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엔비디아(Nvidia)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Jensen Huang)이 23일 대만 타이베이에 도착해 TSMC(타이완반도체제조사) 경영진과 만났다. 그는 미·중 간 인공지능(AI) 첨단 칩 규제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핵심 파운드리(위탁 생산) 파트너를 직접 찾아 협력 의지를 재확인했다.
2025년 8월 22일, 인베스팅닷컴(Investing.com)의 보도에 따르면, 황 CEO는 이날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전용기를 타고 도착해 “이번 방문의 주목적은 TSMC 방문”이라며 “저녁 식사를 겸한 단시간 면담 후 곧바로 출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과 몇 시간 머무르는 ‘번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파운드리 파트너와의 연대를 강조했다.
美 정부와 ‘B30A’ 승인 논의 중
황 CEO는
“우리는 H20 칩의 정식 후속 모델을 중국 시장에 공급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대화 중이나, 최종 결정권은 정부에 있다”
고 밝혔다. 기업 내부 프로젝트명 ‘B30A’로 알려진 이 칩은 엔비디아의 최신 ‘블랙웰(Blackwell)’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H20보다 높은 성능을 내도록 설계됐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주 초 “B30A가 H20의 규제 한계치보다 성능이 높지만, 미국 상무부가 허가할 ‘중국 수출 전용 스펙’으로 조정될 수 있다”고 전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번 달 초 “H20를 넘어선 더 첨단 엔비디아 칩의 중국 판매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고 언급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최종 승인 여부는 상무부의 기술 수출 통제 규정에 달려 있어, 엔비디아가 중국 내 AI 클라우드·데이터센터 수요를 잡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中 당국의 ‘보안 리스크’ 문제 제기
엔비디아는 중국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최근 중국 관영 매체는 “엔비디아 칩이 정보 보안에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당국은 H20 구매를 검토 중인 현지 ICT 기업들을 소집해 잠재적 위험성을 점검했다. 황 CEO는 “H20 공급은 국가안보 문제가 아니다”라며 “중국에 H20을 출하할 수 있다는 점을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엔비디아 대변인은 “H20은 군사용이나 정부 기간망용 제품이 아니다”라고 재차 설명하며, “중국 정부가 미국산 칩을 정부 인프라에 쓰지 않는 것은 미국 정부가 중국산 칩을 쓰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상업 목적의 합법적 수요는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덧붙였다.
생산 라인 ‘스톱’ 보도…엔비디아 “공급망 탄력적 관리”
IT 전문 매체 디 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은 22일 “엔비디아가 아리조나주 애리조나에 있는 앰코테크놀로지(Amkor Technology)에 H20 패키징 생산 중단을 지시했고, 삼성전자에도 이를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앰코는 첨단 패키징(advanced packaging) 공정을 담당하며, 삼성전자는 H20용 고대역폭 메모리(HBM) 칩을 공급한다. 일각에서는 “중국 당국의 압박과 미국 정부의 규제 불확실성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두 회사는 로이터의 논평 요청에 즉각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엔비디아 측은 “우리는 시장 상황에 따라 공급망을 탄력적으로 조정한다”면서 “양국 정부도 인정하듯 H20은 군사 장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회사는 칩 후공정(패키징)을 다변화해 특정 지역 규제 위험을 최소화하려 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행정부, 칩 매출 15% ‘로열티’ 수용
이달 초 트럼프 행정부는 엔비디아·AMD와 협상을 통해 중국 판매분 일부 고성능 칩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귀속시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는 ‘안보 리스크’를 수익 배분 방식으로 완화하려는 시도로, 업계에서는 “칩업체가 규제 대상이 되는 대신 수수료(royalty)를 납부하며 일정 자유를 얻은 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용어 설명 및 배경
- 파운드리(Foundry): 설계된 반도체 칩을 위탁받아 생산만 전문으로 수행하는 기업·라인을 말한다. TSMC,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등이 대표적이다.
- 첨단 패키징: 칩·메모리·인터포저(interposer) 등을 입체적으로 적층해 성능과 전력 효율을 극대화하는 후공정 기술이다.
- HBM(High Bandwidth Memory): AI·고성능 컴퓨팅용 그래픽연산에서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이기 위해 개발된 3D 적층 메모리 규격이다.
- 블랙웰 아키텍처: 2024년 공개된 엔비디아 차세대 GPU 설계로, AI 추론·훈련 효율을 대폭 개선했다.
전망 및 기자 해설
현재 중국 AI 반도체 시장은 자체 GPU 생태계를 키우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바이두, 알리바바 등 빅테크가 자체 AI 칩을 개발 중이지만, 소프트웨어 생태계·최적화 측면에서 엔비디아 CUDA 플랫폼의 우위는 여전히 굳건하다. 만약 미국 정부가 B30A 수출을 승인하되 성능 상한을 추가로 조정한다면, 엔비디아는 중국 수요를 일정 부분 유지하면서도 규제 준수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반면 승인 지연이 장기화될 경우, 엔비디아는 중국 매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동남아·중동 등 신규 AI 데이터센터 투자처를 적극 발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동시에 TSMC 역시 미국 애리조나 공장 가동 시점, 일본 구마모토 2공장 투자 등 글로벌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고 있다. 파운드리 업계 1위의 탄탄한 고객사 기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이번 황 CEO의 ‘초단기’ 방문은 공급망 결속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증권가 전문가들은 “미·중 기술 갈등이 단기에 해소되기는 어렵지만, 양국 모두 자국 기업 혁신과 글로벌 가치사슬(GVC) 안정을 위한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향후 몇 분기 동안 엔비디아의 중국 매출 가이던스, B30A 성능·가격 정책, 그리고 미국 상무부의 수출 통제 세부안이 투자 판단의 핵심 변수로 부상할 전망이다.
▣ 결론
이번 젠슨 황 CEO의 타이베이행은 파운드리 파트너십과 규제 리스크 완화를 동시에 겨냥한 ‘다목적 출격’으로 볼 수 있다. TSMC와의 긴밀한 협력은 엔비디아가 AI 패권 경쟁에서 앞서 나가는 필수 기반이며, B30A 승인 여부는 중국 시장 전략의 최대 관건이다. 미·중 정부, 고객사,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엔비디아는 기술적 혁신과 외교적 줄타기를 병행해야 하는 ‘뉴 노멀’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