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 엔비디아 H20 프로세서 사용 자제 권고…정부·국가안보 프로젝트에 ‘금지 수준’ 경고

【상하이·실리콘밸리 발】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 엔비디아(NASDAQ:NVDA)의 H20 인공지능(AI) 프로세서 사용을 자제하라는 공문을 배포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정부·국가안보 관련 사업에는 H20을 절대 사용하지 말라는 강도 높은 지침이 포함돼 있어 반도체·AI 업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2025년 8월 12일, 블룸버그 통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국영·민간기업을 가리지 않고 일제히 ‘H20 칩 사용 억제’ 통지를 발송했다. 통지는 “H20는 차세대 AI 솔루션으로 분류되지만, 정부 또는 안보 관련 프로젝트에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으며, “위반 시 엄중한 행정 제재” 문구까지 담겼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통지는 지방 성(省) 과학기술국에서부터 중앙부처 산하 연구기관까지 폭넓게 배포됐다. 이는 미국의 대(對)중국 첨단 기술 수출 규제 이후 중국이 독자적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가속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로이터 통신은 아직 블룸버그 보도를 독자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전하면서, 엔비디아 측 역시 미국 현지 업무시간 외에는 “즉각적인 논평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앞서 엔비디아는 2025년 7월 “H20 제품에는 원격 제어(backdoor)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식 해명한 바 있다. 이는 중국 당국이 ‘보안 위험’을 이유로 H20에 의문을 제기한 데 따른 대응이었다.

“엔비디아 모든 제품은 최고 수준의 보안 검증을 거친다. 어떠한 형태의 비인가 원격 접속 기능도 제공하지 않는다.” — 엔비디아 7월 성명 가운데

GPU(그래픽처리장치)는 본래 그래픽 연산을 위해 설계됐지만, 병렬 연산 능력이 뛰어나 최근 AI·딥러닝 학습용 프로세서로 각광을 받고 있다. H20 역시 GPU 구조를 AI 특화로 최적화한 제품으로, 중국 고성능 컴퓨팅 시장에서 높은 관심을 받아 왔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지난 8월 11일(현지시간) 차세대 고성능 GPU의 ‘축소형(scaled-down) 버전’이라면 중국 판매를 허용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는 워싱턴 내부에서 제기되는 “중국이 미국 AI 역량을 군사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와 충돌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배경·의미 분석

1) 왜 H20인가?
H20는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 규제에 대응해 스펙을 일부 제한한 모델로, 여전히 중국 내 AI 학습·추론 서비스에서 ‘가성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번 조치는 ‘차선책’으로 여겨지던 H20 라인업마저 잠재적 보안 위협으로 분류했음을 시사한다.

2) 국가안보 조항
통지는 단순 권고가 아닌 ‘사실상 금지’로 해석된다. 중국은 국가안보법·사이버보안법을 근거로 외산 장비 사용을 제한해 왔으며, 이번 H20 통제는 그 연장선에 있다.

3)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파급
엔비디아 매출 구조상 중국 비중(2024 회계연도 기준 약 21%추정치)이 작지 않다. H20 제약이 지속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엔비디아 실적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


용어 해설

백도어(backdoor)는 시스템에 무단 접근할 수 있는 숨겨진 통로를 뜻한다. 하드웨어 또는 소프트웨어 단계에서 삽입될 수 있으며, 발견 시 심각한 보안 위협이 된다.

스케일드다운(scaled-down) 버전은 원제품 대비 성능·사양을 일부 낮춰 규제 요건을 피하기 위해 제작된 모델을 의미한다.

국가안보 프로젝트는 군사, 정보, 에너지 안보 등 핵심 인프라를 포함한 모든 정부 주도의 전략 사업을 포괄한다.


전문가 시각(사견 아님)

다수의 업계 애널리스트는 “중국 정부가 실제로 ‘엔비디아 완전 퇴출’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지 여부가 향후 반도체·AI 생태계 지형을 결정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단기적으로는 화웨이, 로이반 등 중국 자체 AI 칩 메이커에게 반사 이익이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중국 내 기업들이 당장 대체재를 전면 도입하기에는 성능·생태계 측면에서 불확실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따라서 “중국산 칩으로의 급격한 전환”은 쉽지 않다는 관측도 병존한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미국의 기술 우위 확보 전략과 중국의 기술 자립 전략이 정면 충돌하는 ‘첨단 기술 블록화’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