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발 로이터 통신은 이번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 결과가 금융시장에 중대한 정치 변수를 안겼으나, 대부분의 악재는 이미 가격에 반영됐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를 집중 조명했다.
2025년 7월 20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 출구조사 결과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이끄는 자민·공명 연립여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해 두 의회 모두에서 소수 세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 증권·외환시장은 월요일(21일) 해양의 날 공휴일로 휴장인 만큼, 첫 반응은 엔화 시세를 통해 드러날 전망이다.
이미 올 들어 엔/달러 환율은 세금 정책 변화와 재정 적자 확대 예상에 약세 압력을 받아 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 결과가 미·일 관세 협상(8월 1일 시한)을 앞둔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 주목하며, 교착 상태가 장기화될 경우 정책 공백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본다.
지난주 일본국채(JGB) 시장에서는 30년물 금리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엔화는 달러·유로화 대비 수개월 만의 저점까지 하락했다. 싱가포르 동부시간 기준 오전 장에서 JGB 30년물 금리는 연초 대비 80bp(0.80%p) 급등하며 수익률 곡선의 급격한 가팔라짐(10년–30년 스프레드 150bp 이상)을 재확인했다.
“연립여당 패배를 빌미로 단기 매도를 추격할 생각은 없다. 결과의 실질적 파장을 분석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며, 투자자들은 관세 협상이라는 또 다른 거시 리스크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 롱 렌 고(Eastspring Investments 채권 포트폴리오 매니저)
시장 참여자들은 집권 자민·공명 연합이 소수 정부 체제를 고수할지, 혹은 새 연정 파트너를 영입할지 가닥이 잡히기 전까지는 불확실성 프리미엄이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력 협상 대상으로 거론되는 국민민주당(DPP)은 일본은행(BOJ)에 추가 완화 전환을 촉구해 왔다. 투자자들은 자민당이 야당의 감세 요구에 상당 부분 양보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선거 직후 “직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으나, 당내에서는 Abenomics(아베노믹스)를 지지해 온 다카이치 사나에 참의원 의원이 유력 후임주자로 거론된다. 다카이치는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재개를 주장해 온 인물이다.
한편 3대 야당 모두가 소비세(부가가치세) 인하를 주장하며, 극우 성향의 산세이토는 부가가치세 전면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는 향후 국채 발행 확대를 통한 재원 조달 압력으로 직결될 전망이다. 현재 일본의 국가채무는 GDP 대비 약 2.5배로 세계 주요국 중 최대 규모다.
미즈호 증권의 오모리 쇼키 데스크 전략가는 “자민·공명 연정이 소수 정권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일 관세 협상이 진행 중인 현시점에 자민당이 리더십 교체를 강행할 가능성은 낮다고 덧붙였다.
오모리는 또한 “공격적 재정 부양책은 제한적”이라며, 보충 예산이 편성되더라도 최소 가을 국회 이전에는 논의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이시바 총리가 퇴진할 경우 해외 투자자가 일본 주식과 엔화를 투매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바클레이스는 판매세(소비세)를 현행 10%에서 5%포인트 인하할 경우 30년물 국채 금리가 15~20bp 상승할 것으로 추정했다.
엔화는 2025년 상반기에 달러당 140~160엔 범위에서 널뛰기 장세를 보였다. 1월 일본은행의 깜짝 기준금리 인상 이후 한때 강세로 돌아섰으나, 4월 말부터는 정치적 불확실성과 관세 협상 난항, BOJ의 비둘기파(완화 선호) 기조가 맞물리며 횡보세로 전환했다.
투기적 순매수 포지션이 여전히 큰 만큼, 일본이 조기 총선을 실시하거나 재정 확장에 나설 경우 엔화는 급락할 수 있다는 경고도 잇따른다.
반면 닛케이225지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글로벌 관세 발표가 있었던 4월 2일 이후 11% 넘게 상승했다. 이는 해외 수출주 중심의 실적 개선 기대와 엔화 약세에 따른 환차익 효과를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주요 개념·용어 해설
상원(참의원)은 일본 국회(국회의원 2원제)의 상부기관으로, 하원(중의원)보다 임기가 길어 정치적 안정성을 보완한다.
JGB(일본국채)는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으로, 만기·금리 변동에 따라 국채 수익률 곡선이 형성된다. 수익률이 상승한다는 것은 채권 가격이 떨어지고 차입 비용이 증가함을 의미한다.
bp(베이시스포인트)는 금리 변동을 표시하는 단위(1bp=0.01%)로, 80bp 상승은 0.80%p 금리 상승을 뜻한다.
소수 정부(minority government)는 의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정당이 구성한 정부로, 입법 과정에서 연합 파트너나 야당 협조가 필수적이다.
기자 해설 및 전망
이번 선거 결과는 시장이 이미 예상했던 바와 같지만, 향후 정책 모멘텀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스탠스가 긴축에서 재완화로 이동할지 여부가 중장기적으로 엔화와 JGB 시장의 방향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소비세 인하 논의는 재정 건전성 논란을 확산시키며, 국채 발행 확대 → 금리 상승 → 엔화 약세 → 주가 강세라는 전형적 위험 선순환 시나리오를 부추길 수 있다.
또한 8월 1일까지 남은 관세 협상 시한이 임박함에 따라, 일본 정부가 무역 전선에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글로벌 공급망 충격은 물론, 국내 정치 리더십까지 위협받을 소지가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단기 변동성 확대보다 중장기 구조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