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EU·미국 관세 협상 ‘안개’ 속 긴장 고조
2025년 7월 29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지난 27일(현지시간) 합의한 신(新) 무역 휴전에서 제약제품에 대한 관세 조항이 불명확하게 규정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이 즉각적인 명확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합의는 EU산(産) 수입품에 일률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제약 부문에 대해서는 미국과 EU 정상 간 발언이 엇갈려 해석의 혼선을 낳고 있다.
1. 정상 간 엇갈린 발언으로 불확실성 증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자동차와 모든 다른 제품에 대해 ‘일률적(straight across)’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히는 동시에, 제약은 ‘이번 합의와 무관하다’고 언급했다. 반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관세를 “포괄적(all-inclusive)”이라고 규정하며 “
우리는 15% 관세를 제약에 포함시켰다. 다만 미국이 추후 전 세계 제약제품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것은 ‘다른 문서(another sheet of paper)’에서 다룰 문제”
라고 말했다.
두 정상의 상반된 설명은 글로벌 제약사와 투자자에게 정책 예측 불가능성을 각인시켰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초 “조만간 제약 수입품에 대해 최대 200%의 고율 관세를 발표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어, 업계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2. ‘무역 확장법 232조 조사’와 잠재적 200% 관세 위협
미 행정부는 현재 무역 확장법(Trade Expansion Act) 232조에 근거해 제약 수입이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 중이다. ※ 무역 확장법 232조는 특정 수입품이 ‘국가 안보’를 저해한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이 고율 관세나 수입 제한을 단독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이다. 조사 결과는 8월 중 발표될 예정이다.
시장조사기관 월프리서치(Wolfe Research)는 “EU로부터의 제약제품 수입 규모를 고려할 때, 15%라도 충격은 상당하다”고 분석했다. 2024년 기준, 유럽이 미국에 수출한 의약품·의료제품 규모는 약 1,200억 달러(약 158조 원)에 달한다.
3. 비용 추산: 15% vs 200%
로이터(Reuters)가 인용한 애널리스트 전망에 따르면, 15% 관세만으로도 연간 130억~190억 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200%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그 부담은 수백억 달러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Eurasia Group은 “
15% 상한(ceiling)을 뛰어넘는 ‘깜짝 인상’이 현실화되면, 이번에 어렵게 이뤄진 미·EU 무역 휴전 자체가 무산될 위험이 크다
”고 경고했다. 라보은행(Rabobank) 역시 “관세 분쟁이 전체 합의를 깨뜨리지 않더라도, 유럽 경제의 타격은 치명적”이라고 평가했다.
4. 현장 목소리: “면제 요구 계속”
기업들은 현재 관세 면제(exemption)를 위해 미국·EU·중국 정부에 동시에 로비를 벌이고 있다. 필립스(Philips) 최고경영자 로이 야콥스(Roy Jakobs)는 29일 CNBC ‘스쿼크박스 유럽’ 인터뷰에서 “
우리는 미국·EU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관세 예외를 요청해 왔다. 하지만 이번 합의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와 대화를 이어가겠다
”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느린 행정 절차와 복잡한 관세 분류 체계(HS Code) 때문에, 실무 단계에서 면제 신청이 최대 6개월 이상 지연될 가능성을 지적한다.
5. 한국 기업 및 투자자 영향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FDA 허가 후 CDMO(위탁개발·생산) 형태로 유럽 원료를 사용해 생산해온 업체들은, 추가 관세 비용이 발생할 경우 마진 축소를 피하기 어렵다. 국내 증시에서 관련 종목 변동성이 커질 수 있어, 기관투자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또한 환율 측면에서 달러 강세가 장기화될 경우, 원화 환산 구매 비용이 급등해 수입 원가가 이중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6. 전망 및 정책 제언
① 단기 – 8월 발표될 232조 조사 결과가 ‘트리거(trigger)’가 될 전망이다. 업계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계산을 감안해 최소 15% 적용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
② 중장기 –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하다. EU 기업이 멕시코·캐나다 등 미·중·EU FTA 허브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우회 수출’ 전략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
관세는 결국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귀결될 것
”이라며, 각국 정부가 비관세 장벽 완화와 공급망 다변화에 공동으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7. 용어 설명
※ Section 232 Investigation – 미국 무역 확장법 232조에 따른 국가 안보 위협 평가 절차다. 조사 결과에 따라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관세·수입 제한 조치를 결정할 수 있어, ‘관세 폭탄’의 법적 기반으로 악명 높다.
※ Straight Across Tariff – 제품 종류를 가리지 않고 동일 세율을 적용하는 ‘일괄 관세’를 의미한다.
※ CDMO – Contract Development & Manufacturing Organization. 의약품 개발·제조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업체를 말한다.
이미지: Getty Images 자료사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