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발(發) 제약 산업 동향에 따르면, 중국의 연구·개발(R&D) 기반 제약 기업들이 핵심 실험 재료인 시약(reagent)을 글로벌 기업 대신 국내 업체에서 조달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2025년 8월 13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제약사들은 미국 써모피셔 사이언티픽(Thermo Fisher Scientific)과 독일 머크(Merck) 등 서방 공급사로부터 들여오던 시약을 상하이 타이탄 사이언티픽(Shanghai Titan Scientific)이나 난징 바이지메 바이오테크(Nanjing Vazyme Biotech) 등 중국 업체 제품으로 대체하려는 수요를 드러냈다.
업계 관계자 5인은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현지 조달은 배송 기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할 뿐 아니라, 미·중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수입 관세 리스크를 줄여준다”라고 입을 모았다. 유엔 Comtrade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중국의 실험·진단용 시약 수입액은 57억6,000만 달러로, 2023년의 58억3,000만 달러 대비 소폭 감소했다.
시약이란 무엇인가
시약은 화학·생물학 실험에서 특정 반응을 일으키거나 분석 목적으로 사용되는 물질이다. 신약 후보 물질을 선별하고 품질을 관리하는 단계에서 필수적인 재료로,
“시약 없는 실험은 엔진 없는 자동차와 같다”
는 말이 업계에 통용될 정도로 중요성이 크다.
첸파트너 파마텍(ChemPartner PharmaTech)의 공동대표 마싱취안(Ma Xingquan)은 “전임상 단계에서 사용하는 시약의 대부분을 지금도 타이탄, 상하이 알라딘 바이오케미컬 테크놀로지(Aladdin Biochemical Technology) 등 중국 업체 제품으로 충당하고 있다”며 “신제품이 출시되면 국산 비중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 급등이 촉발한 ‘로컬 전환’ 가속
무역전쟁 여파로 2025년 4월 중국 정부가 미국산 시약에 적용하는 관세율을 125%까지 일시 인상하자, 대다수 중국 제약사들은 서둘러 국내 대체품 검토에 나섰다. 타이탄의 제품 매니저 양둥(Yang Dong)은 “관세 정책 변동성이 워낙 커 일부 고객은 ‘언제 다시 올려버릴지 모른다’며 불안해한다”고 설명했다.
바이지메의 쉬샤오위(Xu Xiaoyu) 부사장은 “4월 이후 고객의 90% 이상이 ‘수입 시약을 국산으로 대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면서 “관세 인상은 고객에게 단기적 충격파로 작용했고, 그 결과 ‘즉각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고 말했다.
실적과 주가: 국산 업체 ‘방긋’, 글로벌 기업 ‘주춤’
중국국제금융공사(CICC)는 타이탄의 2025년 연간 매출이 22% 증가한 35억2,000만 위안(약 4억9,039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소주증권(Soochow Securities)은 바이지메의 매출이 15% 증가한 15억9,000만 위안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주가 흐름을 살펴보면, 2025년 들어 타이탄과 바이지메의 주가는 각각 54%, 18% 상승했다. 반면 머크는 21%, 써모피셔는 8% 하락했다.
글로벌 빅파마의 대응 전략
시장조사업체 모닝스타(Morningstar)의 애널리스트 맥스 요우즈마(Max Jousma)는 “향후 5년간 중국 시약 시장은 연평균 10% 이상 성장할 것”이라며, 고성장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머크와 스위스 진단업체 로슈(Roche Holding)도 중국에 생산 거점을 구축해 대응하고 있다.
머크는 2023년 장쑤성 난퉁에 7,000만 유로(약 8,135만 달러)를 투입한 시약 공장을 2026년 가동 목표로 건설 중이다. 로슈는 2028년부터 쑤저우 생산·실험·물류 시설을 확장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요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써모피셔는 “제품 라인·국가별 사업 전략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내부 정책을 이유로 중국 시장 전략을 언급하지 않았다.
현실적 한계도 존재
업계 전문가들은 “규제 승인 과정에서 사용한 시약을 변경하면, 물질 일관성 검증이 새로 이뤄져야 하므로 개발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듀크쿤산대학교(Duke Kunshan University)의 RNA 생물학자 황린펑(Huang Linfeng)은 “시약 교체는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아 임상 개발에 심각한 차질을 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난관은 특허·노하우 보호다. 푸천(톈진) 화학시약(Fu Chen (Tianjin) Chemical Reagents Co.)의 청샤오쥔(Cheng Shaojun) 부총경리는 “일부 외국산 시약은 제조 장비 자체를 구매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환율 정보
이번 기사 작성 시점 기준 1달러=0.8605유로, 1달러=7.1779위안으로 환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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