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ICT 업계의 거물급 인사가 양자(量子) 컴퓨팅 신생 기업에 합류했다. 노키아를 이끌었던 페카 룬드마르크(Pekka Lundmark) 전 최고경영자(CEO)가 2024년 설립된 핀란드 스타트업 QMill의 이사회 멤버로 영입된 것이다.
2025년 8월 20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룬드마르크 전 CEO는 QMill이 산업용 양자 알고리즘 상용화를 본격화하는 바로 그 ‘결정적 시점’에 전략적 조언자로 합류했다. 그는 “1회
회사가 보유한 양자 잠재력을 구체적인 실질 혜택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역량 구축· 파트너십 확대·선도 고객과의 협력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며 “이 중요한 시기에 이사회에 합류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QMill은 핀란드 국영 연구기관 VTT(국립기술연구센터)의 수장을 지낸 안티 바사라(Antti Vasara)를 신임 이사회 의장으로 임명했다. VTT는 노키아·키마리아나 같은 국내 기술 기업의 연구 파트너로 유명하다.
QMill, 어떤 기업인가
QMill은 2024년 핀란드 에스포(Espoo)에서 설립됐으며, 양자 알고리즘(quantum algorithm) 설계와 최적화를 전담한다. 양자 알고리즘은 큐비트(qubit)라는 양자 단위를 활용해 기존 컴퓨터로는 수십 년이 걸릴 계산을 단시간에 처리하도록 고안된 절차다. 특히 물류·제조·화학 시뮬레이션 등 산업 응용에 초점을 맞춘 것이 QMill의 차별점으로 꼽힌다.
핀란드 제2의 도시인 에스포는 노키아·알토대학교(Aalto University)·VTT 연구소가 밀집한 ‘노키아 밸리’로 불리며, 북유럽 ICT·AI 기술 생태계의 핵심 허브다. QMill은 이 지역에 자리잡아 인재·자본·공공 연구 인프라를 손쉽게 확보하고 있다.
자금 조달 구조와 투자자 구도
이번 이사회 개편에는 엔젤투자자로 피터 사를린(Peter Sarlin)이 이름을 올려 더욱 눈길을 끌었다. 사를린은 인공지능 플랫폼 Silo AI 공동창업자로, 2020년 미국 반도체 기업 AMD에 인수되며 북유럽 AI 스타트업 가운데 가장 큰 엑시트 사례를 기록했다. 그가 보유한 기술 네트워크는 QMill의 기술·시장 확장 전략에 상당한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 시각과 산업적 의미
“경영 경험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겸비한 룬드마르크 전 CEO가 가진 통신·네트워크 인프라 전문성은, 양자 컴퓨팅을 ‘클라우드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려는 QMill의 장기 전략에서 핵심 퍼즐이 될 것이다.” — 헬싱키 소재 벤처캐피탈 파트너, 익명 인터뷰
노키아 출신 최고경영자 대부분은 통신장비·5G·사이버보안 같은 연관 산업으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룬드마르크는 ‘양자 알고리즘’이라는 최첨단 영역으로 방향타를 돌렸다. 이는 5G·6G 초저지연 네트워크와 양자통신(Quantum Communication) 간 결합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전략적 행보로 해석된다.
또한, 국영 연구기관을 이끌었던 바사라 의장과 민간 통신기업을 이끌었던 룬드마르크가 ‘투톱’ 체제로 합류함으로써, 공공-민간-학계 협력 모델을 통한 연구개발(R&D) 가속화가 예상된다.
양자 알고리즘, 왜 중요한가?
양자 알고리즘은 2진법이 아닌 0과 1의 중첩(superposition)을 이용하는 큐비트를 기반으로 한다. 이 덕분에 복잡계 최적화·고급 암호해독·고성능 시뮬레이션에서 지수적으로 높은 성능 우위를 보일 수 있다.
특히 물류·제조 부문에서 ‘라인 밸런싱’ ‘노동력 재배치’ 같은 문제를 해결하면, 생산 효율과 원가 절감 효과가 단기적으로 두 자릿수 퍼센트대에 도달할 것이라는 잠재력이 제기된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와 빅테크 기업은 양자 알고리즘 스타트업을 주목하고 있으며, QMill 또한 해당 트렌드의 수혜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핀란드 기술 생태계에 미칠 파급 효과
핀란드는 ‘노키아 이후’를 대비해 ICT·AI·양자 분야에 집중 투자해 왔다. 룬드마르크·바사라·사를린이라는 세 명의 인사가 한 자리에 모인 사례는 드물며, 이는 핀란드 기술 생태계가 양자 상용화를 국가 전략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업계에서는 이사회 구성이 마무리되면 QMill이 유럽연합(EU)의 Horizon Europe 연구 자금·핀란드 정부의 혁신펀드·글로벌 ICT 기업과의 합작 프로젝트를 동시에 겨냥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다만 QMill 측은 현재 단계에서 “구체적인 투자 유치 일정은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전망과 과제
전문가들은 양자 기술이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에서, QMill이 당장 대량의 매출을 발생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니치(niche) 문제를 선별 해결하는 방식으로 고객사를 확보하고, 시범 프로젝트를 반복해 신뢰성을 쌓는다면 2030년 이전에 본격 상용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도 나온다.
따라서 노키아·VTT·Silo AI라는 배경을 공유하는 세 리더의 시너지가 어느 정도 구현되는지가 QMill의 성패를 가를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