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발 – 지난해 12월 조류 충돌 이후 비상 착륙을 시도하다 추락한 제주항공Jeju Air B737-800 사고 조사에서, 조종사들이 셧다운하지 않은 오른쪽 엔진이 여전히 비행에 필요한 출력(추력)을 제공하고 있었다는 잠정 분석 결과가 공개됐다.
2025년 7월 27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대한민국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ARAIB)가 7월 19일 작성한 5쪽 분량의 내부 업데이트 문건에는 “조류 충돌 직후 좌측 엔진이 19초 만에 멈췄고, 상대적으로 손상이 컸던 우측 엔진은 ‘엔진 서지(surge)’ 및 검은 연기를 뿜으면서도 비행에 충분한 출력을 생성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명시돼 있다.
사고기는 전남 무안공항에 랜딩기어(착륙장치)를 내리지 못한 채 기체 바닥으로 착지하는 ‘벨리 랜딩(belly-landing)’을 감행했고, 활주로를 넘어 제방(활주로 끝단 방호 둑)을 들이받으면서 화염에 휩싸였다. 탑승자 181명 중 단 2명만이 생존해 대한민국 국내 사고 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엔진 손상 정도와 셧다운 과정
문건에 따르면, 좌측 CFM56-7B 엔진은 우측보다 손상이 경미했지만 조류와의 충돌 19초 뒤 전원이 차단됐다. 반면 우측 엔진은 서지 현상(급격한 압축 불안정으로 인한 출력 요동) 및 화염·검은 연기를 동반했으나, 조사관들은 «비행 지속이 가능한 추력»을 산출했다고 밝혔다.
“서지는 압축기를 지나는 공기 흐름이 갑자기 역류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출력 저하·진동·불꽃을 수반하지만 반드시 엔진 정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 항공안전 전문가 해설
조종사들이 왜 상대적으로 상태가 양호했던 좌측 엔진을 일찍 셧다운했는지, 그리고 우측 엔진의 남은 성능이 비행 연장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 설명되지 않았다. 사고조사는 조종실 음성기록(CVR), 비행자료기록(FDR) 및 잔해 분석을 토대로 내년 6월 최종 보고서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거 사례와의 비교, 여론 의문점
이번 사고는 1989년 영국 케그워스 여객기 추락을 연상시킨다. 당시 조종사들은 손상되지 않은 엔진을 잘못 꺼 사고를 키웠는데, 이후 국제항공 규정은 승무원 간 의사소통 개선, 비상 절차 강화 등 대폭 개정됐다. 이번 제주항공 사례도 ‘덜 손상된 엔진 셧다운’ 가능성이 제기되며 비슷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7월 19일 업데이트엔 조종사 행동에 대한 직접적 해석은 없지만, «우측 엔진도 비행 가능한 출력» 언급이 담기면서 ‘조종사 과실’ 프레임이 부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유족·노조 측에서 나온다. 유족들은 “엔진 정보만으론 사고 원인을 단정할 수 없다”며 항공등화·제방 구조물 같은 외부 요인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활주로 말단 구조물 논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활주로 중심선 연장선상에 설치되는 모든 항행 시설물을, 충돌 시 쉽게 파손되는 재질로 제작하도록 권고한다. 그러나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무안공항 등 국내 7개 공항의 일부 구조물이 콘크리트·강철 등 경성 자재로 만들어져 있어 ‘파손 취약 설계’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토부는 해당 구조물 개선 설계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기체가 제방을 들이박았을 때 구조물이 에너지 흡수 역할을 했더라면 사망자 수가 줄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기술적 쟁점: CFM 엔진 검사 결과
엔진 제작사 CFM 인터내셔널GE-Safran 합작 기술진은 5월 실시된 분해 검사에서 «조류 충돌 및 충돌 여파를 제외한 고장·결함 데이터는 없었다»고 보고했다. 이는 기계적 결함보다는 운항·절차·외부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음을 시사한다.
항공안전 컨설턴트 그렉 파이스(Greg Feith) 前 NTSB 조사관은 “이번 문건은 새로운 사실을 일부 담았지만, ‘왼쪽 엔진의 세부 상태’ 및 ‘계통 작동 현황’ 등 핵심 정보가 빠져 여전히 암호문(cryptic)과 같다”고 평했다.
용어 해설 코너
벨리 랜딩(Belly-landing) : 착륙장치를 전개하지 못한 상태로 기체 동체 하부를 직접 지면에 접촉시키는 착륙 방식. 활주로 마찰열과 구조물 충격으로 인해 화재 위험이 높다.
엔진 서지(Engine Surge) : 제트엔진 내부 압축기에서 공기 흐름이 역류·단절돼 출력이 급격히 변동하는 현상. 진동과 화염을 동반하며 심할 경우 엔진 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 시각과 향후 과제
항공안전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사고가 ‘단일 원인’보다는 다층적 요소의 결합으로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ARAIB의 최종 보고서는 엔진 운영 판단, 조종사 피로도, 관제 지시, 공항 인프라, 비상 대응 매뉴얼 등 전 영역을 망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만으로는 «덜 손상된 엔진 셧다운»이 사고의 결정적 원인인지, 혹은 «우측 엔진만으로도 더 오랜 비행이 가능했는지»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이번 중간보고는 엔진 출력 잔존 여부를 처음으로 명확히 언급함으로써 사고 전개 양상에 대한 분석 작업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ARAIB는 내년 6월 최종 보고서를 예고했으나, 유족·노조·전문가 그룹은 «모든 증거의 투명 공개»와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독립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조종사 교육체계, 조류 충돌 대응 매뉴얼, 공항 시설물 설계 기준 등이 대폭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보잉과 GE는 «조사기관 문의에 응답 중»이라며 공식 논평을 자제했고, Safran은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제주항공은 «조사에 성실히 협조 중이며 최종 보고서 발표를 기다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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