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로이터발 —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이 엔비디아(NASDAQ:NVDA)의 인공지능(AI) 칩 H20에서 잠재적 보안 취약점이 발견될 가능성을 제기하며, 미국 GPU(그래픽처리장치) 거인의 중국 내 판매 전망에 다시금 불확실성이 드리워졌다.
2025년 7월 3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CAC는 해외로 판매되는 첨단 칩에 위치 추적·확인 기능
을 탑재하도록 요구하겠다는 미국 측 제안에 대해 데이터 주권과 개인정보 보호 침해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에 따라 7월 25일(현지시간) 엔비디아 측을 소환해 H20 칩에 백도어(backdoor)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설명하도록 요구했다.
백도어란 외부 침입자가 시스템 내부로 우회 접속할 수 있도록 숨겨둔 보안 구멍을 의미한다. 칩에 백도어가 내장될 경우 사용자 데이터·암호 키·운영 정보가 유출될 위험이 커지므로, 중국 정부는 자국 기관·기업·개인이 사용하는 AI 칩의 안전성을 각별히 점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엔비디아는 로이터의 논평 요청에 즉각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미국 의회 움직임이 촉발한 갈등
올해 5월, 미국 공화당 톰 코튼 상원의원은 수출 규제를 받는 AI 칩에 위치 검증(location-verification) 메커니즘
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은 첨단 반도체가 중국 등 경쟁 국가로 흘러가는 것을 억제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엔비디아는 미·중 갈등의 정중앙에 서 있다. 올해 4월, 미국 정부가 H20 칩의 중국 수출을 중단시켰으나, 7월 초 다시 판매 허가를 내주며 규제가 완화된 지 불과 몇 주 만에 중국발 제동이 걸린 셈이다. H20은 2023년 말 미국 정부의 고성능 AI 칩 수출 규제 이후 중국 전용으로 개발된 제품이다.
“엔비디아 칩은 이제 중국에 ‘필수불가결’하지 않다. 협상 테이블에 얼마든지 올릴 수 있는 카드가 됐다.” — 틸리 장, 개브칼 드래고노믹스 애널리스트
장 애널리스트는 “중국은 과거보다 대체 기술력을 키워 해외 기술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젠슨 황 CEO, 중국 시장 ‘구애’ 행보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이달 초 중국을 방문해 정부 관계자를 만나고 현지 AI 생태계를 치켜세우는 한편, “엔비디아는 중국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CAC가 구체적 조치 방안을 밝히지 않은 채 백도어 여부
에 의구심을 제기하면서, 황 CEO의 ‘러브콜’이 당장의 위기 해소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수요는 견조, 리스크는 지속
기술·소비재 전문 리서치사 86리서치의 찰리 차이 애널리스트는 “베이징의 경고는 미국 측 조치에 대한 상징적 맞대응”이라면서도, “중국이 엔비디아를 완전히 배제하기에는 대체재 부족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엔비디아 칩은 중국 기술 기업뿐 아니라 군 및 국책 AI 연구소, 대학에서도 필수 부품으로 꼽힌다. 로이터는 지난주 엔비디아가 TSMC(대만 반도체 위탁생산기업)에 H20 칩셋 30만 개를 발주했다고 보도했다. TSMC는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으로,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과거 사례로 본 중국의 ‘보안 우려’ 카드
중국은 미국 IT 기업에 대한 보안 우려를 반복적으로 제기해 왔다. 2023년 초에는 마이크론(NASDAQ:MU) 제품이 심각한 보안 위험을 초래한다는 조사 결과를 이유로 핵심 인프라 운영자에게 구매를 금지시켰다.
같은 해, 중국 사이버안전협회는 인텔(NASDAQ:INTC) 제품도 보안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 차원의 공식 조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엔비디아 역시 반독점(안티트러스트) 조사를 받고 있다.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SAMR)은 지난해 말 엔비디아가 2020년 멜라녹스(Mellanox) 인수 당시 조건을 위반했을 개연성을 근거로 조사를 개시했다.
전문가 시각
국제통상 및 기술 안보 분야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이 ‘기술 주권’과 ‘공급망 무기화’라는 두 축에서 전개되는 복합 갈등이라고 분석한다. 첫째, 미국은 첨단 반도체를 전략물자로 규정해 중국의 AI 굴기를 견제하고 있다. 둘째, 중국은 보안 검사·반독점 조사 등 제도적 수단을 통해 미국 기업에 맞불 압박
을 가하며 협상력을 높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멀티소싱, 현지화 전략, 기술 내재화 등이 다국적 기업의 필수 과제가 되고 있다.
또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라 재편되는 과정에서, TSMC·삼성전자·인텔·SMIC 등 주요 파운드리 업체의 설비 투자와 고객 포트폴리오가 중·장기적으로 변동될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