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대 제약사 중 하나인 일라이 릴리(Eli Lilly and Company)가 미국 내 제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푸에르토리코 카롤리나(Carolina) 생산시설에 12억 달러(약 1조 6,000억 원) 이상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미·중 무역갈등 장기화와 잠재적 관세(타리프) 위험을 회피하려는 자구책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2025년 10월 29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릴리는 해당 투자로 체중 감량·비만 치료 경구제 ‘오포글리프론(orforglipron)’의 생산 라인을 신설해 글로벌 규제당국 허가 절차가 끝나는 즉시 대량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회사 측은 올해 말까지 오포글리프론에 대한 판매허가 신청서를 제출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카롤리나 공장은 1960년대부터 가동돼 온 릴리의 핵심 기지로, 이번 증설이 완료되면 심혈관질환·당뇨·암·자가면역질환 등 다양한 만성질환 포트폴리오도 함께 생산할 수 있는 설비가 구축될 전망이다. 회사는 고급 기술을 다루는 제조 인력 100명 이상을 신규 채용하고, 공사 과정에서 최대 1,000개의 건설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 2026년 착공, 2028년 말 시험가동 목표
릴리는 “2026년 착공 후 2028년 말부터 경구용 의약품 생산을 개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60년 역사를 지닌 카롤리나 캠퍼스를 첨단화해 차세대 치료제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
이라고 회사 측은 강조했다.
이번 투자는 릴리가 지난해 발표한 미국 내 500억 달러 생산역량 확충 계획의 연장선에 있다. 올해 초 릴리는 관세 리스크 완화와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최소 270억 달러를 들여 텍사스·버지니아 등 4개 지역에 신규 공장을 짓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나머지 두 곳의 부지는 올해 말 추가 공개될 예정이다.
■ ‘리쇼어링(Reshoring)’ 가속… 美 정부 정책 기조가 배경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진 “의약품 핵심 원료·완제의 국산화” 요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욱 거세졌다. 팬데믹 기간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며 일회용 주사기·시럽·항생제 등 필수 의약품 부족 사태가 빈발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릴리의 대규모 투자 결정은 미·중 디커플링과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안보 강화 기조가 맞물린 결과”라며, 특히 GLP-1 계열 비만·당뇨 치료제 시장 급성장을 감안하면 선제적 생산능력 확보가 필수라고 진단한다.
■ 오포글리프론은 무엇인가?
오포글리프론은 GLP-1(Glucagon-like peptide-1) 수용체를 활성화해 식욕 및 혈당을 조절하는 기전의 차세대 경구 비만 치료제다. 기존 주사제 위주의 GLP-1 시장을 경구제 형태로 확장할 ‘게임체인저’로 평가받으며, 경쟁사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주사제)와 맞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GLP-1 제제는 체중 감소 외에도 심혈관 합병증 위험을 낮추는 부가 효과가 관찰돼, 당뇨·비만 환자뿐 아니라 ‘대사증후군’을 가진 일반 인구까지 적응증 확대 가능성이 거론된다.
■ 업계·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
1) 고용 창출 — 고숙련 제조 인력 100명 신규 채용은 소규모 지역경제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건설 기간 동안 최대 1,000개의 단기 일자리 역시 지역 고용지표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2) 세수 확대 — 12억 달러 규모의 설비 증설은 지방정부 세원 확보로 직결된다. 미 의회조사국(CRS)1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영토이지만 연방소득세 일부 면제 혜택을 제공해 과거부터 제약·바이오 기업의 제조 허브로 자리매김해 왔다.
3) 공급망 안정성 — 의약품 ‘매드(in) USA’ 비중 확대는 팬데믹·지정학 충격 발생 시 의약품 부족 사태를 완화하는 안전판이 된다.
■ 기자의 시각
이번 투자는 단순한 공장 증설을 넘어, 미국 내 제조업 부흥(리쇼어링)을 상징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GLP-1 계열 경구제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의료비 절감과 대사질환 예방 측면에서 정책·보험 지원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릴리의 선제적 캐파(capacity) 확보는 향후 시장점유율 확대의 핵심 열쇠가 될 전망이다.
반면, 현지 커뮤니티와 환경단체의 우려도 적지 않다. 제약 공정에서 발생하는 폐수·화학폐기물 처리가 지역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릴리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준을 충실히 준수해야 한다.
1)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2024년 ‘푸에르토리코 경제 발전 보고서’













