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발 ― 중국 국무원(국가 최고 행정기관)이 남중국해 분쟁 수역인 스카버러 섬(중국명 황옌다오)을 국립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승인했다고 10일 밝혔다.
2025년 9월 10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해당 조치를 통해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해양권 주장을 제도적‧환경적 수단으로 강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스카버러 섬은 필리핀에서는 파나탁(파나타그) 암초로 불리며, 3조 달러 규모 선박 물동량이 지나는 전략 요충지다.
중국은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 주장은 브루나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베트남의 배타적경제수역(EEZ)과 크게 겹친다. 영유권, 어업권, 해저 자원권을 둘러싼 갈등이 수년간 지속돼 왔으며, 2016년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는 중국의 광범위한 역사적 권원 주장을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중국은 이 판결의 구속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중국 국무원: “생태계 안정성 유지가 핵심”
국무원은 이번 자연보호구역 지정을 통해
“스카버러 환초의 자연 생태계 다양성·안정성·지속가능성을 보전하기 위한 중요한 보증책”
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경계와 구역 설정은 향후 국가임초초원국(국가임업·초원국, National Forestry and Grassland Administration)이 별도로 고시할 예정이다.
중국은 2012년 스카버러 섬을 실효 지배한 이후, 어선 추방·경비정 배치·레이더 설치 등으로 필리핀과 갈등을 되풀이해 왔다. 지난달에는 두 나라 선박 간 첫 알려진 충돌 사고가 보고되면서 긴장이 재점화됐다.
분쟁의 법적‧경제적 맥락
남중국해는 연간 3조 달러 이상의 선박 화물이 통과하며, 풍부한 어족 자원과 해저 석유·가스 잠재량으로도 주목받는다. 중국은 “구단선(九段線)”이라는 역사적 지도에 기반해 광범위한 관할권을 주장하지만, 이 선 자체가 국제법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상설중재재판소(PCA)는 2016년 판결에서 “중국의 역사적 권리 주장은 유엔해양법협약(UNCLOS)과 양립 불가”하다고 봤다. 해당 판결은 구속력(statute) 자체는 국제적으로 유효하나, 집행 수단이 없어 실효성이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필리핀 반응 및 국제사회 시각
베이징 주재 필리핀 대사관은 로이터의 이메일 질의에 아직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필리핀이 유엔·아세안(ASEAN) 외교전을 강화하며 국제 여론전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미국·일본·호주 등은 “항행의 자유(FONOPs)” 작전을 통해 남중국해에서 군함을 순항시켜 왔으며, 자연보호구역 지정이 중국 해경‧해상민병대의 활동 근거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중국은 “해양 환경 보호 차원”이라는 점을 부각하며 주권 문제와 결부하지 말라는 입장이다.
개념 설명: ‘자연보호구역’ 지정이 의미하는 바
중국의 ‘국가급 자연보호구역(国家级自然保护区)’은 우리나라의 국립공원과 유사하나, 군사‧치안 목적과 해양 권익 수호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지정 시 환경영향평가, 출입 규제, 어획 제한이 강화되며, 이를 빌미로 타국 어선을 단속할 법적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 시각 및 전망
법·지정학 전문가들은 “보호구역 지정은 환경보전 자체보다 ‘사실상의 행정 관할권’을 제도화하려는 행보다”라고 분석한다. 중국은 향후 순찰·과학 조사·관광 제한 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섬을 관리할 수 있고, 이는 ‘실효적 지배’의 근거 자료로 국제사회에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필리핀·베트남 등은 환경보호 논리가 영유권 분쟁을 은폐하는 ‘녹색 외교’에 불과하다고 보고, 다자 협상 프레임 내에서 대응책을 모색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ASEAN 차원의 ‘남중국해 행동규범(COC)’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와 같은 결정은 향후 어업 충돌·자원 탐사·군사적 긴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국제해사법과 지역 안보 구조에 파급효과를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