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의 해외 상장 지형도가 급변하고 있다. 미·중 간 긴장 고조와 미국 규제 강화가 겹치면서, 중국 기업들이 뉴욕 대신 홍콩 증권거래소로 발길을 돌리는 추세가 뚜렷하다.
2025년 10월 15일,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공개(IPO) 실적은 거래 금액 기준으로 전년 대비 4% 감소한 8억7,570만 달러에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홍콩 IPO는 164% 급증하며 184억 달러를 조달해 대조를 이뤘다.
시장조사회사 딜로직(Dealogic) 자료에 따르면, 2024년(기사 기준 연도) 현재 미국에서 이뤄진 중국계 상장은 23건으로 2021년 같은 기간 39건에 비해 크게 줄었다. 당시 조달액은 130억 달러에 달해 사상 최대 기록이 유력했으나, 디디추싱(Didi Global) 사태 이후 중국 당국이 해외 상장 감독을 대폭 강화하면서 흐름이 급제동이 걸렸다.
“디디의 불운한 뉴욕 상장 이후 중국 기업의 미국행은 사실상 멈춰 섰다”1 — 페리스 리(머저마켓 아태 ECM 총괄)
리 총괄은 중국 정부가 전략 산업으로 규정한 분야의 경우 미국 상장 승인 가능성이 갈수록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중국 기업들은 규제 친화적이고 지리적·문화적으로도 가까운 홍콩으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홍콩, 2025년 ‘세계 최대 상장 허브’ 눈앞
올 들어 홍콩 증시는 CATL(宁德时代)의 53억 달러, Zijin Mining의 32억 달러 등 굵직한 딜이 연이어 성사되며 기세를 올렸다. 회계법인 PwC는 올해 홍콩 IPO 건수가 최대 100건, 조달액은 255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맥쿼리 증권의 유진 샤오 중국 주식 전략 총괄은 “중국 정부의 2024년 9월 자본시장 부양책, AI·반도체·생명공학 등 핵심 기술 분야의 호조, 그리고 딥시크(DeepSeek)와 같은 유망 스타트업의 부상이 홍콩 시장의 투자 매력을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홍콩 당국은 2025년 5월 ‘테크 엔터프라이즈 패스트 채널’을 신설해 첨단기술·바이오 기업의 신속 심사를 지원하고 있다. 이는 중국 본토에 이미 상장된 기업의 홍콩 ‘이중 상장’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한 장치다.
미국 IPO 문턱 높아진 배경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24년 6월 중국을 겨냥한 추가 공시 의무 강화를 추진했고, 나스닥도 9월 소형 중국 기업에 최소 공모 규모 2,500만 달러 요건을 제시했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미국 의회의 상장폐지(delist) 압박도 거세다.
그 결과, 2024년 중국 기업의 뉴욕 상장 평균 조달액은 5,000만 달러로 2021년(3억 달러) 대비 급감했다. 미·중 갈등 장기화 속에서 역(逆)상장·스팩(SPAC) 합병을 통한 우회 상장 수요가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안전지대’ 찾는 기존 미국 상장사들
이미 뉴욕·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중국 기업도 홍콩 이중 상장을 추진 중이다. 라이다(Lidar) 센서기업 허사이 그룹(Hesai)은 펜타곤 블랙리스트 등재에도 불구하고 9월 홍콩에서 5억3,500만 달러를 조달했다.
호텔 체인 아투어(Atour), 자율주행 스타트업 포니AI(Pony AI) 역시 2025년 내 홍콩 상장을 검토 중이며, 전자상거래업체 PDD 홀딩스는 감사인을 홍콩 법인으로 변경해 두 번째 상장을 준비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배경 용어 해설
- SPAC(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 ‘백지 수표 기업’이라고도 불리며, 비상장 기업과 합병해 우회 상장을 돕는 특수목적 법인이다.
- 리버스 테이크오버(Reverse Takeover): 비상장사가 이미 상장된 회사를 인수·합병해 간접적으로 상장 지위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 Dual Listing: 한 기업이 두 개 이상의 거래소에 동시에 상장돼 주식을 거래하는 형태로, 투자자 저변 확대와 자금 조달 다변화를 도모한다.
전문가들은 향후 홍콩 증시가 ‘중국+글로벌 자본’의 교차점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높게 본다. 다만, 달러 자금 유동성 및 글로벌 금리 방향성, 그리고 미·중 관계의 추가 변동성이 변수로 꼽힌다.
“4분기와 2026년 상반기는 역대급 물량이 쏟아질 것”2 — 페이하오 황(J.P.모건 아태 ECM 총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