한 번 시장의 중심 의제로 떠올랐다.
2025년 7월 18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SEBI는 제인 스트리트가 인도 대표지수 Nifty 50과 니프티 뱅크 지수를 인위적으로 움직여 대규모 옵션 포지션에서 이익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SEBI는 제인 스트리트의 인도 내 증권·파생상품 시장 접근을 일시적으로 차단했으며, 회사 측은 결정에 불복해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SEBI가 공개한 105쪽 분량의 중간 명령문에 따르면, 제인 스트리트는 거래 초반 니프티 뱅크 현·선물시장에 대규모 매수 주문을 넣어 지수를 끌어올린 뒤, 세션 후반부에 해당 포지션을 급속히 청산하며 지수를 하락시켰다. 동시에 하락에 베팅한 옵션 포지션을 보유해 상당한 차익을 실현했다는 게 규제당국의 주장이다.
SEBI는 이러한 행위가 “합리적 경제 목적이 결여된 대규모·고강도 개입“이라며 시장 조작으로 판단했다. 반면 제인 스트리트는 내부 이메일에서 “이는 기본적인 지수 차익거래 전략”이라고 항변했다. 회사는 7월 14일 SEBI 지시에 따라 에스크로 계좌에 5억 6,700만 달러를 예치하고, 동시에 인도 내 거래 재개를 요청했다.
‘Mens Rea’— 의도가 핵심 쟁점
법률공방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합법적 차익거래와 불법적 조작을 가르는 기준은 ‘의도’와 ‘시장 충격’이라고 지적한다. 오클라호마대 프라디프 야다브(Pradeep Yadav) 재무학 교수는 “
유동성이 낮은 시장에서 가격을 인위적으로 움직여 차익거래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낸다면, 이는 곧 시장 조작
“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인도 옵션시장은 대량 참여자 덕분에 고(高)유동성을 보이지만, 현물·선물시장은 상대적으로 얕은 유동성을 갖고 있어 대규모 주문이 가격을 흔들기 쉽다고 지적했다. *
전 SEBI 이사인 V 라구나탄(V. Raghunathan)은 CNBC 인터뷰에서 “제인 스트리트는 ETF 가격과 기초자산 간 미세한 괴리를 노리는 등 초단타 차익거래로 유명하다”며, “공세적이지만 시장 효율성 제고에 기여하는 합법 전략“이라고 반박했다.
알아두면 좋은 전문 용어
• 고빈도 매매(High-Frequency Trading, HFT) : 초단기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수백만 건의 주문을 밀리초 단위로 체결, 미세한 가격 차이에서 수익을 추구하는 기법이다.
• Mens Rea : 라틴어로 ‘유죄 의사’를 의미하며, 범죄적 행위를 판단할 때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를 따지는 법률 개념이다.
• 스푸핑(Spoofing) : 실제 체결 의사 없이 대량 주문을 내 시장 심리를 왜곡한 뒤, 직후 주문을 취소하는 불공정 매매수법이다.
• Latency Arbitrage : 여러 거래소 간 정보 전파 지연(레이턴시)을 이용해 먼저 도달한 가격 정보를 기반으로 이익을 얻는 전략으로, 합법이지만 논란이 많다.
SEBI 측은 “현·선물 시장에서 반복적 손실, 옵션 시장에서만 반복적 이익“이라는 패턴이 의도적 가격 왜곡 정황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야다브 교수는 정상적 차익거래라면 현물·옵션 포지션 규모가 비례해야 한다면서, 이번 사건은 “고전적 차익거래와 거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알파쿠션(Alphacution Research)의 폴 로워디(Paul Rowady) 리서치 디렉터는 “규제기관의 ‘이빨’이 어디까지인지가 조작 여부를 가르는 실무 기준”이라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같은 사안을 조사할 경우 스푸핑·허위 주문 여부를 핵심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격적으로 거래하는 것 자체는 범죄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시장 분석가들은 이번 사건이 인도 시장 구조의 취약점, 특히 현물과 옵션 시장 간 유동성 불균형을 드러냈다고 본다. SEBI가 최근 960만 명의 개인 파생상품 트레이더를 조사한 결과, 91%가 지난해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통계는 당국이 시장 ‘건전성’ 강화에 더욱 매달릴 명분을 제공한다.
전문 기자 시각
제인 스트리트 사건은 단순히 한 HFT 업체의 규제 리스크를 넘어, 차익거래의 본질과 시장 구조적 취약성, 그리고 규제기관의 역할이라는 세 축을 한꺼번에 부각시켰다. 인도 정부는 역동적인 파생상품 시장을 육성해 자본시장을 확대하려는 동시에 개인 투자자 손실을 줄여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SEBI가 이번 사안을 수위 높게 다루는 것은 ‘경종’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법원이 의도성과 시장 충격 정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HFT 업계 전반의 규제 프레임워크가 재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투자자와 시장 참여자는 사건 결과를 예의주시하며, 유사 전략에 대한 컴플라이언스 점검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차익거래는 이웃집 화재보험, 시장조작은 폭죽과 프로판 탱크 선물“이라는 하워드 피셔(전 SEC 소송담당 변호사)의 비유를 인용하며, 결국 핵심은 선의냐, 악의냐라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