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커넥션 논란 속 트럼프의 사임 압박에 맞선 인텔 CEO 립부 탄

인텔(Intel) 최고경영자(CEO) 립부 탄(Lip-Bu Tan)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제기된 즉각 사임 요구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2025년 8월 8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탄 CEO가 중국 반도체 산업 및 중국군(PLA) 관련 기관과의 과거 인연을 이유로 “심각한 이해충돌 상태(conflicted)”에 놓여 있다며 즉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발언 직후 인텔 주가는 3% 이상 급락했다.

이에 대해 탄 CEO는 8월 7일 자사 임직원에게 발송한 장문의 서한에서 “나는 지난 40년간 미국을 집으로 삼아왔고, 누구보다 미국과 인텔을 사랑한다”라며 “월든 인터내셔널(Walden International)과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즈(Cadence Design Systems) 재직 경력과 관련해 잘못된 정보가 퍼지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업계 생활 40여 년 동안 전 세계 여러 파트너와 협력해 왔지만, 단 한 번도 법적·윤리적 기준을 어긴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 탄 갈등의 배경

“CEO는 즉시 사임해야 한다. 다른 해결책은 없다.” – 도널드 트럼프, 2025년 8월 8일 Truth Social 게시물

트럼프의 공세는 공화당 소속 톰 코튼(Tom Cotton) 상원의원이 7월 말 인텔 이사회에 보낸 질의서에서 촉발됐다. 코튼 의원은 탄 CEO가 중국 국방 과학기술대학(NUDT)에 1 소프트웨어를 판매해 미국 수출 통제 규정을 위반한 사실로 유죄를 인정한 케이던스의 전 이사였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인텔이 미국 보조금 및 국방부 계약을 받는 ‘책임 있는 수탁기관’으로서 적합한지 의문을 제기했다.

탄 CEO는 서한에서 “우리는 트럼프 행정부와 협력해 사실관계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국가·경제 안보 강화를 위한 대통령의 의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사회 역시 회사 변혁과 고객 혁신, 실행력 제고라는 우리의 노력을 전폭 지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업계 반응과 추가 쟁점

월가에서는 탄 CEO가 인텔의 반등을 이끌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반도체 전문 애널리스트 스테이시 래스곤(Stacy Rasgon)(번스타인)은 “탄의 중국 관련 활동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면서도 “정치적 시각에서 볼 때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트럼프에게는 다른 실리콘밸리 CEO들이 누려온 개인적 친분(channel)이 탄에게 부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래스곤 애널리스트는 “탄은 순수한 열정으로 인텔 재건 프로젝트를 맡았지만, 거센 정치적 압력 속에서 퇴진이 회사를 위한 최선인지 고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탄이 이탈할 경우 차기 리더 공백핵심 인재 유출 위험이 동시에 부각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인텔은 NVIDIA·AMD와의 시장점유율 경쟁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어, 최고경영진의 정치적 리스크가 연구개발(R&D)·설비투자(capex) 전략 수정 논란과 맞물려 주가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잘 알려지지 않은 키워드 해설

Walden International –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글로벌 벤처캐피털로, 1990년대 이후 아시아 반도체·IT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해 왔다.

Cadence Design Systems – 전자설계자동화(EDA) 선두 업체로,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를 글로벌 팹리스·파운드리에 제공한다. EDA는 칩 회로 설계를 위한 필수 도구

NUDT(중국 국방과학기술대학) – 중국 인민해방군 산하 연구기관으로, 미국 수출 통제 리스트에 올라 있다. 미국 기업이 이 기관에 전략물자를 판매하려면 별도 허가가 필요하다.


기자 관전평

탄 CEO의 해명은 법적·윤리적 무결성을 강조하며 트럼프의 정치적 공세를 ‘사실 왜곡’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강경하다. 그러나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재점화되는 국면에서, ‘중국 커넥션’은 그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미국 반도체 생태계 전반의 리스크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텔 이사회와 주주, 그리고 연방정부의 보조금 심사 당국이 향후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Truth Social을 통해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발신할 경우, 정책·선거 이슈와 기업 거버넌스가 얽힌 복합 리스크가 인텔뿐 아니라 동종 업계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맞물려 인텔이 예고했던 첨단 공정(2 nm 이하) 투자 계획 축소, 혹은 사업구조 개편 발표가 지연될 경우, 산업 내 경쟁력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결국 이번 사안은 개별 CEO의 거취를 넘어, 미국이 주도하는 ‘친(親)미 반도체 공급망’과 중국의 ‘자력갱생 전략’ 사이에 끼인 글로벌 기업들의 콤플라이언스 관리정치 리스크 대처 능력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