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026회계연도 예산요구, 122조4,500억 엔으로 사상 최대… 3년 연속 기록 갱신 전망

【도쿄】 일본 정부 각 부처가 2026회계연도(2026년 4월~2027년 3월) 예산편성을 위해 제출한 요구액이 총 122조4,500억 엔에 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년 대비 또 한 번 기록을 갈아치우며 3년 연속 ‘사상 최대’라는 불명예를 쓰게 된다는 의미다.

2025년 9월 1일, 로이터 통신이 단독 입수한 예산요구 초안에 따르면, 각 부처가 요구한 금액은 약 8311억3000만 달러(1달러=147.33엔 기준)에 해당한다. 내각부·재무성·후생노동성 등 17개 중앙정부 기관이 제출한 이번 요구안은 세출 구조의 경직성과 인구 고령화가 맞물려 재정 건전성 확보라는 과제를 한층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가장 큰 예산 항목은 후생노동성이 요청한 34조8,000억 엔이다. 이는 고령 인구 증가에 따른 의료·연금·간병 등 사회보장비 증가가 직접적 요인이다. 일본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이미 30%에 육박해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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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재무성이 요청한 국채 이자 및 원금 상환비가 32조4,000억 엔으로 전년보다 늘어 역대 최고를 기록할 전망이다. 일본은행(BOJ)이 물가 상승 압력에 대응해 점진적으로 금리를 인상한 결과 국채금리(수익률)가 오르며 차입비용 부담이 커진 것이 주효했다.


방위·안보 예산도 최대 규모로 상승

방위성은 자위대 현대화, 극초음속 무기 대응 체계 구축, 주변국 해·공군력 확장에 대응하기 위한 8조8,000억 엔의 예산을 요청했다. 이는 전년도 요구액을 뛰어넘는 사상 최대 규모다. 향후 5년 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율을 2%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기시다 전 총리 시절의 중기계획이 계속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방위 예산 증액은 중국, 북한, 러시아 등 주변 안보 환경 악화에 대비한 불가피한 선택”(방위성 관계자)라는 입장과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훼손한다”는 재무성 내 우려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편, 이 같은 대규모 요구와 병행해 야당은 감세안을 요구하고 있다. 소득세·소비세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을 조건으로 예산 통과 협조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집권 자민당(LDP)과 파트너 공명당으로 구성된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소수 연립정부는 의회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야당과의 절충이 불가피하다.


재정규율 vs 정치일정, 시장은 ‘정치 리스크’ 주시

일본의 국가채무는 GDP 대비 약 260% 내외로 주요 선진국 가운데 최악의 수준이다. 이시바 총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재정매파(fiscal hawk)’로 꼽힌다. ※ ‘Fiscal hawk’는 재정 건전성 유지와 균형예산을 중시해 정부지출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정책 입안자를 일컫는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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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7월 참의원(상원) 선거 참패로 당내 입지가 위축됐고, 이에 따라 9월 8일 자민당 임시총무회의에서 지도부 경선 실시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시장 참가자들은 “이시바 총리가 퇴진하거나 약화될 경우 확장적 재정정책이 재현될 수 있다”며 국채수익률 상승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미쓰비시 UFJ 모건스탠리 증권의 오쓰카 다카히로 채권 전략가는 “이시바 총리의 재정긴축 기조가 긍정적으로 평가돼 지지율도 소폭 반등했지만, 정치 일정이 복잡한 만큼 추가 재정확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향후 일정 및 재무성 심사

재무성(MOF)은 이번 예산요구안을 검증해 올해 말까지 2026회계연도 정부안(드래프트)을 확정한 뒤 내년 1월 통상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예산 심의를 통과하려면 야당은 물론 참의원 동의가 필요해 상당한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채시장에서는 이미 10년물 JGB(일본 국채) 금리가 1.0%에 근접하고 있으며, 이는 2013년 이후 최고치다. 금리 상승이 이자비 증가→재정 악화→국채 추가 발행의 악순환을 가속화할지 여부가 관건이다.


전문가 해설: 일본 재정의 구조적 난제

일본 예산의 60% 이상은 ‘의무적 지출’(사회보장·국채비·지방교부세)로 묶여 있어 경기 상황과 무관하게 자동 확대되는 구조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1947~49년생)가 2025년 모두 75세 이상이 되면서 후생노동성 예산압력은 2030년대 중반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세입 측면에서는 성장률 정체로 법인세·소비세가 기대만큼 늘지 않는 ‘수입·지출 미스매치’가 심화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통화당국(BOJ)의 YCC(수익률곡선통제) 정책 완화가 이미 금리 상승을 자극했고, 중기적으로는 미국과의 금리 격차 축소가 엔화약세를 완화해 일본 경제의 가격경쟁력에도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향후 일본 정부가 재정 건전성과 경기 부양, 안보 강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생산성 향상·규제개혁·이민 확대 등 구조개혁 없이는 단순한 세출 삭감이나 증세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번 예산요구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정치적 변수가 적지 않은 만큼, 국채시장 변동성 확대엔화 가치 변동이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