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실리콘밸리 공동] 세계 최대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Nvidia)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Jensen Huang)이 자사의 차세대 AI 그래픽처리장치(GPU) ‘블랙웰(Blackwell)’이 미국 애리조나주 공장에서 본격 양산 단계에 들어갔다고 공식 발표했다.
2025년 10월 28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황 CEO는 이날 워싱턴 DC에서 열린 ‘GTC 2025’ 기조연설에서 “블랙웰 GPU가 완전 가동을 시작했으며, 이는 엔비디아 역사상 가장 빠른 생산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엔비디아의 최고사양 AI용 GPU는 그동안 대만에서만 생산됐으나, 이번 발표로 미국 본토에서 최초로 대규모 생산 체제가 구축됐다. 특히 애리조나 피닉스 공장은 TSMC와의 합작으로 조성된 최첨단 5나노 공정 라인이며, 이곳에서 생산된 ‘웨이퍼(wafer)’반도체 원판가 미국 내 조립·테스트 과정을 거쳐 완제품 서버로 출하된다.
■ 트럼프 전 대통령의 ‘리쇼어링’ 압박과 국가안보 논리
황 CEO는 “9개월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첫 번째로 요구한 것이 바로 ‘제조업의 귀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
‘국가안보를 위해서, 그리고 고급 일자리와 제조 생태계를 미국에 되찾기 위해 생산을 가져오라’
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결정적이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달 초 엔비디아와 TSMC는 블랙웰 웨이퍼가 피닉스 공장에서 첫 출하됐다고 공동 발표했다. 웨이퍼는 칩을 새기는 ‘원재료 판’으로, 최고 난도의 청정·정밀 기술이 요구된다.
엔비디아는 자체 제작 영상에서 “블랙웰 기반 시스템까지 미국에서 조립하겠다”고 밝혀, 칩·기판·서버 완제품까지 미국 공급망을 선언했다. 이는 미 의회와 규제 당국을 겨냥한 ‘국가전략 자산’ 프레임으로 해석된다.
■ 트럼프 방한 중, 황 CEO와 29일 면담 예정
CNBC 크리스티나 파르치네벨로스 기자에 따르면, GTC 개최지를 워싱턴으로 옮긴 이유 또한 “트럼프가 참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트럼프는 현재 아시아 순방 중이어서 행사에는 불참했으나, 29일 워싱턴에서 황 CEO와 별도 회동한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황 CEO는 “지난 4분기 동안 6백만 개의 블랙웰 GPU를 출하했으며, 블랙웰과 내년 출시 예정인 ‘루빈(Rubin)’ 제품을 합치면 매출이 5천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 3조 달러 통신시장 정조준… 핀란드 노키아(Nokia)와 10억 달러 지분 제휴
황 CEO는 통신 장비 업체 노키아와 손잡고 5G·6G 기지국용 AI 칩을 공동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엔비디아는 노키아 지분 10억 달러를 인수하며, “미국 기술이 기반이 된 무선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노키아 CEO 저스틴 호타드에게 “미국이 통신 기술 주도권을 되찾는 데 기여해 줘서 감사하다”고 말했으며, 이는 화웨이 의존을 우려해온 서방 정책입안자들에게 직접적인 호소로 읽힌다.
노키아는 향후 기지국에 ‘엔비디아 ARC’라는 신제품을 탑재한다. 이 모듈은 그레이스(Grace) CPU, 블랙웰 GPU, 멜라녹스 기반 네트워킹 칩을 통합한 것으로, 차세대 6G 네트워크를 통해 로봇 운용·고해상도 기상 예보 등 ‘AI 실시간 서비스’를 목표로 한다.
■ 美 수출규제와 15% 로열티… ‘중국 시장 0%’의 현실
엔비디아는 미국 정부의 대중(對中) 반도체 규제로 이미 수십억 달러 매출 손실을 입었다. 지난 4월, 규제 준수형 ‘H20’ 칩마저 추가 라이선스가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았으며, 7월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매출의 15%를 납부해야 허가를 내주겠다고 결정했다.
황 CEO는 최근 금융 컨퍼런스에서 “현재 중국 시장 점유율이 0%”라고 말했으나, 정부 허가를 받은 H20 외에 블랙웰 기반의 중국 전용 칩은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 양자컴퓨팅 연동 기술 ‘NVQLink’ 및 에너지부 슈퍼컴퓨터 프로젝트
이날 엔비디아는 ‘NVQLink’라는 새로운 인터커넥트를 공개, 양자처리장치(QPU)와 GPU를 실시간으로 연결해 에러 보정·워크로드 오케스트레이션을 가능하게 한다고 밝혔다. 17개 스타트업이 호환 하드웨어를 개발하며, 미 에너지부(DoE)와 7대 슈퍼컴퓨터 구축에 합의했다.
양자컴퓨팅은 적군이 암호를 해독하거나 군 통신을 감청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미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육성 중인 분야다. 엔비디아는 “
AI 슈퍼컴퓨터와 양자 시스템이 결합해 새로운 응용 프로그램을 창출할 것
”이라고 설명했다.
■ 용어 해설 및 배경
GPU는 Graphics Processing Unit의 약자로, 원래 그래픽 연산을 담당했으나 현재는 대규모 행렬 계산 능력을 활용해 AI 학습·추론의 ‘엔진’이 됐다. 웨이퍼는 직경 30cm 안팎의 실리콘 원판으로, 이 위에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새겨져 개별 칩으로 절단된다. 기지국(base station)은 이동통신 전파를 송수신하는 장비로, 5G·6G 시대에는 연산 능력이 필요한 ‘작은 데이터센터’로 진화 중이다. 양자컴퓨팅은 0과 1을 동시에 표현하는 큐비트(qubit)를 활용해 기존 슈퍼컴퓨터로는 불가능한 복잡한 연산을 처리하는 기술이다.
■ 기자의 시각
이번 엔비디아의 애리조나 생산 전환은 ‘리쇼어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의 ‘마지막 퍼즐’로 꼽히던 고성능 AI 칩 제조 능력을 확보했다는 상징성 때문이다. 동시에 노키아와의 제휴, 양자컴퓨팅 연동 등 연쇄 발표는 엔비디아가 단순 칩 회사가 아닌 ‘인공지능 플랫폼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중국 매출 공백과 15% 로열티 부과 등 수익성 변수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으며, 미·중 기술 전쟁의 향배에 따라 엔비디아의 전략 역시 재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