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전기차(EV) 산업을 차기 5개년(2026~2030년) 전략 산업 목록에서 제외하며 업계에 대한 대규모 재정 지원을 단계적으로 접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동안 막대한 정부 보조금이 만든 초과 공급 구조가 중국 내수를 넘어 해외 시장 진출로 이어지는 가운데, 정책 당국이 이제는 시장 경쟁에 운명을 맡기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2025년 10월 29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 최고 정책 결정 기구는 최근 발표한 ‘제15차 5개년 경제·사회 발전 규획(2026~2030)’ 초안에서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수소연료전지차를 포함한 신에너지차(NEV)를 ‘전략적 신흥 산업’ 항목에서 첫 번째로 제외했다. 이는 10여 년 만의 변화다.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 그룹(Eurasia Group)의 중국 담당 이사 왕단(Dan Wang)은 ‘이는 전기차 산업이 이미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며, 보조금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이미 배터리와 EV 관련 기술에서 세계 최상위권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더 이상 우선순위를 둘 인센티브가 없다’고 덧붙였다.
1. 왜 이번 결정이 중요한가?
중국은 2010년대 초반부터 NEV를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대규모 보조금·세제 혜택을 제공해 왔다. 그 결과 BYD, 상하이자동차, 지리자동차 등 로컬 브랜드가 글로벌 공급망을 장악했고, 2024년 7월 기준 중국 내 자동차 판매의 50% 이상을 NEV가 차지하며 당초 목표 시점을 10년 이상 앞당겼다. 그러나 무리한 생산 확대가 소비 수요를 추월해 ‘공급 과잉’ 논란이 불거졌고, 시진핑 국가주석까지 ‘지나친 경쟁’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
리서치 기관 자토 다이내믹스(Jato Dynamics)에 따르면, 중국에서 영업 중인 169개 완성차 업체 중 93곳의 시장점유율이 0.1% 미만에 불과하다.
이는 정부 주도의 양적 성장 정책이 한계에 직면했음을 보여 준다.
2. 구체적 보조금 정책 변화
중앙정부는 2022년 말 소비자 구매 보조금 제도를 종료했고, 2027년까지 자동차 구매세(통상 10%) 감면 혜택도 단계적으로 없앤다는 계획을 세워 둔 상태다. 다만 중국자동차공업협회 등 업계 단체는 ‘급격한 세제 회수는 산업 충격이 크다’며 완만한 속도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5개년 계획 초안에서 NEV가 제외됐다는 사실은, 향후 중앙 재정 지원이 더욱 축소될 것임을 시사한다. 교육부 산하 국제경제무역대학 WTO연구원 투신취안(屠新泉) 원장은 ‘국가 차원에서 NEV에 지나치게 주목하면 오히려 과잉설비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면서 ‘향후 세부 로드맵은 국가발전개혁위원회(국가발개위)나 공업정보화부가 별도로 제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3. 시장 주도 경쟁 심화
CITIC증권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중국 상장 완성차 17개사 중 11개사가 흑자를 기록했지만, 나머지는 적자 폭이 커졌다. 이는 보조금·세제 혜택이 줄어드는 과정에서 ‘규모와 기술’ 모두 갖춘 업체만 생존할 것임을 예고한다. 중국승용차연합회(CPCA) 추이둥수(崔东树) 비서장은 ‘정부는 과거처럼 일괄적 지원을 하기보다 기술 혁신 촉진, 저품질 차량 감산 등 세밀한 정책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의 왕샤오천 연구원은 ‘BYD와 리스프모터(Leapmotor)는 공급망 통합으로 원가 경쟁력을 강화했고, 샤오미·화웨이 연합 브랜드(HIMA)는 소비자에게 친숙한 IT 이미지를 앞세워 첨단 주행 기능을 강조하며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 해설: NEV·FYP 용어 풀이
• NEV(New Energy Vehicle): 전기모터를 동력으로 쓰면서 배출가스를 줄인 차량을 총칭한다. 완전 전기차(EV)뿐 아니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수소연료전지차(FCEV) 등이 포함된다.
• 5개년 계획(Five-Year Plan, FYP): 중국이 1953년부터 시행해 온 중장기 경제·산업 발전 로드맵으로, 중앙정부가 5년 단위로 전략 산업·투자 방향을 제시한다.
이러한 용어를 이해하면, 중국 정책 변화가 글로벌 배터리·자동차 공급망과 투자 전략에 어떤 영향을 줄지 한층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4. 향후 전망
전략 산업에서 빠졌다고 해서 NEV의 국가적 중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 익명의 국무원 정책 자문위원은 ‘NEV는 여전히 수출·산업연쇄·기술 리더십 측면에서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이제부터는 정부가 아닌 시장이 승자를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는 정부 지원 축소로 가격 경쟁이 심화되고, 소프트웨어·자율주행·배터리 에너지 밀도 등 혁신 요소가 생존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본다. 실제 BYD는 2024년 8월, 배터리 내재화율을 높여 원가를 최대 7% 낮춘 ‘블레이드 배터리’ 차세대 버전을 공개했고, 화웨이는 자사 AI 칩 ‘기린(Kirin)’을 차량 제어 OS에 탑재해 주행 보조 알고리즘을 고도화했다.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중국산 전기차가 유럽·동남아·남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영향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미국·EU가 안보·환경을 이유로 수입규제를 강화할 변수도 있다. 업계 전문가는 ‘중국 정부가 보조금 카드를 접더라도, 표준 제정·금융 지원·무역 외교를 통해 우회적 지원을 이어갈 것’이라는 시각을 제시한다.
결국 ‘보조금에서 혁신으로’가 중국 전기차 산업의 다음 화두가 될 전망이다. 대당 판매 가격과 이익률, 해외 시장 다변화 전략, 배터리 기술 우위 확보 등 핵심 경쟁 지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기업은 합종연횡 또는 퇴출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