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 엔비디아(Nvidia)와 AMD가 공급하는 일부 인공지능(AI)용 프로세서를 민감한 분야에서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특히 엔비디아의 최신형 중국 전용 모델인 ‘H20’ 가속기가 주요 타깃으로 지목되며, 중국 반도체 자립 전략의 연장선이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2025년 8월 12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 규제당국은 최근 몇 주 사이 중앙·지방 정부 산하 기관 및 국영·민간 기업에 ‘H20 칩을 포함한 미국산 중급 AI 가속기의 도입을 자제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비공식적으로 전달했다. 이는 정부·공공 프로젝트 또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민감 업무에 우선 적용되며, 향후 민간 영역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엔비디아 H20는 미국 정부의 수출 통제 규정을 충족하기 위해 성능·대역폭 등이 부분적으로 제한된 ‘중국 맞춤형’ 모델이다. 미국 상무부는 2023년 10월 이후, 인공지능 훈련용 고성능 GPU의 대(對)중국 수출을 단계적으로 규제해 왔다. 그 결과 엔비디아는 A100·H100 등 주력 제품 대신 H20, L20, L2 등 성능 축소형 모델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AMD도 유사한 조건으로 인공지능 가속기 MI300A의 성능 제한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은 기업 실무진에게 ‘왜 국산 대안을 두고 굳이 H20를 구입하느냐’고 묻고 있으며, 보안·신뢰성 리스크를 이유로 들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한 소식통은 ‘규제기관이 H20의 데이터 처리 경로와 펌웨어 업데이트 과정에서 미국 정부의 관여 가능성을 문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엔비디아 측은 ‘H20가 어떠한 형태의 백도어도 포함하지 않는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15% 수익 분담 조건이 부담으로 작용
미국 정부는 2024년 말, H20 등 성능 제한형 모델에 한해 대중국 판매를 재승인하면서 ‘해당 제품 매출의 15%를 로열티 형식으로 워싱턴에 납부’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중국 고객의 구매 의사결정에 추가적인 가격 상승 요인을 부과한다. 한 국내 반도체 전문가는 ‘결국 중국 기업이 국산 GPU로 눈을 돌리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며 ‘엔비디아·AMD 입장에선 시장점유율 방어가 한층 어려워진다’고 평가했다.
국산화 가속의 명분
중국은 2025년까지 차세대 AI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반도체 강국 로드맵’을 추진 중이다. 화웨이의 Ascend 시리즈나 BGI의 AI 가속 카드 등 국산 솔루션이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다. 이번 지침은 ‘정책적 수요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국내 칩메이커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왜 ‘민감 업무’부터 좁혀 들어가나
업계 전문가들은 ‘전면적 금지’보다 ‘국가 안보·데이터 주권이 걸린 핵심 영역’부터 규제하는 방식이 정치·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한다고 분석한다. 다만, 블룸버그는 ‘이번 조치가 사실상 사전 단계이며, 추후 범용 AI 서비스나 클라우드 인프라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AI 가속기란?
GPU(그래픽처리장치) 기반 병렬 연산 하드웨어로, 대규모 행렬 계산이 필요한 딥러닝 모델 학습·추론에 필수적이다. 엔비디아·AMD 외에도 인텔, 구글의 TPU, 중국의 화웨이 Ascend 등이 주요 플레이어다.
시장에 미칠 파장
엔비디아는 2024 회계연도 전체 매출에서 중국 비중이 약 20%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제한이 확대되면, 연간 50억 달러 안팎의 매출이 위험에 노출된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반면, 화웨이·모비스(모티오네틱스)·CAMBRICON 등 중국 토종 AI 칩 업체는 대규모 수요를 흡수해 치킨게임 양상이 예상된다.
한편,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엔비디아(NASDAQ: NVDA)는 규제 뉴스가 나오자 시간외 거래에서 1.8% 하락 마감했다. AMD(NASDAQ: AMD)는 낙폭이 1.2%로 비교적 작았다. 중국 증시에서는 화웨이 공급망 종목이 동반 강세를 보였다.
전문가 시각 및 전망
① 글로벌 밸류체인 재편: 미국·중국 간 기술 블록화가 가속되면서, 중간재·소재·장비 업체의 공급선 다변화가 필수 과제로 떠오른다.
② 가격·성능 균형: 성능 제한형 H20와 국산 GPU의 현격한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는 만큼, 중국 고객들은 비용 대비 효율을 면밀히 따질 것으로 보인다.
③ 규제의 ‘회색지대’: 15% 로열티 조항처럼, 반도체 기술 수출에서 정치적 레버리지로 활용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규제가 지속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본 기사는 인베스팅닷컴·블룸버그 보도를 번역·재가공한 것이며, 추가적인 시장 분석과 기자의 견해가 포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