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전쟁의 새로운 갈림길】 미·중 간 반도체 갈등이 또 한 번 예측 불허의 국면을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최근 수개월 간의 로비 끝에 엔비디아(Nvidia)의 차세대 인공지능(AI) 칩 H20를 중국에 판매하도록 허용했지만, 정작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들에게 “사지 말라”고 지시했다.
2025년 8월 13일, 나스닥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H20 칩을 정부 관련 업무에 사용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며, 민간 기업에도 국산 칩 우선 구매를 권고하고 있다. 이 결정은 미·중 무역·기술 협상의 성과를 무력화하고, 세계 최대 AI 시장에서 벌어지는 힘겨루기의 본질을 드러낸다.
1. 베이징의 진짜 목표는 무엇인가
알리바바·텐센트 등 중국 빅테크들은 최첨단 칩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미국산 칩 의존은 국가 안보와 산업 자립을 위협한다”
는 것이 베이징의 판단이다. therefore 정부는 단기 성능 저하를 감수하더라도 자국 생태계를 키우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
첫 번째 우려는 국가안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관리들은 “엔비디아 칩이 위치 추적·원격 종료 기능을 탑재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엔비디아는 이를 강력히 부인하지만, 미 의회가 ‘칩 위치 인증법’을 추진하면서 중국의 경계심은 더욱 커졌다.
두 번째는 기술 의존성이다. 2022년 이후 미국 수출통제 강화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공급망 단절을 경험했다. 베이징은 이를 “정치적 변덕에 휘둘리는 위험”으로 규정하고, ‘장기적 자립’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2. 국내 대안, 과연 경쟁력 있나
중국의 대표적 반도체 챔피언은 화웨이(Huawei)다. 화웨이가 설계한 AI 칩 ‘Ascend’ 시리즈는 빠르게 성능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Nvidia H20가 강점을 지닌 추론(inference) 작업에서는 아직 완전 대체가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그럼에도 베이징은 “자국 시장을 화웨이의 시험대”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연구자들은 이를
“충분히 큰 포로 시장(captive market)을 만들어 화웨이에 실전 데이터를 공급하겠다는 전형적 국가주도 산업정책”
이라고 분석한다.
3. 미국의 계산, 중국의 불복
트럼프 행정부는 “차라리 ‘충분히 약화된’ 미국산 칩에 중국을 묶어두는 편이 낫다”는 논리로 수출규제 일부를 완화했다. 목표는 쿠다(CUDA) 생태계 유지와 화웨이의 부상을 지연시키는 것이었다. CUDA는 엔비디아 GPU 전용 개발 플랫폼으로, 일종의 소프트웨어 락인 효과를 갖는다.
그러나 중국의 “구매 자제” 지침은 미국 전략을 무력화한다. 이는 우월한 외국 기술보다 자립을 우선하는 선택으로, 미국이 수출을 허용해도 중국이 사주지 않는 상황을 보여준다.
4. 용어·맥락 해설
※Inference(추론): 학습이 완료된 AI 모델이 실제 데이터를 입력받아 결과(답변·이미지·음성 등)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속도·전력 효율이 중요해 고성능 GPU가 필요하다.
※CUDA: 엔비디아가 2006년 도입한 병렬컴퓨팅 플랫폼 겸 프로그래밍 모델. CUDA 지원이 끊기면 기존 소프트웨어가 작동하지 않기에, 개발자 락인(lock-in) 효과가 크다.
5. 주요 이해당사자의 고민
알리바바·바이트댄스·메이투안 등 중국 테크기업은 “정부 방침 vs. 시장 경쟁력”이라는 딜레마에 처했다. 정부 허가 범위 내에서 H20을 비민감 분야에 제한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장기적으로 화웨이 생태계로 이동하는 ‘이중 트랙’ 전략을 모색 중이다.
미국에게도 시사점이 크다. 수출 허가만으로는 라이벌의 구매 의사까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는 거래적 접근(transactional approach)의 한계를 드러낸다.
6. 기자의 시각
중국 정부가 이번 결정을 통해 보내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단기 성능 손해보다 장기 기술주권이 중요하다.”
이러한 ‘세대적 베팅’은 비용이 크지만, 과거 일본·한국이 보여준 정부 주도 산업 육성 전략과 유사하다. 다만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고도로 얽혀 있는 2020년대에는 정치·경제적 파급력이 훨씬 광범위하다는 점이 변수다.
참고 문헌·출처
Bloomberg: China Urges Firms to Avoid Nvidia H20 Chips After Trump Resumes Sales
Reuters: Trump opens door to sales of Nvidia’s next-gen AI chips in C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