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력시장 개편이 저장 전력(에너지 스토리지)의 경제성을 끌어올리면서 국제적 수요가 급증하는 시점에 맞물려,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중국 에너지 저장용 배터리 제조업체들에 대규모 수혜를 안기고 있다.
2025년 12월 21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올해 글로벌 에너지 저장용 리튬이온 배터리 셀 출하량이 약 75% 증가 보인다
로이터는 이들 기업이 올해 이미 전기차용 및 저장용 배터리 수출액으로 650억 달러(약 66조원대)를 넘어섰다고 전했다. 이는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뒷받침하고,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전력 공급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부문에서 중국 기업의 지배력이 공고해졌음을 의미한다.
중국 내수 수요는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확대에 의해 견인되고 있으며, 동시에 중국 정부의 개편·보조금 정책이 에너지 저장 전반에 대한 수요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국내 수요 확대와 함께 국제적으로는 데이터센터 건설의 급증, 노후화한 유럽 전력망의 백업 수요, 중동 지역에서의 중국 재생에너지 사업 확장 등이 수출 증가
“이들 선두 에너지 저장 셀 제조사들은 주문이 빽빽하다. 대부분 업체들이 수요를 맞추기 위해 사실상 교대근무를 두 배로 하고 있다”고 정책연구회사 트리비움 차이나(Trivium China)의 애널리스트 코시모 리스(Cosimo Ries)는 말했다.
UBS는 지난달 2026년 전 세계 배터리 기반 에너지 저장 설치 전망치를 25% 상향 조정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배터리 저장 시설에 대한 투자가 올해 16% 증가해 66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대다수는 중국 기업들이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테슬라가 에너지 저장 시스템(Energy Storage System)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해당 시스템 내부를 구성하는 작고 핵심적인 셀(cell)의 생산은 중국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컨설팅업체 인포링크(Infolink)가 1월부터 9월까지 집계한 순위에 따르면, 글로벌 상위 6개 셀 공급사는 CATL(닝더스다이), HiTHIUM, EVE Energy, BYD, CALB, REPT BATTERO 등 모두 중국 업체다. 상위 10개 가운데 일본의 AESC만이 중국 기업이 아니다.
실적 측면에서 보면, EVE는 올해 3분기까지 에너지 저장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5.51% 증가했다. REPT BATTERO는 3분기 모든 배터리 출하량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CATL과 BYD 등 상위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은 3분기까지 에너지 저장 출하량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았으나, 전통적으로 자동차용 배터리가 매출 비중이 크지만 에너지 저장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UBS의 애널리스트 이슈 얀(Yishu Yan)은 미디어 브리핑에서 “태양광과 저장을 결합하는 것이 사실상 미국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유일한 해법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매우 탄탄하지만 전력이 가장 큰 병목이다. 미국의 기저부하 전력(가스, 원자력, 화력)은 향후 5년간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얀은 미국의 투자세액공제(Investment Tax Credit)와 관련해 지정된 ‘외국의 우려대상(entity of concern)’에 해당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제약이 가해질 경우 중국 제조사들이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제약에는 중국이 포함돼 있다.
전력시장 구조 변화가 핵심 동인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에 따르면, 올해 처음 10개월 동안 중국의 배터리(전기차 및 에너지 저장 포함) 수출액은 667억6100만 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배터리는 2022년 이후 중국의 가장 수익성 높은 클린테크 수출 품목으로 태양광(솔라) 패널을 넘었다.
인포링크는 글로벌 에너지 저장용 셀 출하량이 내년에 800기가와트시(GWh)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고, 이는 올해 예측치보다 33%~43% 증가한 것이다. 중국의 비자동차용(=에너지 저장 등) 배터리 수출은 올해 11개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51.4% 증가했고, 전기차(EV)용 배터리 수출 증가율은 40.6%였다(중국전기차산업기술혁신전략얼라이언스 자료).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의 배터리 기반 에너지 저장 설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총량의 약 40%에 달한다. 이는 지방정부의 명령으로 풍력·태양광 사업자에게 저장장치 추가를 의무화한 영향도 있다. 올해 중국의 배터리 저장 용량은 지리적 제약이 큰 전통적 수력양수발전(댐을 이용해 물을 저장했다가 필요 시 발전하는 방식)의 용량을 앞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배터리 저장 설비는 수익성이 없어 가동되지 못한 채 유휴 상태에 머물렀다. 이러한 모델은 6월의 개편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새로 건설되는 프로젝트에 대해 고정요금이 아닌 시장경쟁입찰을 통해 전력을 판매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그 결과 가격이 낮을 때 충전하고 가격이 높을 때 방전해 차익을 얻는 저장 발전소의 운영이 더 수익성이 높아졌다.
개편 이후인 3분기에는 저장발전소의 운전 시간이 증가했다. 중국전기협회 자료에 따르면 저장발전소는 3분기에 하루 평균 3.08시간 가동했으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0.78시간 증가했고 직전 3개월보다 0.23시간 늘어난 수치다.
정책 지원과 지방 보조금 확대
이 같은 변화는 2027년까지 배터리 저장을 거의 두 배로 늘리기 위한 350억 달러 규모의 정부 계획과 late-2024 이후 일부 성(省) 차원의 지원책과 맞물려 있다. 제프리(Jefferies)의 분석에 따르면, 2024년 말 이후 10개 성(省)이 용량료(capacity tariff)를 도입했는데, 용량료는 대기 상태로서의 전력 공급능력을 유지하는 사업자에게 지급되는 특별 지급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지방 보조금이 함께 제공되고 있다.
제프리의 애널리스트 존슨 완(Johnson Wan)은 한 보고서에서 이번 조치를 “10년 넘게 이어진 에너지 저장 관련 정책 전환 중 가장 결단력 있는 변화”이라고 평가했다.
용어 설명
리튬이온 셀(Lithium-ion cell): 배터리 팩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 여러 개의 셀이 모여 하나의 배터리 모듈·팩을 형성한다. 셀 단위의 생산능력은 전체 시스템 경쟁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펌프드 하이드로(수력양수발전): 댐 뒤에 물을 저장해 전력이 필요할 때 물을 흘려 발전하는 방식으로, 지리적 제약이 크지만 과거 대규모 에너지 저장 수단이었다.
용량료(capacity tariff): 발전기나 저장시설의 대기용량을 유지하는 대가로 지급되는 요금으로, 수익성 안정에 기여한다. 지방정부가 도입해 설치업자의 현금흐름 안정과 더 많은 설비 대기능력 확보를 유도한다.
투자세액공제(Investment Tax Credit): 설비 투자 시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제도로, 특정 외국 기업 또는 국가를 ‘우려대상’으로 지정해 지원 제한을 가할 수 있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과 투자 유치에 영향을 준다.
전문적 분석과 향후 전망
첫째, 시장구조 변화는 단순한 수요 증가를 넘어 저장장치의 실질 가동률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입찰 기반 판매로 전력 시장의 가격 신호가 명확해지면 저장사업자는 가격 스프레드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따라서 기존에 ‘대기’ 상태에 있던 저장자원이 상시 운영으로 전환되며 전체 장비의 이용률과 매출성이 동시에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중국의 생산 역량 우위는 단기적으로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 기업들의 점유율을 더욱 확대할 것이다. 셀 생산의 규모의 경제와 비용 우위는 중장기적으로도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다만 미국과 일부 국가의 보조금·세제 정책과 안전보장 관련 규제가 확대되면 특정 프로젝트에서 중국 기업이 배제되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특히 미국의 투자세액공제 관련 제약은 대형 데이터센터 사업자나 재생에너지 연계 프로젝트의 공급선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셋째, 가격 영향 측면에서 보면, 공급 증가(특히 셀 생산의 증대)와 생산 효율 개선은 배터리 셀 단가의 추가 하락 압력을 야기할 공산이 크다. 이는 저장설비의 설치 단가 하락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는 전력계통의 분산형 저장 확대를 촉진할 수 있다. 반면 소재(리튬, 니켈 등) 가격의 급등이나 주요 생산지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단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넷째, 투자자 관점에서 보면, 에너지 저장 관련 업체들의 매출·이익 증가 기대감은 주가에 긍정적으로 반영될 여지가 있다. 다만 특정 기업의 주가수익률은 자동차용 배터리와 에너지 저장 간 사업구성 비율, 해외 규제 리스크, 원자재 조달 안정성 등에 따라 차별화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책적 관점에서 중국 정부의 350억 달러 규모 계획과 지방의 용량료 도입은 단기간 내 설비투자 확대를 촉진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시장 기반의 가격 신호와 제도적 안정성 확보가 핵심이다. 저장설비의 지속적 운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전력시장 전반의 유연성과 거래시스템의 성숙이 병행돼야 한다.
요약
중국의 전력시장 개편과 정부·지방의 재정지원, 글로벌 데이터센터 및 재생에너지 사업의 확장이 맞물리며 중국의 배터리 수출과 에너지 저장 설비 확대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중국 제조업체들이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리는 한편, 저장 설비의 가동률 개선과 비용 하락을 통해 전력 시스템 전반에 구조적 변화를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미국 등 주요국의 규제와 원자재 가격 변동이 위험요인으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