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미국 관세와 소비 부진 우려로 2025회계연도 성장률 전망 하향

도쿄=로이터—일본 정부가 미국 관세(관세전쟁)고질적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박을 이유로 2025회계연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종전 1.2%에서 0.7%로 대폭 낮췄다. 이번 조정은 세계 3위 경제 대국의 회복세가 여전히 불안정함을 시사한다.

2025년 8월 7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일본 내각부는 같은 날 열린 경제재정자문회의(일본 정부의 최고 경제 정책 결정기구)에서 수정 전망치를 제시했다. 정부는 “미국의 대(對)일본 수입품 관세가 기업 설비투자를 위축시키고, 견조했던 수출까지 흔들면서 성장 모멘텀이 약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망치는 민간 경제연구소들이 예상한 평균치(0.5%)보다는 높지만, 정부 스스로가 연초에 제시했던 수치에서 무려 0.5%포인트나 낮춘 것이어서 금융·산업계에 충격을 줬다. 특히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두 축—기업 설비투자수출—가 동시에 제동에 걸릴 가능성이 부각됐다.


美 관세·엔화 환율 변동이 변수

정부는

“미국 관세가 지속되면 일본 기업들은 설비 투자에 더욱 보수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국내 고용과 임금 상승 흐름도 약화될 위험이 있다”

고 지적했다. 실제로 도요타, 소니 등 주요 수출기업들은 대미(對美) 수출 비중이 커 관세 충격을 정면으로 맞을 공산이 크다.

또한 엔화 약세가 수출기업 이익을 늘리는 동시에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을 자극한다는 점도 문제다. 물가가 오르면 가계 실질소득이 줄어 민간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민간소비 전망도 하향…임금 상승이 관건

민간소비는 일본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정부는 “인플레이션이 가계 구매력을 잠식하고 있다”며 소비 증가율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경제재정자문회의의 민간위원들은 “임금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을 추월하지 못하면 소비 부진은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은행(BOJ)에 대해 “2% 물가 목표를 지속적·안정적으로 달성할 때까지 통화정책을 신중하게 운용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는 완전한 디플레이션 탈피와 실질 임금 회복 없이는 내수 중심의 자생적 성장세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2026회계연도 이후: 재정 흑자 달성 가능?

정부는 2026회계연도(2026년 4월~2027년 3월)에 기초재정수지(Primary Balance) 흑자를 3.6조 엔(약 2조4,390억 달러)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유지했다. 이는 경제 회복과 세수 증가가 전제된 장밋빛 시나리오다. 그러나 여당 내 재정확대론과 야당의 현금 지급·감세 요구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기초재정수지란 정부 총수입에서 국채 이자·원금 상환 비용(부채 서비스 비용)새 국채 발행액을 제외한 항목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정부가 새로운 빚을 내지 않고도 정책 지출을 충당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지표다.


정치 변동성까지 겹친 악재

정치적으로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2024년 10월 중의원 과반을 상실한 데 이어 2025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연립여당이 참패하면서 여소야대(野小與大) 국면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야당은 물가 부담 경감을 위한 재정 확대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정권 기반이 약화되면 재정지출 확대 가능성이 커져 기초재정수지 흑자 목표는 더 멀어질 수 있다. 또한 정치권의 정책 혼란은 기업 심리를 위축시켜 설비 투자와 고용 창출을 지연시킬 위험도 있다.


전문가 해설: 향후 시나리오와 리스크

필자는 일본 경제의 단기·중기 경로를 A: 점진적 회복B: 장기 정체 두 가지로 구분해 본다.

A 시나리오에서는 2025~2026년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률을 웃돌아 실질임금이 플러스로 전환되고, 미국 관세도 부분 완화된다. 이 경우 올해 성장률은 0.7% 내외, 2026년에는 1% 이상으로 회복 가능하다.

반면, B 시나리오로 미국 관세가 장기화되고 엔화 약세가 심화될 경우, 수입 인플레이션이 확대돼 가계 부담이 가중된다.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에 나서지 못하면 엔화 가치가 추가 하락할 공산도 있다. 이 경우 성장률은 민간 전망치(0.5%)를 하회할 위험이 크다.

또 하나의 변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다. 일본 기업이 해외 생산기지를 동남아 등으로 이전하면, 국내 설비 투자와 고용은 감소하지만 장기적으로 새로운 수출 거점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의 산업 전략과 보조금 정책이 관건이 될 것이다.


용어 설명

기초재정수지(Primary Balance)는 정부의 세입과 세출 중 일반 지출만을 비교해 재정 건전성을 측정하는 지표다. 국채 이자나 원금 상환 등 부채 서비스 비용과 새 국채 발행은 제외한다. 즉, 정부가 빚 없이 살림살이를 꾸릴 수 있는지를 가늠한다.

설비투자(CAPEX)는 기업이 공장ㆍ설비ㆍ기계 등 장기 자산을 취득하는 지출을 의미한다. CAPEX가 증가하면 생산능력이 확대되고 고용이 증가하지만, 경기 침체나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면 기업은 투자에 소극적이 된다.

관세(Tariffs)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일본 기업은 가격 경쟁력을 잃고 수출이 감소할 수 있다.


결론 및 전망

요컨대 일본 정부의 성장률 하향 조정은 대외 여건 악화, 인플레이션, 정치 불안 등 복합적 요인에 기인한다. 단기적으로는 임금-물가 스파이럴을 통제하고 가계 구매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중기적으로는 공급망 다변화와 디지털·녹색전환(GX·DX) 투자로 신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투자자와 정책 결정자 모두 관세 협상, 엔화 환율, 임금 동향, 그리고 정치 일정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성장률 0.7%라는 수치는 아직도 달성 가능한 목표이지만, 리스크 관리 실패 시 0%대 저성장의 늪에 빠질 위험도 상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