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로이터—일본 정부는 미국과 체결한 새로운 양자 무역협정이 미국 통상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고 29일 밝혔다. 그러나 관세 정책이 자국 경제에 하방 압력을 가할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어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신중론도 함께 제기됐다.
2025년 7월 29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전주(지난주) 미국과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일본 수출 경제의 핵심축이기 때문에 이번 조정 폭은 업계 전반에 상당한 안도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본 내각부는 같은 날 공개한 7월 월례 경제보고에서 “일본 경제는 완만한 회복세를 지속하고 있다”는 기존 총평을 유지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미국측 관세 정책이 앞으로도 일본 경제에 하방 위험(downside risk)을 유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내각부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이미 시행된 관세 조치의 영향으로 4월 이후 대미(對美) 자동차 수출가격이 눈에 띄게 하락했다”면서도 “수출 물량·생산자물가·고용지표 등에서 뚜렷한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 다수 국가와 연달아 무역 합의를 맺으면서 과도하게 우려했던 경기 침체 리스크는 현시점에서는 크지 않다”면서도 “여전히 변동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향후 지표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관세 불확실성이 완화됐음에도 완전한 안도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수출·물가·소비 등 세부 지표 변화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수출 부문 평가의 하향 조정이다. 내각부는 1년 만에 처음으로 수출 전망을 낮췄는데, 이는 대만·한국으로 향하는 반도체 제조장비*1 출하 감소세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정밀 기계·소재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해 왔지만, 최근 글로벌 IT 수요 조정 국면이 장비 수출에 직격탄을 날린 것으로 분석된다.
물가 부문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7월 국내 기업물가에 대해 내각부는 “최근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다”고 기술했다. 이는 6월 보고서에서 ‘점진적으로 상승’이라고 표현했던 것에서 한 단계 톤다운된 문구다. 정부의 에너지 보조금 확대와 식료품 가격 상승세 완화가 결정적인 배경으로 꼽힌다.
민간 소비는 일본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항목이다. 내각부는 이번에도 소비 동향을 “회복되고 있다”는 기존 평가로 유지했다. 국제 유가 안정, 임금 인상 흐름, 관광 수요 회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내수가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 시각과 향후 변수
“관세 인하가 가격 지표에 선반영돼 조정이 이뤄졌지만, 실제 수출 물량이 늘지 않은 것은 기업들이 아직 정책 지속성을 확신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 도쿄 소재 대형 증권사 이코노미스트
시장 전문가들은 관세 변경이 가격 경쟁력에는 즉각적 영향을 미쳤으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미·중 갈등 등 구조적 변수가 산적해 있기 때문에 설비투자·고용 확대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기술 패권 경쟁 심화로 반도체 장비 수출이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일본 제조업의 중·장기 성장경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관세와 같은 비가격 요인 외에도 환율, 원자재 가격, 글로벌 경기 사이클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언급한 ‘하방 위험’은 단순히 관세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향후 미국의 통상정책 방향, 중국·유럽 경기 회복 속도, 그리고 국내 정책(임금·세제·보조금)의 연계가 변동성의 핵심 키로 꼽힌다.
한편, ‘반도체 제조장비’란 칩(칩셋)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는 리소그래피 장비, 식각 장비, 증착 장비 등 고부가가치 기계를 통칭한다. 일본 기업들은 소재(포토레지스트·불화수소)와 장비 양쪽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2위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 해당 분야 수출 변동은 일본 무역수지와 산업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기자의 종합 평가
이번 무역협정으로 관세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완화된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수주·생산·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만큼, 일본 정부가 제시한 ‘완만한 회복’ 평가가 지속 가능하려면 추가적인 내수 진작과 산업 전략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에너지 보조금이 일시적 조치에 그칠 경우, 향후 원가 상승이 기업 이익과 소비자 물가에 재차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1 반도체 제조장비: 각종 전자·IT 제품의 두뇌 역할을 하는 칩을 생산할 때 필요한 정밀 공정 설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